“다 끝났는데 왜 왔나?” 18일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의 알파인 스키경기장 건설 현장에 있던 정체모를 현장관계자는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현장에 있던 강원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그곳을 ‘자기 집 안방’인양 막아서며 카메라를 ‘몰래카메라’로 취급했다. 그들 말대로 가리왕산의 하봉(해발 1380m)에서 정선군 숙암리 마을로 내려가는 3km 길은 스키장의 스타팅 포인트와 피니시 라인이 돼 있었다. 아름드리나무는 뿌리째 뽑혀 쓰레기 같이 쌓여 있었고, 숲을 절단한 곳에는 나무뿌리와 건설기계가 뒤엉켜 있었다.

삭벌(Clear Cut)하지 않은 나무에서는 싹이 자라났고, 벌목을 기다리는 나무도 있었지만 터를 닦는 작업은 거의 끝난 것처럼 보였다. ‘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 고문을 맡고 있는 조상희 선생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분산개최를 권유한) 아젠다2020을 내놓기 직전 불과 한 달 만에 ‘설거지’(나무를 뽑아내는 작업)를 끝냈다”고 말했다. 조상희 선생은 “스키장으로 쓰면 복원이 불가능하다”며 “강원도와 조직위가 이식했다고 한 나무들은 대부분 팔뚝만한 것들이다. 원래 이곳에는 직경이 1m가 넘는 나무들이 있었는데 사라졌다”고 말했다.

▲가리왕산 하봉에서 숙암리 사이에 있는 알파인 활강스키장 공사 현장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하봉 주변 공사 현장에 쌓여 있는 나무들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병천 전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원(생태분류학 박사)은 “하봉에는 서너 곳의 풍혈지역(기후변화에 취약한 민감종이 서식할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모두 밀어버렸다”고 전했다. 가리왕산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 백두산 고사리 등 희귀종은 이미 쓸려 나갔다. 이번 답사에 참여한 브라이언 패든 ‘미국의 소리’ 서울지국장은 “한국 정부와 평창조직위가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하러 왔다. 문제는 복잡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복원은 어렵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끝난 문제는 아니다. 개발을 되돌리고, 분산개최를 타진할 시간은 있다. 실제 평창올림픽조직위는 스노보드 종목인 ‘빅에어’를 서울 광화문에서 진행할 계획을 검토 중이다. 조직위는 서울외신기자클럽 소속 기자들이 가리왕산에 답사를 떠난다는 소식을 강원도로부터 전해듣고, 17일 부랴부랴 ‘정선 알파인 경기장 (가리왕산) 관련 조직위원회 입장’을 배포하기도 했다. 조직위가 스스로 분산개최 가능성을 열었고, 가리왕산 개발이 여전히 다툴 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조직위 입장은 확고하다. 조직위는 외신기자들에게 보낸 입장자료를 통해 조선시대에 산삼 남획 방지를 위해 출입통제를 실시했고, 1990년대 산림자원 관리를 위해 임도를 만들었고, 2008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도 확대지정했고, 지금 일부 70년 이상 된 나무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IOC가 제시한 기준과 FIS(국제스키연맹)의 규정을 만족하는 곳은 가리왕산뿐이라고 주장했다. 조직위는 환경단체의 문제의식을 수용했고, “생태환경 훼손 최소화 및 복원을 위한 친환경 활강경기장 조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강원도와 평창조직위가 ‘노력’하면 할수록 복원비용은 늘어난다. 연습경기 포함 2018년 총 19일 동안 사용할 이 경기장에 들어가는 비용은 건설비만 1723억원, 시설철거에 드는 돈은 무려 1082억원이다. 여기에 이주민 보상금에 길게는 십여 년 동안 투입해야 할 생태계 복원비용까지 고려하면 가리왕산에만 5천억원이 넘는 혈세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메가이벤트로 ‘돈’을 버는 건 토건자본과 언론뿐이다.

▲가리왕산에 있는 풍혈지대의 모습. 이곳은 기후변화에 취약한 종에게 일종의 대피소다. 햇빛을 잘 비치는 곳이지만, 바위 사이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와 온도변화가 심하지 않다.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가리왕산 공사 현장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가리왕산이 복원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강원도와 산림청은 줄곧 “올림픽이 끝나면 복원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기업에 헐값으로 팔아넘기려는 움직임도 있다. 강원도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정선군은 올림픽 이후에도 산림보호구역 아래쪽을 스키장으로 유지하고, 임로를 레저 용도로 바꿔 가리왕산을 복합레저단지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재정적자’를 핑계로 민간에 매각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인천아시안게임이 증명했듯 올림픽 경제효과는 없다. 2011년 평창올림픽 유치 당시 제출한 사업비는 8조8천억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11조5천억원으로 늘었다. 평창올림픽은 인천아시안게임보다 다섯 배 이상이 필요하다. 강원도에 따르면, 간선교통망에만 9조4079억원이 필요하다. 경기장 신축 및 리모델링에 7637억원, 진입도로에 5607억원, 부대시설에 1조3239억원이 든다.

짓고 부순다는 경기장도 수두룩하다. 국회에는 평창올림픽 사후 경기장 유지관리 비용을 세금으로 떠넘기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6조원을 넘게 들여 건설 중인 도로와 철도는 민간에 헐값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올림픽 붐업을 명분으로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생략한 정체 모를 예산이 ‘올림픽 예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자체와 토건자본의 콩고물을 먹고 사는 지역언론은 이런 삽질을 ‘지역개발’로 보도한다. 정부-국회-지자체-언론은 단결한지 오래다.

▲이번 답사는 녹색연합, 문화연대, 우이령사람들, 평창올림픽분산개최를촉구하는시민모임, 서울외신기자클럽이 공동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18일 시공사 측은 공사현장으로 이어지는 한 임로를 차단했다. 사진은 답사를 기획한 단체들이 현장 차단과 취재 거부에 대해 항의하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외신은 가리왕산 개발과 올림픽 개발을 어떻게 볼까. 평창으로 가는 길, 외신기자들은 평창에 닿기도 전인데도 “이곳을 촬영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넓은 도로 옆에 또 다른 도로를 닦고 있었고, 평범한 시골마을의 비닐하우스촌을 가로질러 철길을 놓고 있었고, 멀쩡한 산에 터널을 뚫고 있었다. 가리왕산을 한 바퀴 둘러 본 외신기자들은 이 풍경을 ‘친환경 개발’로 보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계스키연맹에 따르면, 가리왕산은 파괴하지 않아도 된다. 용평스키장과 무주리조트를 쓰면 된다. IOC도 분산개최를 적극 권고했다.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인 일본 도쿄와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카자흐스탄 알마티는 분산개최로 방향을 돌렸다. 한국만 이 모양이다.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다. 망신도 세계적으로 당할 판이다. 지금 가리왕산으로 가는 길은 모든 게 뉴스거리다.

▲피니시 라인 공사현장 주변 모습. 숲 절단면 사이에도 건설기계들이 많았다.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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