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 지분을 100% 확보했다. 업계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이동통신 1위 사업자가 결합상품을 통해 지배력을 전이하고 가입자를 Lock-in(가입자 묶어두기) 하려고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SK텔레콤 역시 “압도적인 가입자 우위를 활용한 결합상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이동통신 1위 사업자, SK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결합상품 마케팅에 나서자 나머지 사업자들은 ‘반SK 동맹’을 맺고 국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특히. 같은 공룡이더라도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고, 이동통신사업 기반이 없는 케이블 사업자들의 볼멘소리가 크다. 규제기관인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양희)와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가 가이드라인 제정과 사실조사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19일, 국회에 이동통신사업자와 유료방송사업자들이 총출동했다. SK텔레콤과 반SK 진영은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 의원이 이날 오전 국회도서관에서 주최한 정책토론회 <누구를 위한 결합상품인가>에서 격돌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앞에 두고 설전을 벌였다. 오전 10시에 시작해 11시 반에 마치기로 한 토론회는 SK텔레콤을 대변해 이경원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반SK 진영의 주장을 정리한 박추환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의 발제를 진행했다. 그리고 발제가 끝나자 토론회가 잠깐 중단됐다. 이 사이 국회 대정부질문 중이던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토론회 장소에 도착했고, 이 대표는 짧은 인사말 이후 CJ헬로비전과 SK텔레콤의 '민원'을 접수하곤 자리를 떴다.

▲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오른쪽)는 CJ헬로비전과 SK텔레콤 의견만 듣고 퇴장했다. (사진=미디어스)

이동통신이 없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들은 이통사가 ‘이동통신 2회선 가입하면 방송+인터넷 공짜’ 마케팅을 펼쳐 유료방송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장 정상화를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반면 SK텔레콤은 자신은 경쟁을 촉진하는 사업자일 뿐이라며 ‘네트워크 1인자이자 IPTV+인터넷 결합상품 1위 사업자인 KT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국 CJ헬로비전 전략기획실장(한국케이블방송TV협회 마케팅분과장)은 “케이블은 인터넷상품을 1만원에서 1만2천원 사이로 판매하는데, SK텔레콤은 SK브로드밴드와 내부거래를 통해 가격이 1만4천원인데도 ‘무료’라고 마케팅하고 있다”며 “‘약탈적 가격’이라는 정의에 부합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방송과 인터넷 같이 유선과 유선의 결합은 네트워크라는 공유요소가 있어 원가절감이 가능해 결합할인이 있을 수 있지만, 이동통신과 ‘IPTV-인터넷’은 유통망 외에 공유요소가 없는데도 현장에서는 공짜 마케팅을 한다. SK텔레콤의 이동전화 시장지배력이 (방송시장에)전이되고 있다”며 결합상품 사전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상헌 SK텔레콤 CR전략실장은 “(반SK 진영이) 팩트조차 왜곡해 주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상헌 실장은 “구체적으로 증빙하기보다 추정, 예시를 중심으로 주장하고 있다”며 “규제를 통한 반사이익을 추구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통시장의 상황을 예로 들었다. SK텔레콤이 요금인하 정책을 내놓으면 KT와 LG유플러스는 ‘약탈적 요금제’라고 했지만 결국 유사상품을 출시해서 경쟁했고, 이 결과 LG유플러스가 60%의 가입자 순증을 기록해 오히려 ARPU에서 SK텔레콤을 추월하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SK텔레콤은 경쟁을 촉진했다"고 주장했다.

이상헌 실장은 “이통3사 모두 가입자가 천만 이상인 대형사업자인 만큼 이용자 입장에서 보면 누구라도 이용자 편익을 저해할 수 있는 거대 대기업”이라며 “세 사업자의 규제수준에 차이를 둘 필요는 없다. 동등규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래부가 논의 중인 ‘요금인가제 폐지’를 고려한 발언이다. 특히 그는 “인터넷과 방송은 물리적으로 번들(결합)상품이라며 규제를 하려면 전국적으로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를 지배하고 인터넷-방송 결합상품 점유율이 45.3%나 되는 KT를 규제해야 한다”고 역공을 가했다.

결합상품에 대한 사전규제는 어떤 수준으로든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장은 “결합서비스는 이용자에게 편익이 큰 것으로 인지될 수 있어, 결합상품에 대한 규제를 하면 단말기유통법과 같이 서비스 요금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규제를 시도할 때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장기적으로 시장경쟁과 공정경쟁을 저해해 시장을 고착화시켜 산업의 활성화나 소비자 후생의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소비자의 장단기적 이익을 고려한 제재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사진=미디어스)

사업자들은 각각의 입장에 충실한 논리를 최대한 구사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정작 정부가 애초부터 방송통신 유효경쟁 정책을 잘못 짠 것에 대한 비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불공정 경쟁’을 한다고 비난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방송통신 시장은 3사 독과점 구조인 이동통신 시장과 5대 MSO가 나눠 갖고 있는 유료방송 시장일 뿐이다. 소수의 대기업들이 쥐락펴락하는 판일 뿐이다.

이통사들은 그동안 높은 ARPU(가입자당 매출)를 확보할 수 있는 이동통신서비스에 주력하며, 방송과 인터넷을 ‘미끼’로 활용했다. 그 결과, 2013년 말을 기준으로 이동전화를 포함한 결합상품에 가입한 사람은 1129만명이 됐다. 5년여 만에 7배 넘게 증가했다. 이 대목은 분명, 이동통신사업자의 시장지배력이 방송과 인터넷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떤 사업자는 팔 수 있고, 어떤 사업자는 팔 수 없는 결합상품 판매가 방송시장을 교란한단 주장은 이 지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실제, 지난 십여 년 동안 이동통신시장에서 발생한 영업이익의 80% 이상을 가져간 1위 사업자 SK텔레콤도, 적자를 보다가 최근에 만회를 시작해 영업이익 점유율이 사실상 0%로 수렴되는 LG유플러스도 ‘결합상품’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가입자 포화상태에 이른 이동통신사들은 이미 가입된 이들에게 팔 수 있는 부가서비스로 다시 막대한 매출을 올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모든 이동통신가입자에게 결합상품을 쥐어주는 게 이동통신사의 목표다. VOD(주문형비디오)에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까지 ‘가입자 묶어두기’가 관건인 상황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싸면 쌀수록 좋다. 그러나 결합하면 할수록 각종 약정할인(=위약금)에 시달려 다른 사업자를 선택할 수 없게 된다. 영남대 박추환 교수에 따르면, 인터넷과 이동전화의 약정기간은 각각 3년과 2년인데 이럴 경우 최소 6년이 지나야 가입자는 사업자를 갈아탈 수 있다. ‘불필요한 상품까지 가입시킨다’는 사람도 많지만, ‘결합상품 가입자에게 차별받는 느낌이다’라는 소비자도 많다.

사업자들이 괜히 결합상품을 내놓는 게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 결합상품이 더 이상 미끼가 아닌 영업이익을 담보하는 핵심적 ‘연결고리’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요금 전반에 대한 규제체계 강화 논의를 해야하는 정부와 국회는 사실상 이 부분에는 손을 놓은 채, 결합상품을 둘러싼 사업자들의 '민원'이 무엇인지만 열심히 청취하고 있다. 논의가 어떤 방식으로 정리되건 결국, 누군가는 돈을 벌 것이다. 그 돈은 누가 지불하는 것인가. SK와 반SK의 구도는 그래서 허구적이다. 돈을 걷어가는 사람들만 목소리를 높이고, 정작 돈을 내는 사람들은 논의에서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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