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국무총리가 탄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8일 여야가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처리한지 반나절도 채 안돼 임명장을 수여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총리는 기념사진도 찍었는데, 황교안 총리를 바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눈빛에 애정과 기대가 엿보인다.

황교안 총리를 박근혜 대통령이 특별히 아낀다는 건 그가 총리 후보자의 반열에 오르기 전부터 정가에 돌던 이야기다. 정확히는 그가 김기춘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사람 중 하나라는 게 이 풍문의 요체였다. 그렇잖아도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공안통’ 청와대 비서실장의 존재가 비판을 받던 때였다. ‘황교안 비서실장’의 탄생은 ‘공안’의 능력으로 ‘통치’의 기술을 대신하려는 박근혜 정권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풍문은 현실이 되지 못했는데, 이제 청와대 비서실장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서 ‘공안통’ 황교안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순간이 와버렸다.

▲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접견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람이 살아온 과정은 어떤 형태로든 그의 얼굴 생김새에 반영된(다는 소박한 믿음을 갖고 산)다. 황교안 총리의 얼굴은 전형적인 음모가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의 얼굴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영성(靈性, spirituality)이다. 속을 알 수 없는 그의 표정에 신적존재에 대한 한 치의 의심이 없는 순수함이 묻어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도에 전념하고 있는 수사(修士)도 연상된다. 그가 신학대학을 야간으로 졸업했고 전도사를 겸했으며 지금도 신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점이 선입견으로 작용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유난히 황교안 총리의 표정에 흔들림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기쁠 때에는 환하게 웃지만 기분이 나쁠만한 일이 있을 때에는 그저 시무룩한 표정으로 일관한다. 카메라 앞에서 표정관리를 하는 정치인들의 ‘기술’을 배워온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어떤 관점에서 표정이란 인간의 감정을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표출하는 기계적 행위이다. 그는 아마도 심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그러한 정도 이상의 감정표현을 절제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묵묵히 인내하면서 자기 사명을 짊어져 온 사람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난히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전에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대해서도 변함없는 신뢰를 과시하며 “드물게 사심이 없는 분”이라고 평했다. 사심이 없다는 것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의 어떤 업무 능력과 같은 것에 대한 평가는 아니다. 사심이 없다는 것은 그가 다른 정치적 계산을 하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의도로 대통령을 섬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일테다.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 황교안 총리에 대해서도 후에 같은 평가를 내릴 가능성이 클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생물학적 아버지의 비극적 죽음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10·26 이후 자신을 떠난 사람들에 대해 충격을 받고 사람에 대한 어떤 근본적 불신을 갖게 됐다는 점은 박근혜 대통령 자신의 자서전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그러니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나 소위 ‘3인방’과 같은 ‘드물게 사심이 없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원내대표는 영원한 ‘배신자’들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야당과 국회법 개정안을 합의해와서 어제도 오늘도 청와대를 곤란하게 하는 유승민 원내대표는 그야말로 눈엣가시다. 우리는 황교안 총리의 얼굴 표정을 보며 그의 ‘신심’을 추측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으로서 민감한 사안의 전면에 나서 검찰을 진두지휘(물론 법무부 장관이 상시적으로 검찰을 지휘하지는 않는다)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며 그가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원내대표와 같은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확신’을 갖게 됐을 것이다.

황교안 총리가 탄생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그의 이런 캐릭터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황교안 총리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자료 제출을 불성실하게 했다며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황교안 총리가 시종일관 침착한 표정으로 낮은 자세를 유지한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르스 사태까지 벌어져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일 이 과정에서 황교안 총리가 이완구 전 총리처럼 설화(舌禍)에 휩싸였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총리 후보 낙마의 위기감 속에서 그는 운이 좋은 사람처럼 총리가 되는데 성공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겸손함이 ‘때’를 잘 만나 ‘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언론은 황교안 총리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로 메르스 사태 수습을 꼽고 있다. 당연한 결론이겠지만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메르스 사태를 수습한다는 건 크게 두 가지 차원의 문제다. 첫째는 실무적인 차원으로 메르스에 대한 방역 자체에서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부처의 대응을 조율하고 필요한 것들을 적재적소에 공급하는 관료적 감각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명관(名官)으로서의 소양이 필요한 것인데 황교안 총리가 이런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일이 없다.

▲ 교안 신임 국무총리가 1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증호흡기증후군(메르스) 관련 범정부 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황 총리는 "아직 사태가 종식되지 않고 국민 불안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저는 오늘부터 메르스가 종식될 때까지 비상근무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사진=연합뉴스)

검사 시절의 황교안 총리는 사상적으로는 지향이 분명했지만 수사의 실무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것은 ‘공안통’이라 불리는 검사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라고들 한다. 게다가 메르스 방역은 이미 초기대응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제와서 성공을 거두고 어쩌고 할 일도 없다. 그러니 이 대목에서 황교안 총리는 단지 언론에 의해 평가를 받을 운명일 뿐 자신이 주도적으로 메르스 방역을 위한 어떤 결단을 내릴 수는 없는 신세로 볼 수 있다.

남는 것은 메르스 사태의 정치적 수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거대한 의문을 표하는 지지층을 다독이고 메르스 사태를 딛고 총선까지 가는 여권 전반에 대한 정치적 로드맵을 작성하는데 힘을 더해야 한다. 이 대목에 있어서는 황교안 총리 특유의 캐릭터와 신심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겸손한 자세로 메르스 방역에 온 몸을 바친 후 정부 대응에 대한 범정부적 차원의 대국민사과를 하고 2016년 4월이 오기 전까지 공안정국을 조성하면 되는 것이다.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것이야 말로 황교안 총리의 특기이니 그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앞으로 황교안 총리가 만들어 나갈 정치의 미래가 불안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는 큰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는 점이다. 대통령이 선호하는 ‘남달리 사심이 없는 분’들은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에게만 도움이 되었지 다수의 서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된 일이 없다. 그러니 여기서 거듭 다시 확인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유아론(惟我論)’이다. 나라에 필요한 총리가 아니라 오로지 박근혜 대통령에게 필요한 총리를 임명하고 그를 앞에 내세웠다.

박근혜 대통령은 연초에 ‘4대부문 개혁’을 말하기도 하였으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도 남들이 해야 한다고 하니 말하는 것일 뿐 스스로가 국가를 어떻게 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이제 2016년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사람들의 사의를 수용하고 경제정책의 사령탑을 포함한 개각이 진행해야 할텐데, 겸손한 황교안 총리가 그 작업을 주도할 수 있을리는 없으니 또다시 칼자루는 비전도 리더십도 없는 박근혜 대통령의 손에 쥐어질 판이다. 이런 정권의 임기가 아직도 절반이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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