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1% 대 9.1%의 싸움이다. 그런데 양측의 물량공세가 비슷해 보인다. 한국마사회(회장 현명관)의 용산 화상경마장(용산 렛츠런CCC)과 관련한 언론 보도 비중이 그렇다. 서울 용산구 주민들, 서울시교육청, 200여 미터 떨어진 성심여자중·고 학생들까지, 지역사회와 유관 기관들이 모두 반대하고 있으나 마사회는 지난달 말 마권발행을 강행했다. 마사회는 학교보건법 상 위해시설은 학교 주변 200m 밖에 위치하면 되며, 화상경마장을 통해 지역 일자리와 복지에 기여하겠다며 개장을 강행했다. 마사회는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겠다는 걸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중이다.

무기는 여론이었다.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지만, 언론과 포털사이트 상 공론은 비등비등한 수준이 유지됐다. 보도자료 기사를 포털에 어뷰징(동일기사 반복전송)하는 언론들 때문이다. 마사회 내부자료를 보면, 마사회는 개장을 몇 달 앞두고 언론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경조사와 광고, 기획기사를 활용했다. 마사회의 저인망식 여론전에 언론이 동참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개장 전후 쏟아진 어뷰징 기사들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 이후 관련 기사의 흐름을 보면 마사회의 ‘저인망식 여론전’은 도드라진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용산 화상경마장’을 검색하면 약 2470여건의 기사가 나오는데 여론전은 지난달 31일 개장을 전후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달 31일 마사회가 주민 반발에도 개장을 강행하면서 주민들의 항의시위가 있었는데 언론은 이 소식을 보도하면서도 용산 화상경마장 무료 노래교실 누적 이용자가 2만4천여명이라는 소식도 실었다. 일부 언론은 이곳을 “매일 음악이 흐르는 그곳”이라고까지 소개했다.

1일에도 주민들의 항의집회는 이어졌는데, 이날 일부 경제지를 중심으로 한 언론들은 마사회의 사회공헌사업을 소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여러 언론은 “시각장애인 최씨가 용산화상경마장에서 희망의 빛을 찾았다”는 기사를 유통했다. 2~4일에도 용산 화장경마장의 문화센터와 사회공헌 사업에 관한 기사가 유통됐다.

5일에는 마사회가 용산 화상경마장을 통해 지역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기업과 지역의 상생 표본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기사가 등장했다. “한국마사회가 용산에 설립한 용산 화상경마장에서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문화센터 강좌가 진행되는 내내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기사도 다시 등장했다.

여러 언론사에서 똑같은 제목의 기사까지 등장

7일에는 몇몇 언론사가 똑같은 제목의 기사를 포털에 전송한 촌극까지 있었다. 전자신문 이뉴스팀(e-news팀)과 뉴스웨이 기사 제목은 <용산화상경마장, “은퇴 후 경제활동에 지역 기여까지”>로 정확히 똑같았다. 여러 언론이 같은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밖에도 이날에는 노래교실 등 문화센터 관련 기사도 재등장했다. 일부 언론은 8일에도 이전과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 기사를 여러 건 내보냈다.

마사회가 용산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공헌 사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는 식의 보도자료 기사는 개장 2주차인 12일(금)~14일(일)을 전후로 크게 늘어났다. 이날은 용산 주민들과 참여연대,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가 개장 2주차를 앞두고 마사회 폐지운동을 벌이겠다며 기자회견을 한 날이었다. 그러나 기자회견 기사보다 마사회발 보도자료 기사 건수가 더 많았다.

여론전은 개장 2주차를 지난 시점에도 진행 중이다. 15일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단 3건의 기사가 올라와 있는데 헤럴드경제 <용산 화상경마장, 문화센터 활용 꿀팀 소개>, 이코노믹리뷰 <한국마사회 현명관 회장 “용산 화상경마장, 주민 친화적 모범 시설로 육성할 것”>, 아이티데일리 <한국 마사회 현명관 회장 “지역 문화공감센터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 같은 마사회 홍보성 기사뿐이다. 특히 일부 기사의 시점은 ‘개장 전’이다. 일종의 어뷰징 기사인 셈이다.

개장 석달 전부터 지역·언론 포섭

언론이 용산 화상경마장에 비판여론을 밀어내는 기사를 반복적으로 생산하는 이유는 뭘까. 미디어스가 국회에서 입수한 마사회 내부문서를 보면, 마사회 용산지사장은 개장을 석달 앞둔 지난 3월부터 ‘용산구 관계자’의 경조사에 두 차례 참석했고, 지역신문에 광고를 집행하면서 기획기사를 유도하는 홍보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마사회의 2015년 3월 문서목록에는 “지역여론 우호관계 형성을 위한 경조사 참석 결과보고”와 “렛츠런CCC.용산 지역신문 광고 및 기획기사 계획”이 있고, 4월에는 <렛츠런CCC.용산 지역신문 광고 및 기획기사 계획>, <지역 유대강화를 위한 시각장애인연합회 용산지회 행사지원계획> 같은 문서가 있다. 마사회가 개장 전부터 언론을 통한 여론전을 단단히 준비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마사회는 언론을 포섭해 여론전을 펼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업무 활동이라는 입장이다. 홍보팀 이상호 차장은 용산지사장의 경조사 참석에 대해 “경조사는 5만원까지 업무지침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며 “(광고 및 기획기사는) 기획기사가 나간 것이 아니라 지역언론에 광고를 한 번 백만원 집행한 것이다. 지사에서 지역언론에 광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압도적 반대 여론에도 손놓고 있는 언론과 정부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지역언론에 광고를 미끼로 기획기사를 유도하고, 경조사를 활용해 우호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언론 윤리를 심각하게 위배하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며 “마사회와 언론이 공모해 화상도박장의 반사회적 이미지를 희석하는 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진걸 처장은 도박장 같은 사생시설을 문화시설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을 즉각 멈추고,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 시민들의 경우, 학교 주변과 주택가에 화상경마장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참여연대와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실이 우리리서치에 의뢰해 7일 전국 성인남녀 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여 “학교 앞, 주택가 등 도심에 입점하는 것”에 대한 찬반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85.1%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편의 등을 고려하면 도심 입점도 상관없다”는 응답자와 “잘 모른다”는 응답자는 각각 9.1%와 5.8%에 그쳤다.

이 같은 여론에도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용산 주민들은 지난 2013년 5월부터 대책위를 구성해 화상경마장에 반대해 왔다. 그럼에도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배경을 두고 현명관 마사회장이 비서실장으로 거론될 만큼 ‘친박’ 인사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명관 회장은 삼성물산 회장 출신으로 2006년 한나라당 경제활성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2010년 제주도지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2013년 12월 마사회장이 됐다.

한편 렛츠런CCC는 전국에 30곳 있다. 서울 10곳(강남 강동 강북 도봉 동대문 선릉 영등포 용산 종로 중랑), 부산 2곳(동구 연제), 대구, 인천 4곳(남구 부평 연수 중구), 광주, 대전, 경기도 9곳(광명 구리 부천 분당 수원 시흥 안산 의정부 일산), 충남 천안, 경남 창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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