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부터 비자 없이 미국여행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여행이야 나야 별 상관없다’고는 생각하지만 비자 없이 미국을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사건은 사건인가 보다. 며칠 전부터 여러 매체에서는 ‘비자 없이 미국여행을 갈 수 있다’는 희망찬 어조로 ‘전자여권’을 만들라고 떠들어대는 중이다. 아래 기사들은 이날까지 지난 한 주(11월10일~11월17일)간의 미국비자 면제와 관련된 매체들의 뉴스를 정리한 것이다.

▲ 11월 13일자 조선일보 6면.
항공사 “미국비자면제 특수 노려라”-한겨레 11월12일
미국행 항공편 대폭 늘리기로-조선일보 11월13일
美비자 17일부터 면제…美대사관 앞 줄서기 사라졌다. “시민들은 ‘속시원’…대행업체 ‘속타요’”-동아일보 11월13일(사진비교)
전자여권 만들고 ‘인터넷 사전 허가’ 받아야-조선일보 11월13일
기러기학부모, 美비자면제 ‘불똥’-동아일보 11월14일

오늘부터 미국 무비자 여행 가능-중앙일보 11월17일
오늘부터 비자없이 미국간다-동아일보 11월17일
무비자 미여행 오늘부터 실시-조선일보 11월17일
오늘부터 무비자 미국방문…전자여권 챙기세요-SBS 11월17일
오늘부터 ‘무비자’ 미국 입국-KBS 11월17일
전자여권 먼저 만들고 출국 3일前 입국허가 받으세요-한국경제 11월17일
美대사관 새벽줄서기 이제 그만-경인일보 11월17일
“비자없이 미국 다녀오세요”-충청신문 11월17일

위의 기사들을 제외하고도 지난 15일 주요 일간지에는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미국비자 면제프로그램의 시행을 앞두고 탑승객을 안내하는 연습 사진이 일제히 실렸다. 미대사관 앞 줄서기가 없어졌다는 동아일보, 전자여권 챙기라는 SBS뉴스를 비롯해 지역신문까지도 많은 신문지면에는 비자 없이 미국여행이 가능하다는 홍보성 기사들이 난무했다.

▲ 11월 15일자 경향신문 12면.
이러한 다양한 기사들 중 미국비자면제프로그램 시행과 관련해 주목되는 기사가 있다. 지난 11월13일 <조선일보>에는 ‘17일부터 무비자 미국여행, 전자여권 만들고 ‘인터넷사전허가’ 받아야’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17일부터는 비자 없이도 미국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이 미국비자면제프로그램(VWP·Visa Waiver Program) 신규가입국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원칙적으로 비자 인터뷰를 위해 미국 대사관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10만원이 넘는 수수료도 아낄 수 있다는 얘기다.” (조선일보 11월13일자 신문)

이렇게 시작한 기사는 이어 친절하게도 ‘무비자 미국여행 어떻게 가나’라는 표까지 첨부하며 “본인이 무비자 대상인지 여부 확인→전자여권 발급→전자여행허가신청→입국허가 통지확인→출국”이라는 일련의 흐름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이 얼마나 친절(?)한 언론인가. 그러나 정부와 각종 매체들이 말하는 미국비자면제프로그램의 실상을 알면 당신은 기겁할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정부와 매체들은 당신의 신상정보를 미국정부에 팔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거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일보>에서 언급하되 설명하지 않은 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신문에서는 “누구나 이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또 면제 대상이라도 사전에 미국 측이 요구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 절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대부분의 매체들도 이 지점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그래서 한번 미국 측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넘어가고자 한다. 먼저 미국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 비자면제프로그램 양해각서에 서명하며 외교적 성과라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미국비자면제프로그램은 정확히 이야기하면 비자면제가 아니고 미국여행사전허가제이며 양해각서 또한 미국산쇠고기 협상과 같은 굴욕협상이라고 주장한다. 비자면제가입을 위한 양해각서협정을 보면 ‘전자여행허가시스템가입’이 포함돼 있어 사전에 미국 입국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ESTA(https://esta.cbp.dhs.gov)사이트에 접속해 성명과 생년월일을 비롯한 여권번호, 여권 발급일 등 16개의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비행편 정보와 출발도시, 전화번호, 이메일주소, 미국 내 거주지 등 5가지 선택사항을 기입해야 한다. 또한 7가지 질문에 대하여 YES 혹은 NO로 답해야 하는데, 그 내용은 질병과 전과기록, 국제범죄나 미국 추방 여부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를 확인한 후 입국여부가 결정된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비자면제’라고 말할 수 없다.

‘여행자 정보 공유 협정 체결’ 또한 사전조건 조항 중 하나다. 여기에서 여행자의 정보 공유에는 금융거래기록과 전과기록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과기록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정보 중 가장 민감한 정보 가운데 하나로 한국에서도 함부로 열람이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양해각서협정으로 한국인들의 신상정보를 미국정부에서 열람이 가능해진다. 개인정보유출의 위험이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양해각서이다. 이러한 개인정보유출의 문제는 ‘전자여권 도입’과도 연결돼 있다. 미국에서는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을 위해 전자여권 도입을 전제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8월26일부터 전자여권을 도입했지만 이것이 미국이 제시한 온전한 전자여권은 아니다. 지문정보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는 이와 관련해 2010년부터 발행되는 여권에는 지문정보를 포함한다고 밝히고 있어, 전자여권과 개인정보 유출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양해각서에는 ‘대테러전 협력’, ‘불법체류자·범법자 추방 협조’, ‘사법 협력’ 등을 포함하고 있어 논란의 여지가 많은 상황이다.

이러한 많은 문제점을 뒤로 하고 언론들은 ‘비자면제’만을 내세워 ‘전자여권’ 가입을 종용하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매체인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편의성과 프라이버시권은 충돌될 수밖에 없는 가치들일까. 얼마 전 장안동 불법안마시술소 지역에 CCTV가 설치됐다. 행정적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럼으로써 그 지역을 드나드는 개인들의 프라이버시권은 침해됐다. 헷갈리기 시작한다. 과연 어떤 것이 우선되어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명확해지는 가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선택권’이다. 충돌되는 가치가 있을 때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어떤 권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의지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전자여권이 도입되기 바로 전인 8월24일 전자여권이 아닌 10년짜리 사진전사식여권(구여권)을 신청했다. 전자여권이 도입되면 개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전자여권만이 발급되고 2010년에도 지문이 포함되는 여권만이 발급된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구여권을 신청한 것이다. 여기에 개인의 ‘선택’ 여지는 없다. OECD 프라이버시 가이드라인에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보장돼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의 여권법은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개정됐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매체들 역시 이를 주시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미국정부에 팔라고 권하고 있다.

전자여권시행을 피해 구여권을 발급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제 10년 후 지문정보가 포함된 전자여권을 발급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무시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실을 자책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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