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지상파와 유료방송,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한패

방송 환경이 많이 달라진건 사실이다. CJ E&M이 약진하고, 종합편성채널이 출현했다. 하지만 유료방송의 킬러 콘텐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상파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분석에 따르면, 실시간 시청비율은 2011년 94.77%에서 2014년 79.74%로 급격한 하락 추세고, VOD 시청비율은 5.23%에서 19.79%로 대폭 늘었다. 그러나 지상파는 여전히 실시간과 VOD 시청에서 모두 압도적 1위다. 모바일IPTV 시청자의 절반이 지상파를 시청 중이고, 방송프로그램 VOD의 절반이 지상파 콘텐츠다. 유료방송과 지상파는 함께 공생하고, 서로 기생하고 있다.

유료방송의 성장과 지상파의 여전한 경쟁력, 지상파 입장에선 호기로운 때다. 최근, 지상파가 콘텐츠 가격을 잇따라 올리는 목적은 결국 상황을 지렛대로 ‘콘텐츠 수익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상대는 과거와 달리 지불능력이 충분해졌다. 유료방송도 이젠 공룡들이 됐다. 그러나 지상파가 요구하는 돈은 그들이 지불하는게 아니다. 결국, 애먼 유료방송 가입자가 부담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유료방송사업자들, 특히 이동통신사들은 방송을 이동통신의 부가상품 쯤으로 취급했고, 방송은 이미 헐값이 된지 오래다. 그래서 지상파와 유료방송 사업자 간의 협상은 언제나 “지상파 시스템이 붕괴할 지경이다”, “지상파 요구로 불가피하게 가격을 인상한다”며 지상파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끝난다.

지상파-유료방송의 이 공생적 기생 관계는 당분간 끝나지 않을 것이다. 통신으로 돈을 벌지만, 방송을 통신에 얹고 가야 하는 유료 방송 사업자들을 지상파가 영향력으로 압박하며, 콘텐츠 대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형국이다. 시청자는 선택해야 한다. 문제는 2지선다형이다. ①유료방송을 끊고 인터넷+OTT로 가느냐 ②마느냐다. 그러나 사업자들은 이미 이 문제의 출구를 봉쇄하고 있다. 고객들은 이미 결합상품, 약정할인에 묶여있다. 덕분에 싼값에 편하게 TV와 VOD를 본다. 결국, 답은 하나다. ②번 뿐이다. 지상파와 유료방송이 티격태격 싸우지만 결국 ‘윈윈’ 할 수밖에 없는 게임의 회로는 이렇게 짜여진다. 1500원짜리 VOD 한편이 팔리면 지상파와 유료방송은 65대 35로 수익을 나눈다. 서로 삿대질을 해대지만, 둘 다 누워서 떡 먹는 영업이다.

시청자에게 끊임 없이 요금 전가하며, 둘 다 누워서 떡 먹는 게임

VOD 가격인상 문제를 따져보자. 가격규제는 전무하다. 사업자들 주장대로 좋은 콘텐츠를 편하게 보면 비용을 더 지불하는 게 맞다. 그런데 VOD는 그게 아니다. 사실상 서버비용만 드는 VOD 한편 보는데 왜 1500원을 내야 하는지 아무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무한도전> VOD를 매주 보는 시청자는 월 6천원을 추가로 납부하게 된다. 공영방송 수신료(2500원), 유료방송 시청료보다 비싸다. 지상파와 유료방송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판을 만들었다.

지상파는 최근 VOD 수익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지상파는 2013년 홀드백(무료화 시점)을 1주에서 3주로 늘렸고, 지난 5월에는 인기VOD 가격을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인상했다. 각사 5개 프로그램에 한정했지만 연내 각사 11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MBC가 자사 VOD 이용추이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VOD 이용 80%는 일주일 안에, 95%가 3주 안에 몰린다. VOD 이용과 유료결제가 늘어날 것을 고려하면 지상파와 유료방송이 앉아서 버는 돈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지상파는 무료VOD 대가도 올리려고 한다. MBC는 최근 유료방송에 무료VOD 대가를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지상파가 제기한 가격은 홀드백 1주 상품은 CPS 560원, 3주 상품은 140원이다. 나머지 지상파는 MBC안을 그대로 유료방송에 제안할 것이다. 3주 상품만 관철되더라도, 지상파가 무료VOD로 벌어들이는 돈만 연간 최소 900억원(광고수익 17% 제외)이 된다. 유료방송 간 경쟁으로 홀드백 1주 상품(CPS 560원)까지 협상이 되면, 지상파는 앉아서 무려 3528억원의 부가 수익을 올리게 된다.

그럼에도 지상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지상파가 자체 OTT(Over The Top)서비스인 ‘푹’에서 출시한 모바일 전용 실시간방송 상품은 (자동결제 할인가) 3900원이다. 모바일IPTV로부터 받던 금액(1900원)보다 2배 가량 비싸다. 그 동안 지상파는 이동통신사와 IPTV사업자의 플랫폼을 통해 ‘푹’ 가입자를 늘렸고, IPTV는 지상파 콘텐츠를 ‘덤핑세일’해 모바일IPTV 가입자를 늘렸다. IPTV 측은 지상파에 뒤통수를 맞았다고 비난하지만 따져보면, 요금인상은 양측 모두에게 이득이다. 피해는 당연히 가입자만 보게 된다.

수신료 인상이 절박하다고? 시청자는 이미 4000원 이상 납부하고 있다!

유료방송 가입자가 사업자를 경유해 지상파에 납부하는 돈은 지금도 많다. 현재 유료방송은 지상파에 채널 당 CPS(가입자당 대가)로 월 280원을 준다(의무전송채널 KBS1 EBS 제외). 실시간방송 대가다. 최근 지상파는 CPS를 400원으로 올려 달라 요구했다. 협상 초기에는 430원까지 이야기가 오갔다. 유료방송 가입자를 1750만명으로 계산하면 지상파의 연간 재송신료 수입은 1764억원이다. CPS를 400원으로 올리면 2520억원이 된다. 각사 당 840억원 꼴이다.

지상파가 소위 ‘제값 받기’ 꿈을 실현하고, 유료방송이 지상파의 소원성취를 도와준다면 유료방송 가입자가 부담해야 할 몫은 상상외로 커진다. 요금인상분은 그대로 가입자가 떠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과 VOD를 시청하지 않더라도 양방향 유료방송 가입자는 지상파를 위해 최소 월 4120원(=공영방송 수신료 2500원+실시간방송 CPS 1200원+무료VOD 홀드백 3주 상품 CPS 420원)을 부담해야 한다. 물론 유료VOD 대가는 따로다.

유료방송 가입자가 지불할 요금이 어디까지일지 모르겠다. 지상파와 유료방송에게 VOD는 ‘후리다매’ 상품이다. 이용자가 부담해야 할 유료방송 요금은 분명 점점 더 오를 것이고, 가입자는 오르는 줄도 모르고 지불을 늘려갈 수 밖에 없는 회로에 놓여 있다. ‘갈수록 호갱님’이 되지 않으려면 '코드커팅'(집에서 인터넷으로 방송을 보고, 기존 케이블 등 유료방송에는 가입하지 않는 것)하고, 무선인터넷 정도만 설치하고, 값싼 OTT에 가입하는 게 경제적으론 가장 이득이다. 지상파 실시간방송을 보지 않는다면 TV를 치우고 모니터로 OTT만 이용하는 편이 저렴하다.

솔직해져 보자. 수신료를 올려야 지상파가 살 수 있다? 이제, 지상파 안에도 그런 순정한 논리를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냉정하게 볼 때, 국회의 문턱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지 않은 KBS의 수신료 인상 요구는 다분히 '내부 정치'와 '연임'을 위한 사장의 지상과제이지 KBS의 생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요인은 이제 아니다. 가입자들은 이미 지상파를 보기 위해 최소 4000원 이상을 지불하고 있고, 지상파 방송은 이를 유료방송 사업자를 경유해 이미 징수하고 있다. 수신료는 명분일 뿐이다.

언젠가부터 지상파는 지상파, DMB, 스카이라이프 같은 공적 플랫폼 그리고 다채널서비스를 활용해 광고매출을 늘리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유료방송과 공생적 기생을 하면서 가격 협상을 통한 매출 올리기에만 바쁘다. 이통사들이야, 재벌 대기업이니 사회적 통제에 있어 상대적으로 그렇다 치자. 진짜 천덕꾸러기는 지상파다. 지상파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날품팔이를 자처하며 제 잇속만 챙긴다면, 시청자는 끊임없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고 방송의 공적 책무성은 계속 밀려날 수밖에 없다. 지상파는 유료방송에 ‘나 없이 사업할 수 있느냐’고 묻지만 정작 자신을 향한 질문은 무시하고 있다. 공적 자산인 전파를 갖고 장사치처럼 굴고 있는 지상파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 ‘정말, 시청자가 떠나면 어떡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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