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 발을 슬쩍 걸친 피키캐스트(대표이사 장윤석)가 입점비용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자기 것으로 아는 소매치기”라는 비난부터 “한국판 버즈피드”라는 찬사까지 다양한 평가가 나온다. 콧대 높은 학계가 본격적으로 피키를 다루기 시작했고, 언론은 피키를 ‘경쟁자’로 견제하는 모양새다. “재밌으면 됐지, 그냥 냅둬!”라는 반응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피키캐스트에는 “펌질과 복제 위주의 불법-퇴행적 비즈니스”로 지적할 만한 요소와 “모바일-SNS에 최적화된 콘텐츠 큐레이션”으로 평가할 만한 내용이 모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 문화연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전공, 서강대 문화연구학회는 28일 오후 서강대 가브리엘관 401호에서 <피키캐스트와 뉴스큐레이션>을 주제로 디지털 생태계 진단포럼을 열었다. (사진=문화연대)

네이트판의 ‘깔끔한 버전’ 정도가 아니다. 피키캐스트는 2013년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시작해 2014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출시했는데, 1년 만에 누적 다운로드 600만건을 기록했다. 짤방과 움짤부터 웹툰, 리스티클, 뉴스까지 콘텐츠도 다양하다. 하루 이용자가 120만명 이상이고, 이용자의 체류시간도 20분 이상이다. 슬로우뉴스 편집장 민노씨 표현대로 “대중은 피키캐스트를 선택”했다. 피키는 이제 네이티브 광고 한 건을 1500만원에 수주할 만큼 영향력 있고, 에디터만 백여명에 가깝고 뉴스룸(편집국)까지 갖춘 종합 콘텐츠플랫폼이 됐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피키를 ‘3차 뉴스콘텐츠 큐레이터’로 분류했다. 기성언론이 ‘1차 큐레이터’이고 허핑턴포스트코리아나 인사이트 같은 매체와 포털사이트가 ‘전문적 가공’ 실력이 있는 2차 큐레이터라면, 피키캐스트는 버즈피드처럼 ‘비전문적인 리믹스와 매시업’이 특징인 3차 큐레이터라는 게 이광석 교수 설명이다. 김동원 공공미디어연구소 정책팀장은 “피키는 직접 방문해야 하는 1차 플랫폼, 백화점식으로 콘텐츠를 진열한 2차 플랫폼이 아니라 SNS 같은 일상에 콘텐츠를 던지는 (기성언론과) 전혀 다른 미디어”라고 설명했다.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 대표 말대로 피키캐스트가 저널리즘과 경쟁하는 미디어는 아니라는 얘기다.

기존 미디어와 경쟁관계가 아닌데도 피키가 ‘논쟁’ 대상으로 떠오른 이유는 뭘까. ‘정론지’가 보기에 피키는 1, 2차 큐레이터와 달리 ‘불펌’ 리믹스(개별 콘텐츠 복제)와 매시업(복제 뉴스 큐레이팅)으로 먹고 사는 무단복제의 온상이다. 슬로우뉴스 편집장 민노씨는 피키캐스트를 두고 “재벌3세와 (보통 사람인) 저나 공평한 것은 시간밖에 없는데 피키캐스트는 전 세계 콘텐츠를 자기 것으로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시간을 훔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광석 교수는 버즈피드가 “누리꾼들의 펌질로 복제 뉴스를 만들면서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종결자’”가 됐다고 지적하면서 피키캐스트의 성장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불펌’은 피키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성규 블로터미디어랩 랩장은 “피키캐스트가 수입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디지털 공유지에 있는 누군가의 창작과 저작물을 사적으로 전유하고 수익화하는 것”이라며 “디지털 생태계의 풍성한 복제문화를 토대로 성장한 피키가 이제는 디지털 콘텐츠 재생산을 위한 사회적 증여, 복제의 재복제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업자와 누리꾼의 창작물에 대한 ‘무단취식’을 멈추고, 콘텐츠 생산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디지털 생태계와 저널리즘이 퇴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피키캐스트가 버즈피드처럼 ‘불펌’을 삭제하고 자체제작 콘텐츠를 늘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근시안적 대안이라는 한계가 있다. ‘거리낌 없는 펌질’로 볼거리를 공유하는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된 플랫폼을 지향하고, 콘텐츠 큐레이션을 ‘생산자(또는 에디터)의 관점으로 재생산한 창작물’로 본다면 피키는 공유에 대한 철학을 갖고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해야 한다. 그러나 “우주의 얕은 재미”를 표방하는 피키 자신은 ‘우클릭’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병일 정보공유연대 대표는 “현행 저작권 시스템이 (피키에서) 작동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저작권을 (디지털 생태계의 공유문화에 맞게)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키가 무엇을 대체하고 무엇을 극복할지는 그 다음 문제다. 철학이 없다면 네이트판의 트래픽 정도만 가져갈 수 있을 뿐이다. 피키캐스트가 ‘뉴스’에 진입하는 것을 위험하게 보는 것도 ‘철학 없음’ 때문이다. 피키가 ‘세상 모든 이슈’, ‘두뇌의 섹시화’, ‘별의 별 스타’ 같은 메뉴로 묶어 제공하는 뉴스는 대부분 허핑턴포스트나 인사이트 같은 2차 큐레이터가 다루는 ‘연성뉴스’와 연예인 관련 내용이다. 그래서일까. 언론의 평가는 인색하다. 매체비평지 <미디어오늘>은 “‘우주의 얕은 재미’가 불러온 저널리즘 재앙”이라고 잘라 말했다. 포럼에 참석한 기성언론 기자들은 대부분 피키의 무단취식을 비판했다.

피키의 뉴스서비스는 뉴스의 대다수가 단순 정보와 실시간검색어 내용, 그리고 ‘우라까이’(Ctrl C+Ctrl V)와 ‘어뷰징’(동일기사 반복전송)인 지금 온라인뉴스를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건강하다. 그러나 단순 속보 위주로 기사를 편집해 내보내는 ‘보수화한 포털사이트’보다도 퇴행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더구나 거대 플랫폼이 연성화된 뉴스콘텐츠로 유통해 성공하기 시작하면 이 같은 연성화가 아랫단위로 전염될 가능성이 크다. 김동원 연구팀장은 “1차 매체들이 콘텐츠 질보다는 (재미를 따지는) 피키일보가 되는 ‘외부효과’가 생긴다”며 “전통매체들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에서 피키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피키가 ‘불펌’을 일삼으며 디지털생태계를 망가뜨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고, ‘실검’ 위주의 검색엔진으로 손쉽게 트래픽을 만드는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와는 다른 콘텐츠플랫폼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피키는 대중의 기호를 적절하게 분석했고 선택을 받았다. 학계와 언론이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제 고민할 것은 피키가 디지털생태계와 저널리즘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지금은 플랫폼이 ‘갑’이다. 모바일로 대부분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 플랫폼의 힘은 더욱 세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강정수 대표 말대로 공룡은 둘(네이버-다음카카오)보다 셋(+피키캐스트)이 있는 게 낫다. 위기에 빠진 언론 입장에서도 오히려 전향적으로 피키의 콘텐츠 전략을 벤치마킹하거나 입점·제휴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실검 어뷰징에만 목을 매는 개콘 <민상토론>보다 못한 언론도 많다. 말이 나왔으니 기성 언론이 피키캐스트와 <민상토론> 매시업 콘텐츠를 같이 만드는 건 어떨까. 피키 같은 거대한 플랫폼이라면 공영방송 개그프로그램 코너에 나온 이슈 해설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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