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미디어렙 영업일지는 방송사가 ‘돈’과 프로그램을 맞바꾸는 음성적 거래를 하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MBN <천기누설> ‘아로니아 편’은 한국인삼공사로부터 돈을 받고 제작됐다. 해당 방송에서 아로니아를 먹고 시력이 좋아져 더 이상 필요 없게 됐다며 방송사에 안경을 보냈다는 사연은 제작진이 연출한 ‘가짜’였다. <천기누설> 프로그램들은 별도의 ‘돈’을 받고 재방송됐다. MBN의 <천기누설>, <엄지의 제왕> 등의 프로그램에 식자재가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또 어디서 협찬을 받았을까’라는 의구심이 먼저 들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 MBN미디어렙 영업일지

협찬을 받은 프로그램은 보도교양 프로그램 뿐만이 아니었다. MBN <경제포커스>는 한국전력공사와 LH공사로부터 돈을 받고 해당 공기업들 띄우기 보도에 앞장섰다. MBN 보도 자체에 대한 ‘신뢰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돈’을 받고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은 홈쇼핑채널과도 연결이 돼 있었다. 가끔 방송프로그램을 보다가 홈쇼핑 채널로 돌리면 “방금 OOOOO에서 나온 이 제품”이라고 판매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방송사와 협찬 그리고 홈쇼핑으로 연결되는 계약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MBN미디어렙 영업일지를 통해 드러났다.

앞서, 설명한 아로니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MBN <천기누설>에서 관련 상품을 다뤘고 NS홈쇼핑에서는 “MBN 천기누설에서 아로니아 유용성 집중보도된 제품”이라며 판매했다. 그리고 해당 아로니아의 매출은 150% 늘었다고 한다. 그만큼 MBN미디어렙 영업일지는 ‘돈’과 관련한 방송프로그램의 나쁜 관행 모두 이야기해주고 있다.

▲ MBN '경제포커스' 캡처

방통심의위, “MBN에서 돈 받은 건 우리 소관 아니다”

현재, MBN미디어렙 영업일지가 드러낸 MBN과 미디어렙, 광고주들의 음성적 거래 내용의 위법성은 주무부서인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해 공정거래위원회와 대검찰청에서 모두 조사 중이다. 방통위의 조사 결과에 따라 무엇보다 방송사 재허가가 엇갈릴 수도 있다. 방통위는 오는 5월 말까지는 결론을 내리겠단 입장이다.

그리고 방통위 조사결과에 앞서 방통심의위의 ‘심의’ 제재가 먼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방통심의위 산하 방송심의소위는 지난 13일 MBN <천기누설> ‘아로니아’ 편에 대해 재승인시 감점요인이 되는 법정제재 ‘관계자에 대한 징계’(벌점4점) 제재에 합의했다. 또한 같은 프로그램 ‘홍삼’ 편에 대해서는 심의위원들 간 제재수위가 ‘주의’(벌점1점)과 ‘경고’(벌점2점)으로 엇갈려 전체회의에 회부했다. MBN <경제포커스>는 ‘문제없음’과 행정지도 ‘권고’, 법정제재 ‘주의’, ‘경고’로 각각 나뉘어져 전체회의에서 제재수위가 결정될 예정이다.

하지만 방통심의위의 태도는 다소 싱겁다. MBN <경제포커스>와 <천기누설> 등에 대해 시청자들은 “돈 받고 제작한 것은 잘못”이라며 제재를 요청했다. 하지만 방통심의위는 “돈 받은 부분은 우리 소관은 아니고”라는 전제를 두고 심의를 진행했다. MBN에서 돈을 받았건 아니건 방송 결과물인 ‘프로그램 내용’에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논리 구조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3조(법령의 준수) 1항은 “방송은 기획·편성·제작에 있어 관계 법령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해당 규정만 보면, MBN <경제포커스>와 같은 방식의 프로그램은 법령을 위한반 소지로 볼 여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방통심의위는 이 부분을 “심의위원회 소관이 아니다”라고 의견을 모았다.

MBN <경제포커스> ‘이슈포커스’ 코너에서 MB자원외교를 주제로 대담을 하는 과정에서 유독 '한전' 만을 성공사례로 꼽은 배경에는 협찬금이 있었다. 협찬금 때문에 MBN <경제포커스>의 방향이 그랬다면 이는 심의 규정을 위반한 것일까, 아닐까. 너무나 명확한 문제지만 방통심의위는 이 부분에 대해 심의 규정 14조 '객관성' 조항만을 적용해 돈을 받았는지의 여부는 방송내용을 심의하는 방통심의위 소관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 (자료=민언련)

돈 받고 제작되는 보도에 대해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는 의지 보여줬어야

MBN <경제포커스>를 제작한 MBN 정창환 부장은 프로그램 제작 취지에 대해 “공기업의 자료를 믿어야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100% 틀렸다고 할 순 없다. 한전의 자료를 가지고 MB외교의 ‘성공사례’로 소개한 것은 저널리즘 관점에서 봤을 때 비판할 수 있지만 그건 '비평의 영역'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MBN의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돈을 받고 제작했단 혐의를 벗기 위해, 방송사의 책임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해명을 100% 믿어준다고 해도, 정부가 준 자료에 대해 검증을 소홀히 했다면 방송사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예컨대,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단원고, 전원구조’라는 오보 또한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았던 보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방통심의위의 심의과정은 매우 아쉬울 수밖에 없다. MBN <경제포커스>는 돈을 받고 제작해 시청자들의 신뢰성을 추락시킨 부분을 심의의 관점으로 삼았어야 했다. 이를 방통심의위가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치부한 것은 사실상 향후 엇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도 행정적 감독을 포기하겠단 메시지와 다를 바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방통위의 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로 심의를 미뤄두는 편이 나았다.

전체회의에서 방통심의위가 MBN <경제포커스>에 대해 재승인시 감점이 안 되는 행정지도로 결론을 내려선 곤란하다. 방통심의위 방송 제작의 부조리한 관행이 프로그램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조금이라도 개선해보겠단 의지를 갖는다면, 법령 46조(광고효과 제한)의 2항 “방송은 협찬주에게 광고효과를 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작·구성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적극적으로 적용해 MBN을 제재하는 것이 옳다. 또한 개별 심의가 아닌 MBN 프로그램 전체에 대한 '중점 심의'를 진행해야 한다.

MBN미디어렙 영업일지가 드러낸 심각한 파문에 비해 방통심의위의 대처는 너무 소극적이고 그래서 차라리 이 사태를 '봉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아직 늦지 않았다. 방통심의위와 방통위가각각의 역할과 책무를 잘 나눠 맡아, 돈과 프로그램을 맞바꾸는 행태에 대해 ‘본때’를 보여주는 결과를 내주기를 기대한다. 정황과 물증은 모두 충분하다. 의지만 있다면 바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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