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해야만 하는 시기가 돌아왔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벌써 6년 전이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지만 그의 그림자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친노 대 비노’라는 대결구도 속에서 아직도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긍정적인 의미로든 부정적인 의미로든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인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극복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는 것은 비단 새정치민주연합 뿐만이 아니다. 진보정치세력에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하나의 역사적 트라우마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원내 제3당의 지위를 갖고 있는 정의당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산으로부터 상당히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돼있다.

정의당에는 2010년 창당됐던 국민참여당의 후예들이 지금까지도 결합해있다. 천호선 대표의 경우 참여정부에서 의전비서관과 대변인, 홍보수석비서관을 맡아 이름을 날린 바 있다. 지금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있지만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통해 공개활동을 재개한 상태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국민참여당을 통한 ‘친노의 정치세력화’를 주도한 핵심 중의 핵심이다.

정의당 내에서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지난 4·29 재보궐선거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서울 관악구 을 선거구에 출마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선거연대를 할 것인지를 두고 당내 논쟁이 심각한 수준까지 벌어진 것이다. 당시 해당 선거구에 출마했던 정의당 이동영 예비후보는 정동영 전 장관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후보등록을 포기해 여러 추측을 낳게 했다.

정의당·노동당 후보들과의 단일화 논의 결과가 공개되기 전에 정동영 전 장관이 후보등록을 해버린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됐다는 것이 공식적인 설명이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의당 내의 구(舊)국민참여당 계열의 반발 역시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보고 있다. 친노 성향 인사들은 참여정부의 ‘후계자’로 고려했을 만큼 상당한 정치적 배려를 해줬음에도 정동영 전 장관이 2007년 대선 국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신’했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갈등은 후보등록 다음날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가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정동영 전 장관을 지지하기 위해 이동영 후보가 사퇴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놓으면서 더욱 증폭됐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결국 진보정치세력이 참여정부를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갈등은 근본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추진했던 ‘개혁’이 일부분은 진보정치세력의 구상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또 일부분에서는 정면충돌을 불러일으킬만한 내용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라는 데서 온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3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혁과 진보정치세력이 함께 할 만한 것은 정치개혁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힘이 없는 사람들이 정치의 주체가 돼야 하고 이를 위한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하며 지역주의를 해소하자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특유의 반권위주의적 행동이나 소탈하고 솔직담백한 어투 등은 진보정치세력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해지는 순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캠프에 있던 일부 유력 인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대부분 ‘자주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이었는데, 상대적으로 북한에 우호적인 정책을 갖고 있는 후보의 당선에 기뻐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 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혁적 색채를 갖고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면 자당의 후보가 보는 앞에서 경거망동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복지 및 경제정책 등에 있어서는 참여정부와 진보정치세력과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까지 불거졌다. 참여정부는 세계적 대세였던 신자유주의적 개혁조치를 대신할만한 국정운영철학을 내놓을 수 없는 처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새 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내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탄하였다는데 그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대통령이었다면 상황은 좀 달랐겠으나 그 당시의 처지로서는 새 시대의 맏형이 될래야 될 수가 없었다.

관료들의 무능함이 만들어 낸 구멍은 사실상 그 관료들의 생각과 별로 다를 게 없는 내용의 민간경제연구소의 세련된 보고서들로 채워졌으며 이를 통해 정초된 ‘동북아 금융허브론’은 한미FTA 체결까지 연결되는 정책적 비약의 방아쇠가 됐다. 국민의 정부에서부터 추진돼온 ‘생산적 복지’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복지제도의 전면적 시장화로 귀결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지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던 상황이었다는 점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 진보정치세력은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과 연합해 이들의 요구를 대리 제시함으로써 정치적 비전을 분명히 하려 했다. 내부에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 입법’ 등에 대한 태도를 놓고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그러한 논쟁을 무색케 할 만큼 현장의 문제는 심각한 수준에 와 있었다. 그러나 올바른 정치적 명분과 구호를 외치는 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체제에 대한 비전을 보여줬어야 할 그 기간 동안 진보정치세력은 대안을 찾는 것에 실패했다. 몇 차례의 의미 있는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정파적 논쟁 앞에서 그 모든 것들은 무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진보정치세력이 ‘노무현’이라는 정치적 기표 앞에서 곤궁함을 면치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진보정치세력은 참여정부 시기 그들에게 제기된 역사적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당시보다 퇴화된 정치환경에서 더 고약한 질문들에 답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려있다. 정치개혁을 말하는 참여정부에 대해서는 부패한 정치를 청산하는 것으로는 모자라고 노동자·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지만, 최소한의 염치를 저버린 기득권이 다시 복귀해 통치를 엉망으로 하는 오늘에는 상식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입장 자체가 못 되는 어려움에 놓인 것이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진보정치세력은 어떤 이유로든 간에 참여정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다시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 신세이기까지 하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2017년 대선에 대한 진보정치세력의 태도를 정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시작하자면 복잡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지만 단 세 가지만 강조하고 싶다. 첫째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진보정치세력은 참여정부 시기 입장으로 복귀해 기계적인 잣대만을 들이 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과거를 오늘날의 관점으로 다시 재구성하고 평가하는 작업은 미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의 집행관’으로서의 노무현 전 대통령만을 보는 게 아니라 대중들에게 정치적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긍정적인 정치개혁의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끝내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함께 봐야한다. 이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어야 진보정치세력의 새로운 정치적 비전 제시가 가능해진다.

두 번째는 진보정치세력이 국가 운영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진보정당 내외의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수권능력’을 갖추는 일을 논하는 것이 유행인데 정작 ‘수권능력’이라는 게 무엇인지에서조차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정도가 돼도 의심받는 게 수권능력의 유무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진보정치세력이 그간 실제로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제대로 내놓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당장 금융위원장이나 공정거래위원장을 맡겨 볼 사람이 있는지, 없다면 최소한 이들 기관에 현실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스스로 고민하고 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그럼에도 이 모든 과정에서 진보정치세력 고유의 이념과 사상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보정치세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극복하고 대안적 현실 정치를 보여줄 수 있는지 여부를 가늠할 대전제다. 진보정치세력은 목표를 이루기까지 얼마가 걸릴지 누구도 알 수 없는 먼 길을 가야 하는데 이정표를 잃어서는 곤란하다. 힘든 모험 끝에 도착한 곳이 애초에 출발한 바로 그 지점이거나 가서는 안 될 장소가 된다면 소용이 없을테니 말이다. 최근 진보정당 일각에서 논의되는 정계 개편 논의는 이 이정표가 낡고 빛이 바래 적혀있는 글자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진보정치의 이념과 사상을 다시 닦고 조이며 기름을 쳐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을 해낼 때에야 진보정치세력은 정파적 의미에서가 아닌, 한국사회를 바꿀 ‘없는 자’들의 연합체로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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