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결국 국무총리로 내정됐다. 야당이 공안통치,김기춘의 아바타, 회전문, 수첩 등의 용어를 동원해 비판하고 있고,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간접적인 불만을 표시하는 등 여당 내에서도 껄끄러운 기류가 있으나 대통령은 아랑곳않고 ‘황교안 총리’ 카드를 밀어 붙이는 모양새다.

매 인사마다 이름 거론된, 대통령이 특별히 더 신뢰하는 사람

황교안 내정자는 박근혜 정부 들어 주요 인사 후보군의 ‘단골메뉴’로 언급돼왔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사의를 밝힌 당시에도, 정홍원 전 국무총리의 후임을 논할 때도 늘 황교안 내정자의 이름이 신문 지상에 오르내렸다. 매 인사마다 이름이 거론된 탓에 황교안 내정자를 대통령이 특별히 더 신뢰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횡행했을 정도였다. 황교안 내정자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청와대의 입장을 앞장서서 관철시키려 노력했고 이를 거부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날리는’데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을 보면 크게 틀린 추측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통령이 신임하는 사람이라도 해도 황교안 내정자의 임명을 청와대가 아무 고민도 하지 않고 밀어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장 야당과의 관계가 문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황교안 내정자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두 차례나 제출한 바 있다. 게다가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이다. 현직 법무부 장관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하는 것이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그야말로 뻔한 이야기다. 검찰이 참여정부 시기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거나 문재인 대표의 2012년 대선자금 문제를 무리하게 끼워맞추는 경우 정국 경색은 불가피하다.

황교안 내정자가 다소 편향적인 인물로 비춰지고 있다는 것도 야당의 반발을 살 위험이 높은 부분이다. 황교안 내정자는 야간에 신학대학을 다녔을 만큼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고 검찰 내에서는 대표적 ‘공안통’으로 불릴만큼 이념적으로 보수적인 인물로 규정되고 있다. 논란이 됐던 통합진보당 해산 역시 황교안 내정자가 주도해 청구된 것이다. 일부 언론 보도에 의하면 황교안 내정자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정당해산 심판 청구를 대비해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사회통합적 인물이 아니라며 반발하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 황교안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가 21일 정부 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출신들에게 맡겨진 국정 전반, '황교안-우병우-신임 법무'의 검찰 벨트 작동하나

나라의 운영이 검찰들의 손에 맡겨지게 됐다는 한탄이 나오는 것도 황교안 내정자가 국무총리가 되는데 어려움으로 작용되리라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기춘 비서실장 시절부터 법조인 특히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한 비판을 감수해왔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물론 당장 전임인 정홍원 총리가 검찰 출신이고 한때 국무총리직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안대희 전 대법관 역시 전설적인 특수통 검사 출신이다.

이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걸로 알려진 또 하나의 검찰 출신 주요 인사로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언론 지면에서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애제자’처럼 묘사되고 있으며 지난해 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을 수습한 인사로도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이완구 전 총리가 야심차게 추진한 ‘부패와의 전쟁’ 역시 우병우 수석의 ‘작품’이라는 보도가 잇따라 나온 바 있다. 우병우 수석은 직책에 비해 경력이 부족해 검찰 조직을 한 손에 휘어잡을 수 있을만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므로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청와대 민정특보로 영입됐다. 결국 이후 정치개혁 등의 이슈에서 황교안 총리-우병우 수석-신임 법무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검찰 벨트’가 위력을 발휘할 확률이 더욱 높아진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난히 검찰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추측이 나오지만 결국은 검찰 출신만큼 일을 ‘깔끔하게’ 할 수 있는 인사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정답이지 않을까 싶다. 검사들은 ‘검사동일체 원칙’을 평생 입에 달고 살아온 사람들이라 상명하복의 문화에 매우 익숙하다. 자신의 개인기로 성과를 내야 하는 교수 출신들과는 다르다.

또 검사들은 사건을 수사하는데 있어서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갖고 스스로의 판단에 따를 권한이 보장돼있는 삶을 살아왔다. 시키는 일에만 익숙한 관료 출신들과는 또 다른 입장인 것이다. 특히 공안이나 수사기획 파트에서 다년간 일한 경험을 갖고 있는 검사 출신들은 정무적 판단능력이 정치인 못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결국 대통령의 하명을 받아 알아서 상황을 해결하고 정리하는 일은 검찰 출신 인사가 가장 잘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검사동일체' 정신과 '자율적 권한 행사' 경험이란 검사적 '속성'에 모든 것을 의지하는 정권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뒤집어 보면 검찰 출신 인사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할 만큼 박근혜 정부의 ‘맨파워’가 부족한 상황이 드러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상명하복의 문화’를 들먹여야만 해설 가능한 어떤 곤란함이라는 상황은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리더십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또, 문제 해결을 위한 정무적 판단력의 발휘도 우수한 참모들의 역량을 바탕으로 정치인으로서의 판단력을 발휘해 이를 실행하는 조직의 효율적 운영을 통해 해야 하는 종류의 것이다.

돌아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능력들의 발휘에 늘 애를 먹어왔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절제된 행동과 말을 통해 자신의 결점을 감춰왔지만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자리다. 세월호 참사 및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안이한 대응 탓에 박근혜 정권은 ‘콘크리트 지지층’이 일순간 붕괴되는 현상까지 겪어야 했다.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범인과 다를바 없는 화법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간 대통령이 말을 아껴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역시 반복되는 국무총리 임명 실패의 슬픈 기록이다. 처진 굵은 눈썹과 ‘바위’를 연상케하는 동그란 얼굴형으로 언뜻 보기에 ‘억울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것 같은 정홍원 전 총리가 김영삼 정부의 이회창 총리 다음으로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총리가 된 것을 보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을 하라는 명을 받았지만, 그 명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신세로 표류하다 ‘유임’ 되어버린 그의 얄궂은 운명에 사람들은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안대희 전 대법관과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청문회도 가지 못하고 낙마하고, 가까스로 인준된 이완구 총리도 온갖 비웃음 속에 불법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으며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되자 이제 언론은 ‘국무총리 무용론’까지 언급하기 시작했다.

밀어 붙이기는 분명하지만, 더 분명하게 드러난 '자신감 결여'

▲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방한 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영접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난관 속에서도 ‘황교안 총리’ 카드를 밀어 붙이는 것은 불통과 자신감의 발로로 봐야할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다. 검찰 출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번 인사 역시 오히려 박근혜 정권의 자신감이 심각하게 저하돼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애초 청와대는 현직 장관의 차출을 일단 배제하고 총리 후보를 물색했다고 한다. 모두가 무난한 임명을 전망하던 이완구 전 총리가 청문회를 열자마자 ‘누더기’가 되다시피 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청문회를 거쳐 본 인물이라도 안심할 수 없고 특히 현직 장관을 차출했다가 낙마하고 공석의 장관자리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사고’가 일어난다면 국무총리 임명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 총리 후보자 내정을 발표한 당일까지 발표 시간을 두고 청와대가 우왕좌왕한 것도 이런 정황과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즉, 황교안 내정자의 등장은 일견 정권의 힘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이런 상황에 대한 소심함이 반영돼있다. 신임 법무부 장관으로 소병철 전 대구지검장이 내정된 것 역시 이를 잘 보여준다. 소병철 전 지검장은 전남 순천 출신으로 광주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김진태 검찰총장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하나 낮다. 사실상 ‘허수아비’ 장관이 될 가능성마저 보인다. 이걸 야당에 대한 어떤 ‘시그널’로 보는 것은 결코 무리한 해석이 아닐 것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호남 출신 법무부 장관과 황교안 내정자의 임명을 ‘딜’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과연 ‘소통과 배려’로 볼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이 분명히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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