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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을 그린 이유, “세상과 만화 잇는 중간 다리가 없다”[‘송곳’ 북 토크] 최규석 “낯설게 돋보이는 만화이고 싶었다”
박장준 기자 | 승인 2015.05.20 22:35

헌법에 있지만 현실에는 없는 게 ‘노조 할 권리’다. 쥐도 새도 모르게 회사와 짜고 치는 어용노조가 있는가 하면 몇 년 동안 지켜낸 민주노조 위원장이 하루아침에 어용노조 위원장으로 변신하는 일도 자주 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삼성전자서비스 울산센터의 ‘그린화 계획’KT의 ‘부진인력 퇴출프로그램’은 다른 기업과 문제 사업장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은 재계와 언론 모두가 “삼성에 노조 생기면 나라가 흔들린다”고 호들갑 떠는 사회이다. 간판만 노무법인이지 ‘노조파괴’ 업체도 널렸다. 이런 곳에서 노동조합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 희생이 뒤따른다. 열사도 많다. 노조조직률은 10%밖에 안 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법외노조’고, 이주노조 ‘합법화’는 십년 째 감감무소식이다.

극한투쟁을 겪은 이들은 때로 “노조 하지 말라”고 한다. 잃고 상처받을 것이 많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최규석 작가가 2013년 말부터 네이버에 연재하는 웹툰 <송곳>의 주인공 이수인, 그의 실제모델인 김경욱씨(전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는 19일 <송곳> 단행본 출간 기념 북토크에서 “노조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오면 하지 말라고 말린다”고 말했다.

   
▲ 19일 저녁 서울 서교동 레진코믹스 브이홀에서 열린 <송곳>(창작과비평, 2015년 5월) 단행본 출간 기념 북토크 모습. (사진 왼쪽부터) 변영주 감독, 최규석 작가, 하종강 교수는 이날 한 시간 반에 걸쳐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북토크에는 <송곳> 주인공 중 한 명인 이수인의 실제 모델 김경욱 전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이 참석했다. (사진=창비)

파업 장기화로 빈털터리가 되고,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로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된 사정보다 ‘우리 편’에서 받은 상처가 더 깊은 경우도 있다. 웹툰에 나오는 대로 회유와 압박은 치밀하면서도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노조탈퇴는 순식간이다.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지만 말 못할 사정으로 탈퇴한 조합원도 있고, 지도부를 믿지 못해 노조를 나가는 조합원도 있다.

김경욱씨는 “투쟁사업장은 다 똑같이 내부에 분열이 생기고, 그것도 권력이라고 다투고, 상급단체와 갈등을 겪고, 조합원이 배신하고, 조합원이 보기에는 지도부가 배신한다”며 “오해로 인한 상처가 굉장히 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편에게 받은 상처가 많았다”며 “간헐성 폭발장애와 조울증을 진단받았고, 몇 년 지났지만 지금도 치료를 받는다”고 털어놨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말대로 김경욱씨는 ‘노동운동이 이런 것인지 몰랐던 사람’이다. 하종강 교수는 “이쪽에서 40년쯤 됐는데 철학이 바뀌거나 변절해 떠난, 김문수 같은 사람은 많지 않다”며 “동료에게 입은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떠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랜드노조는 500일 넘게 파업했다. ‘전국적 투쟁’이었지만 그만큼 버티기 힘든 싸움이었다.

영화 <파업전야>에 참여한 영화감독 변영주씨는 “아무도 없고 전기마저 끊긴 기숙사에서 백일 넘게 있던 인천공단 친구들을 보면서 ‘투쟁 어떡하지’ 보다 ‘어떻게 버틸 수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랜드투쟁은) 500일 동안 TV로 방영한 게 아니다. <송곳>처럼 댓글 써주는 사람도 없다. 노동자에게 투쟁은 힘내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랜드투쟁도 그랬다. 노조는 500일 넘게 버티다 ‘간부 권고사직’을 받아들였다. 김경욱씨는 “노조는 지도부를 희생하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그래야 (조합원들이) 간부를 할 수 있다. 외주화 철회,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노조 요구를 전부 관철했지만 ‘간부 사직’을 받아들였다. 이게 절반의 패배”라고 말했다. 그는 “노조 하면서 조합원에게 ‘부당해고는 용납할 수 없다’고 약속했는데 못 지켰다. 그래서 이후 한 번도 노동조합에 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 북토크 시작 전 무대 (사진=미디어스)

김경욱씨는 회사에서 ‘이사’ 직함을 달고 있고 과거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지만, 하종강 교수는 그를 “여전히 510일 파업의 경험을 꽃피우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노동조합을 제안했거나 경험한 사람들은 안다. 사측의 보복이 두렵지만 회사도 노동조합을 두려워하고, 결국 회사와 싸울 수 있는 공간은 노동조합뿐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한다. 오늘도 어떤 현장에서는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혹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조직한다. 이주노동자가 합류해 민주노조에 성공한 곳도 있다. 직원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 단숨에 생긴 노조도 있고, ‘송곳’ 같은 사람이 주도하는 곳도 있다. 크든 작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대’는 노조로 표현된다. 노조는 싸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실제 까르푸 부천 중동점 ‘관리자’ 김경욱씨는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직원들을 내보내라는 회사 지시를 따르지 않고, 2003년 1월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노동조합은 그해 6월 현장직원 3분의 1로 70일 동안 파업을 했다. 그런데 회사는 비정규직으로 마트를 굴렸다. 이후 노조는 비정규직을 조직했고, 까르푸노조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한 노조가 됐다.

최규석 작가가 이랜드노조 510일 파업 전에 있었던 2003년 까르푸노조 70일 파업을 그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까르푸투쟁은 작은 사건이지만 (2008년 이랜드투쟁이라는) 큰 싸움의 시작이었다. 큰 싸움의 판이 짜이는 과정이 궁금했다. 기사로 작성되지 않은 작은 사건들에 머물렀고, 그 안에 독자들이 따라갈 지점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언론은 노동조합을 ‘강성노조’나 ‘파업투쟁’으로 다루지만, 정작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과정은 주목하지 않는다. 과거 최규석 작가는 “한국은 세상과 만화를 잇는 (언론이라는) 중간다리가 사라졌다”고 지적했었다. 최규석 작가는 5년 전부터 평범한 사람들이 노동조합에 합류하는 과정을 취재했다. 그리고 이들이 왜 노동조합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취재했다.

<송곳>은 1020세대와 노조를 고민하는 노동자에게 중간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변영주 감독은 “다양하고 심하게 착취가 이루어지는 오늘, 노동운동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송곳>은 노동조합이 ‘올드(old)’한 것이 아니라 ‘뉴(new)’하고 ‘트렌디(trendy)’한 것이라고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송곳>처럼, 노동조합은 과거가 아닌 지금 필요하다.

   

▲ 최규석 작가는 오는 “6월 안에 연재를 시작할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송곳>은 (단행본 기준) 5~6권이 될 것 같다”이라고 말했다. 최근 최 작가는 <송곳>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기로 계약했다. 영화는 연내 크랭크인이 유력하고, 드라마도 JTBC에서 방영될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구고신 역에 어울리는 배우’로 한석규씨를 추천했고, ‘이수인’ 역을 맡을 배우는 따로 꼽지 않았다.

최규석 작가는 ‘다음 아닌 네이버를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처음에 네이버와 다음 둘다 (연재가 가능하고) 괜찮다고 했다. 사람들은 네이버가 돈을 더 많이 주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사실 다음이 더 많이 제시했다. 그런데 다음으로 가면 너무 다음스럽다고 생각했다. 이 만화는 낯선 곳에 놓여 있을 때 돋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순위가 낮아서 속상했지만 지금은 괜찮다. 30대 남성이 주독자층이라고 나오지만 독자의 반 이상이 20대 이하”라고 말했다.

박장준 기자  wesh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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