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많은 말들이 쏟아진다. 그 말 가운데 진짜 '팩트(fact 사실)'가 무엇인지 찾는다. 그 '팩트' 확인을 위해 부단히 애쓴다.

사람들은 기자를 상대로 많은 말을 쏟아낸다. 기자회견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들의 억울함을 주장하며 가끔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취재처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의 논리로 그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기자의 전화에도 사람들은 각각의 위치에서 하소연을 한다.

기자들은 쏟아지는 많은 말들 가운데 진짜 '팩트'가 무엇인지 늘 좇는다. 굶주린 하이에나(?) 마냥 남들보다 먼저 '팩트'를 전달하기 위해 혈안이 되기도 하고, '팩트' 뒤에 가려진 이면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사회에 쏟아진 많은 '팩트' 중 기사로 연결되는 것들은 많지 않다. 일상적인 일 보다는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사안들이 기자들로부터 선택을 받는다. 어떤 '팩트'를 선택하느냐는 오롯이 기자의 몫이고(물론 언론사의 입장이 반영될 수도 있지만), 그 '팩트'에 따라 기사는 다르게 구성된다.

사람들은 흔히 '기자는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객관적이어야 한다'에는 동의하지만, '(결코) 객관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팩트' 가운데 기사에 사용할 '팩트'를 뽑아내는 과정에는 분명 기자의 가치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 연합뉴스 캡처
지난 10일 <연합뉴스>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기자는 내가 쓴 <'화투판' 보도한 연합뉴스, 반박엔 침묵>과 관련해 "기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어 "향후 기사를 이런 식으로 쓴다면 문제가 있지 않나. 정확한 보도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전화했다"며 "<미디어스> 기사가 그렇게 나가서 사실이 왜곡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기자는 <미디어스> 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대책회의의 '악의적 오보' 주장을 기사에 인용한 것은 <미디어스>의 생각이 담긴 것"

연합 기자가 기사 가운데 <미디어스>의 생각이 담겼다고 지적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광우병 대책회의는 이날 '화투 조작 경찰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어 "변호사 접견을 통해 확인한 결과 '촛불 수배자 5명이 연행 당시 화투를 쳤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과 전혀 다른 악의적 오보임이 밝혀졌다"고 성토했다.

그는 "악의적 내용을 퍼뜨리더라도 기자가 생각한다면(판단을 거쳐) 그대로 싣지 않는다"며 "그들이 주장하기 때문에 그 주장을 고스란히 싣는다고(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스가 기사에 포함한 위 부분은 광우병 대책회의가 발표한 성명 일부였다. 그는 대책회의가 발표한 성명 가운데 그 부분을 발췌한 것이 <미디어스>의 생각이 담긴 것이고, 단체들의 주장을 고스란히 전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어느 정도 검증하고 싣는 게 대표적인(일반적인) 기자들의 생각이지 않냐"고 반문했다.

◇"연합뉴스가 광우병 대책회의 주장을 다루지 않은 이유는…"

기자는 지난 6일 오전 7시쯤 <박원석 등 촛불집회 수배자 5명 검거>로 첫 보도가 나간 이후 취재하는 과정에서 처음 취재원은 경찰이 아닌 호텔 종업원이었다고 밝혔다.

"A 수배자가 호텔 쪽에 화투를 요구했고, 호텔이 거부하니까 수배자들은 A수배자를 시켜 화투를 가져오도록 했다. …호텔 직원이 방에 화투를 갔다 줬을 때 3명이 화투를 친 상황이라고 봤으니까 (화투판을 벌인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나. 광우병 대책회의의 반론은 신빙성이 떨어지지 않나 생각했다. 이후 기사에서 대책회의 쪽 반론을 실어줬기 때문에 계속 반복해 반론을 다룰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회견에서 광우병대책회의 쪽 주장을 다루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기자회견 내용을 그대로 전하는 것은 기자가 아니다"라면서 "나름의 합리성과 타당성을 생각해서 기사를 쓰는 것이고, 이미 이전 기사에서 광우병 대책회의 쪽 반론을 다뤘다"고 반박했다. 기자가 반론을 실었다고 말한 긴 기사에는 민변 변호사의 해명이 한 문장 한 단락 실렸을 뿐이다. 기자가 이보다 앞서 쓴 기사의 제목은 <촛불집회 수배자들 검거 당시 '화투판'>이었고, 이 기사는 조중동의 인터넷판에서도 도드라지게 편집됐다.

연합 기자는 기사를 쓸 때 나름의 기준으로 팩트를 선택했다. 연합이 그들 나름의 기준으로 팩트를 선택한 것처럼, 나 역시 나름의 기준으로 팩트를 선택했고 기사를 작성했다. 그렇기에 나는 팩트의 취사 선택 결과로 나온 <미디어스> 기사에 대해 "단체들의 주장을 고스란히 전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

연합이 광우병대책회의 쪽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싣지 않은 것처럼, 나는 대책회의 쪽 주장이 신빙성이 있고, 되레 이를 '화투판'이라는 프레임 설정을 통해 의제를 비본질적인 부분으로 비튼 언론 보도가 더 문제라고 판단해, 보도의 주안점을 그 쪽에 뒀다.

▲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촛불 수배자 가족들이 6일 오후1시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송선영
◇"<오마이뉴스> 인터뷰가 촛불 수배자 검거에 주요한 단서가 됐다"

앞서 박원석 광우병 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지난 3일 서울 신촌 근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했다. 경찰은 박 실장의 모습이 담긴 인터뷰 사진 배경을 통해 인터뷰 장소에 박 실장이 소지품을 놓고 간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후 여러 경로의 추적을 통해 결국 촛불 수배자들을 검거했다.

이에 대해 연합 기자는 "<미디어스>의 보도는 사실과 배치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그는 "오마이뉴스에 실린 사진을 경찰관이 알아보는 과정에서 (박 실장이 왔었다는 것이) 확인됐고 이것이 첫번째 단서가 돼 잡힌 것"이라며 "이후 박 실장이 소지품을 놓고 간 것은 경찰이 추적하는 과정에서 순차적으로 밝혀진 것으로, 최초의 단서는 오마이뉴스 보도"라고 반박했다. 이어 "인터뷰가 없었으면 소지품은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촛불 수배자 검거에 단서를 준 것은 오마이뉴스 인터뷰가 아닌 박 실장의 소지품이었다. 인터뷰를 했다 하더라도 박 실장이 소지품을 놓고 가지 않았더라면 검거의 단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경찰이 사진을 통해 인터뷰 장소를 알아냈다 하더라도, 박 실장이 소지품을 놓고 간 뒤 해당 인터뷰 장소로 전화만 하지 않았더라면 통화추적에 걸려 검거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박 실장을 인터뷰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해당 언론사와 해당 기자에게 짐을 지우는 것은 우연을 인과관계의 틀에 우겨넣는 억지 논리일 뿐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인터뷰는 오마이뉴스가 아니더라도 어떤 매체와도 할 수 있었는데 소지품을 두고 간 실수 때문에 결정적으로 검거가 된 것"이라며 "좌파매체가 좌파 수배자들을 검거하게 만들었다는 식의 언론보도는 촛불을 희화화하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미디어스>는 팩트 확인을 위해 나에게 끈질기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기자는 "적어도 나와 통화를 시도하려 했더라면 3~4번 전화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한 뒤 "기자실에 전화가 왔을 당시 통화중이었고, 다시 전화 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내가 종로경찰서 기자실에 전화를 걸어 연합뉴스 기자를 찾자, 전화를 받은 여성은 "잠시만요"라는 말을 남긴 후 수 초가 지나 "자리에 없다"는 말을 건넸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나: 그럼, 기자님은 자리에 언제 돌아오시나요?
여성: 잘 모르겠어요.
나: 그럼 이따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여성: 언제 돌아오실 줄 알고 또 전화를 하시나요. 번호 남겨주시면 이따 기자님 오시면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나: 아니요. 그냥 제가 다른 방법으로 연락해 보겠습니다.

당시 전화를 받은 여성이 '통화중'임을 나에게 알렸더라면 당연히 기자실에 다시 전화를 하고, 연락처를 남겼을 테지만, 분명 그 여성은 통화중임을 알리지 않았고, "언제 돌아오실 줄 알고 또 전화를 하느냐"고 말했다.

이에 나는 연합뉴스 사회부로 전화해 해당 데스크를 찾았다. 전화를 받은 관계자는 "데스크는 회의 중"이라며 "무슨 일 때문에 데스크를 찾느냐”고 되물었다. 상황을 설명하자 "경찰이 알려준 대로 썼을 것"이라며 "지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연합 기자는 "회사 내근자가 '전화 온 것은 맞지만 그런 식으로 발언한 적이 없다'고 했다"며 "그런 식으로 기사가 나와 심히 불쾌하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나는 졸지에, 없는 사실을 지어낸 '누군가를 심히 불쾌하게 만든' 기자가 되어버렸다.

최근 현장에서 만난 A 언론사 종로경찰서 출입기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송선영 기자가 경찰서 기자실로 전화했을 당시 연합 기자는 자리에 있었다"며 "그 기자가 통화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라고?' 묻더니 '미디어스가 어디야? 없다고 해라'고 말했다"고 나에게 전했다.

▲ 한용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부인인 황정주씨가 일부 언론의 '화투판' 보도를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송선영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보도와 촛불 수배자 '화투판' 보도의 닮은 점

지난해 11월14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1991년 5월 분신 사망한 김기설씨의 유서 필적은 김기설 본인의 필적과 동일하다"고 밝혔다.

당시 강기훈씨는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해주었다는 혐의를 받았으며, 자살을 방조했다는 사회 안팎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3년2개월 동안 감옥에 있어야 했던 그의 진실은 사건이 발생한 지 16년6개월이 지나고서야 밝혀졌다.

당시 언론들의 보도는 어땠을까? 언론들은 "김기설의 분신 장소에 하얀 점퍼를 입은 사람 등 2~3명이 더 있는 것을 본 목격자가 나타났다"는 식의 보도를 비롯해 "시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운동권에서 내부적으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자살을 기도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검찰의 발표를 그대로 보도했다. 나아가 "재야에 자살 특공대가 있다는 풍설이 오래 전부터 나돌았다" "분신자살조, 사실일까?" 등 선정적으로 김기설 사건을 보도했으며, 그 배후로 강기훈씨를 지목했다. 사실을 보도해야 할 언론이 한 발 더 나아가 사실을 오도하고, 왜곡하는 바람에 한 사람의 인생은 16년 동안 거짓이 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촛불 수배자 검거 당시 불거진 언론의 '화투판' 보도는 과거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언론이 본질을 외면하고 비본질적인 부분으로 의제를 설정해 사실을 호도한 부분에서 말이다. 백보 양보해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필했다 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 정권의 '정치적 타살'은 외면한 채 '착한 사마리아인법'의 기준을 들이대 김기설씨의 죽음을 욕보인 것이나, 설령 그들이 화투를 쳤다 하더라도 촛불의 민심을 대변하기 위해 자기희생을 마다지 않다가 쫓기는 몸이 된 과정은 무시하고 영화 <타짜>의 이미지를 덧씌운 것이나, 저널리즘의 규범에서 벗어나 있기는 마찬가지다. 사실만을 보도해야 할 언론이 되레 앞서나가 여론을 형성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여론을 이끄는 건 옳지 않다.

기사를 쓴다는 것은 나에게 재미있는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렵고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나의 기사로 인해 누군가가 아파할 수 있다는 값진(?) 경험을 얻었기에 수없이 팩트 확인을 하고, 신중하려 노력한다.

내가 쓴 기사에 대해 "미디어스 기사가 그렇게 나가서 사실이 왜곡됐다"고 요목조목 반박하는 연합뉴스 기자의 전화가 달갑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더 꼼꼼하게 '팩트'를 확인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 것에 대해 나는 감사한다.

덧붙임 : 연합 기자는 전화한 목적이 "화를 내고자 하는 게 아니다"고 했듯이, 나 역시 해당 기자에게 화를 내고자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글을 통한 반론은 언제든지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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