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1면에 박근혜 대통령의 웃는 얼굴이 대문짝하게 등장한다. 지면을 열어보면 2면이나 경제면 머리기사가 ‘○○○ 주도 전국 ○번째 개소 ○○지역 웃음꽃’ 같은 내용이다. 맨 뒷면에는 전면광고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가장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매번 이런 방식으로 등장한다.

정부와 대통령이 불철주야 뛰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다. 정부 처지에서 창조경제센터 한곳 한곳을 열심히 홍보해야 한다. 기업은 지금까지 하던 것에 창조경제라는 이름만 붙이면 된다. 언론은 공짜로 기사거리를 얻고 가장 비싼 백(back)면 광고를 수주할 수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하나로 정부, 기업, 언론 모두가 만족한다.

대통령은 매번 행사를 챙길 정도로 열성이다. “광고가 붙는다면 별지를 더 내고 싶다”는 언론에게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든든한 먹거리다. 기업도 이왕 쓸 돈 정부 칭찬 받으며 쓰는 게 좋다. 11일 개소한 네이버의 강원센터가 열 번째니까 앞으로 일곱 번의 이벤트가 남았다. 대통령과 기업 총수, 그리고 언론은 앞으로 일곱 번 더 활짝 웃을 ‘예정’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봉의동 강원도청 별관에서 열린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그런데 전문가도 언론도 심지어 해당 부처의 관계자들도 아직도 창조경제의 실체를 모른다. 그저, 집권 3년차를 맞은 정부가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대통령의 최대성과로 알리고 싶다는 마음만 강하게 느껴진다. 정부는 한반도를 17개 구역으로 나누고, 사전에 섭외한 대기업에게 각 지역을 할당했다. 예를 들어 삼성이 대구, 현대차가 광주를 맡고 네이버와 다음은 각각 강원과 제주센터를 주도하는 식이다.

지역 나눠막기에서 보듯,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대기업 없이 불가능하다. 집권 1년차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보냈다. 2년차는 세월호 참사와 인사파동, 그리고 비선실세 의혹이 지배했다. 그리고 3년차에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다. 대통령 뜻대로 돼 가는 일은 창조경제혁신센터뿐이다. 정부가 하자면 울며 겨자라도 먹어야 할 대기업이 붙어준 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참석하는 행사마다 일자리와 창조경제를 이야기하지만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의미가 남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매번 센터 개소식에 참석하고, 참여 기업을 극찬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다. 또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처럼 창조경제센터 또한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중이다. 대기업의 공장이 졸지에 관광지가 되니, 창조적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의 지나친 호의가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눈 딱 감고 ‘창조경제’ 한두 번 외치면 된다. 박근혜 정부 들어 각종 대기업의 보도자료에는 “창조경제도 이제는 한류” “창조경제를 새마을운동처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각종 ‘갑질’로 여론의 뭇매를 맞는 네이버가 언제 “수많은 정보와 데이터가 모인 ‘빅데이터 산업의 거대한 광맥’”이라는 극찬을 듣겠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창조경제는 위기의 국가를 다시 일으킬 슬로건이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경제성장’을 통해 통치성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성장하지 않더라도 성장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고, 세계경제가 ‘장기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는데도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킬 것만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게 정부가 세운 목표 같다.

▲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봉의동 강원도청 별관에서 열린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ICT(정보통신기술)가 얼마나 어떻게 경제성장을 이끌지는 모른다. 2007-2008년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드러냈다. 이런 까닭에 금융자본을 규제하고 부를 재분배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새누리당이 좌클릭하며 ‘계급 타협’을 주도하는 모습을 취하고, 보수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을지로위원회 같은 조직이 힘을 받는 것은 위기가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역주행 중이다. 각종 규제를 완화해 ‘금융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중이다. 그리고 해고요건을 완화하고 중규직을 새로 만들려고 하는 등 노동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의 조건을 이렇게 쌓아올리고 있다. 경제위기의 원인을 오히려 경제성장의 조건으로 호도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식 창조경제는 십여 년 전 붕괴한 미국의 신경제와 닮았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더그 헨우드는 1990년대 미국경제를 평가한 책 <신경제 이후>(이강국 옮김, 필맥 펴냄, 2004년)에서 “소유권이 분산되고, 인간이 자신의 경제생활을 주도하며, 노동이 의미 있고 창조적인 것이 된다던, 신경제를 둘러싼 과장된 주장들은 거의 다 공상이었을 뿐”이라고 일갈했다. 신경제는 빌 게이츠의 ‘마찰 없는 경제’도 되지 못했다. 금융을 통제하지 못한 미국경제는 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한국은 신경제의 붕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토마스 피케티에게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것 같다. 비정규직을 줄이겠다던 정부는 외려 간접고용을 늘리고 있다. 재계는 노동생산성이 낮다며 강성노조를 비난하고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알고 보면 실질임금 상승률은 더 낮다. 정부는 기업에게 투자와 배당을 동시에 늘리라 주문하고 기업은 당연히 배당을 확대했다. 창조경제는 지금 거꾸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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