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동통신 3사는 불과 3~4년만에 가입자의 과반을 LTE로 전환하고 안정적인 ‘고수익’ 환경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출혈경쟁’을 한다면서도 분기에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온 이동통신사들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 5:3:2의 안정화된 독과점 배분 구조 속에서 이익을 올리기는 이제 누워서 떡 먹는 수준이다. 사업자들은 네트워크-플랫폼-콘텐츠를 수직계열화하는데도 안정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7일 KT를 시작으로 이통 3사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요금인하’ 카드를 꺼내들고 있는 배경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동통신산업은 설비투자가 핵심이다. 사업자들은 사업 초기 정부에 주파수를 빌리고 기지국을 만드는 데 대규모 투자를 하고, 이후 망을 유지‧보수해왔다. 상식적으로 추산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요금이 내리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사업자들은 기본료 천원 인하, 가입비 단계적 폐지 같은 정책들을 ‘통신비 인하’라며생색을 냈고, 그때마다 비난에 부딪혔다. 늘 본질을 비껴선단 지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데이터 중심 요금제’에 대한 반응은 사뭇 다르다. 국회와 소비자단체, 현장에서 모두 환영하는 분위기다.

사업자 동향부터 보자. KT가 7일 ‘데이터 선택 요금제’를 출시한 것을 시작으로,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같은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내놓았거나 내놓을 계획이다. 월 2만9900원(부가세 제외) 요금제에 가입하면 무선 음성통화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고, 5만9900원 요금제는 사실상 모든 게 무제한이다. 모바일IPTV는 덤이다. 5만원대 이하 요금제 가입자는 데이터 이월과 당겨쓰기가 가능하다. 고가의 LTE 요금제 가입자라면 당장 이 요금제로 바꾸는 게 이득이다. 구글의 알뜰폰 요금보다 저렴하다.

물론 ‘제한 있는 무제한’이라는 점은 문제다. 599, 699, 999 요금제에서는 각각 10㎇, 15㎇, 30㎇를 초과하면 용량이 하루 2㎇로 제한되고 속도도 3Mbps(999요금제는 5Mbps)로 떨어진다. 음성통화의 경우 △하루 600분 이상 3일 초과 △월 1만분 초과 △수신처가 월 1천회선 초과 △착신통화 100분 이하가 2개월 이상 발생할 경우 ‘정상요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KT 설명대로 “상업적 이용”을 가려내려는 목적으로 일반 이용자가 피해를 입을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KT는 “고객 1인당 약 월 3590원의 절감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약정 위약금 문제 해결이 관건이기는 하지만 KT는 본사 차원에서 위약금을 최소화하는 영업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이동통신사들 또한 KT와 유사한 데이터 중심 요금제와 위약금 최소화 정책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은 7일 “데이터 이용이 지속 증가하는 고객 이용 패턴 변화에 맞춰 지금보다 요금은 대폭 인하되고 혜택은 늘어나는 데이터 중심의 새 요금제 출시”를 약속했고, LG유플러스는 “다음 주”로 시점을 예고했다.

중앙일보를 필두로 다수의 언론이 통신요금 인하를 환영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7일 1면 머리기사로 “4만원대 데이터 무제한은 전 세계에 유례없는 최저가 요금”이라며 이 같은 결정을 낸 미래창조과학부와 이동통신사들을 치켜세웠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야당 간사인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또한 KT 발표 직후 “2만원대 국내통화 무제한 요금제 출시는 향후 가계통신비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환영했다.

이용자들과 현장은 ‘왜 이제야’ 하는 반응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KT가 오랜만에 (이용자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했지만, 이는 통신요금을 인하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평가했다. 실제 KT 가입자의 65.3%인 1143만명은 LTE 가입자이고, 1분기 ARPU는 전년동기 대비 4.5% 증가했다. SK텔레콤이 1분기에만 4427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배경에도 61%에 이르는 LTE 실적이 있다. LG유플러스의 LTE 비율은 77%(879만명)이다.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환경을 단기간에 마련한 이통사들이 뒤늦게 통신요금 인하에 합류한단 판단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는 이통 3사들이 지금 내놓은 수준 이상의 통신요금 인하도 가능하단 점을 시사한다. 이통 3사는 모두 시장안정화로 비용이 줄었다고 밝히고 있다. 설비투자도 줄었고, LTE 전환과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마케팅비 또한 줄어드는 추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동통신사가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통신요금을 더 내릴 수 있는 여력은 충분하다. 알뜰폰 사업자에게 요구하는 망이용대가 또한 인하해야 한다. 실제 경쟁사업자들은 KT보다 1000~2000원을 더 인하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요금인하가 가능한 이유는 이동통신사들이 네트워크에 이어 미디어플랫폼과 콘텐츠까지 수직계열화해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용자에게 무제한 데이터를 선물하는 비용보다 이용자가 이동통신사의 방송, 결제 플랫폼에서 지불하는 돈이 더 많다는 판단에서 요금인하가 가능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당장의 요금인하는 환영할 만한 하지만 그 반대급부 또한 짚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결합상품 할인 같은 경우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우려할 만한 일이 더 있다. 기가인터넷, 5G, 사물인터넷 시대에 맞춰 인터넷 종량제와 망중립성 논의를 시작하자는 게 사업자들 생각이다. 당장 유선인터넷에 부분적으로 종량제를 도입한 사업자들이 이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와 싸움에서 졌지만 해외에서는 망중립성 문제를 두고 네트워크사업자에게 유리한 정책들이 나오고 있는 점도 우려된다.

KT가 오랜만에 착한 일을 했다는 평가가 많지만 앞으로 통신사에 납부할 돈은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모바일로 덩치를 키운 이동통신사가 이용자에게 과실을 나눠주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통신요금을 둘러싼 셈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요금은 내렸지만 이동통신시장과 유료방송시장, 결제시장에서 독과점 사업자들의 지배력은 더 커지고 있다. 이번 요금인하 정책은 네트워크와 플랫폼, 그리고 콘텐츠까지 장악한 사업자가 베푼 아주 작은 호의에 불과하다. 알뜰폰 장악에 결합상품 공세까지, 이동통신사들은 이용자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모두 틀어막은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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