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를 보니 11일자 8면 기사 ‘5대 쟁점 평행선 대치…11월 국회 ‘산 넘어 산’’에서 여-야가 대치중인 현재 국회를 두고 “2004년 11월과 닮았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어게인 2004는 피해야 한다’고 우려하는 내용이었다.

▲ 중앙일보 11일치 8면 기사
2004년 11월은 어떠했는가 돌이켜보자. 당시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사학법·언론개혁법·과거사진상규명법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나섰고, 한나라당은 결사 반대를 하며 극한대립을 벌였다.

하지만 그 당시 국회 울타리 안쪽만 뜨거웠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회 바깥 풍경이 훨씬 치열하고 후끈했다. 여의도 국회 정문 앞 보도블럭에는 각종 천막들의 행렬이 늘어서서 장관을 이뤘고, 천막 안팎의 시민들은 ‘시대의 악법들은 이제 그만 사라져야 한다’고 온 몸으로 외쳤다.

11~12월 여의도 칼바람이 몰아치던 천막농성단들 앞. 그곳에서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언 손으로 촛불을 들면서, 국회의원들이 이번만은 약속을 지켜주기를 염원했다. 4대 개혁입법 통과를 요구하며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무리는 국회 앞부터 여의도 공원에까지 이어졌다.

절망을 딛고 악다구니를 쓰며 희망을 외치던 2004년 가을에서 겨울까지. 국보법 철폐 릴레이 단식을 끝내고 들이켜던 어묵국물, 촛불집회날 언발을 녹이려 ‘언론개혁 천막’에서 핫팩을 받아가던, 그야말로 춥고 배고픈 거리 위 기억들이 생생하다.

중앙의 ‘어게인 2004’ 우려는, 그러나 이미 발생한 현재다. 2004년 11월 여의도 천막농성은 2008년 11월, 다시 여의도에서 재현되고 있다.

강원도 산간지역에 눈이 내렸다던 지난 10일, KBS의 PD들은 여의도 KBS 본관과 신관 사이 로비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이날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천막 농성에 들어가며>라는 글에서 “이번 가을 개편은 KBS 초유의 밀실 정치개편”이라면서 “더 이상 제작진의 의로운 싸움을 외롭게 하지 않겠다”면서 KBS 관제화 저지에 내부 직원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다음날인 11일에는 KBS 기자협회도 동참해 “더 이상 이러한 비상식을 인내할 수 없고 정치적인 졸속개편을 거부한다”며 “KBS를 관영방송으로 되돌리는 사장과 간부들은 반드시 기록해 역사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2004년 여당 열린우리당은 2008년 야당 민주당으로 자리바꿈했고, 그때 야당 한나라당은 거대 여당이 됐다. 2004년 국회앞의 천막은 2008년 여의도 KBS 앞에 재현되고 있다.

외로운 싸움의 역사는 계속되고, 천막의 계절도 다시 돌아왔다. 여야 정쟁으로 국정운영이 좌절될까 걱정하는 중앙일보는, 2004년 여의도 앞 천막들을 망각 속에 묻어 버린 채, 2008년 여의도의 천막도 못 본 척 할 것인가.

도대체 천막들이 얼마나 더 늘어나게 될 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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