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3대 요소는 배우와 관객, 그리고 무대(또는 희곡)이다. 이 3대 요소를 예능으로 가져오면 어떨까? 배우는 출연진이 되고, 관객은 시청자가 되며, 무대(또는 희곡)는 제작진이 될 것 같다. 연극의 3대 요소가 잘 어우러질 때 명작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예능 또한 이 세 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질 때 명작이라 불릴 수 있는 명품 예능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예능의 세 가지 요소 중 일반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출연진이다. 이들은 방송의 중심이며, 시청자를 방송으로 끌어들이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다. 그래서 방송사에서는 어떻게든 인기 있는 스타를 캐스팅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프로그램을 성공시켜 줄 수 있는 연예인을 섭외하기 위해서 애쓴다. 출연진은 시청자와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으면서 제작진의 의도를 실제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예능의 꽃과도 같다.

<무한도전> 출연진은 대한민국 예능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국민MC 유재석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고, 유재석과 짝을 이뤄 큰 활약을 보이고 이후에는 여러 개인 작품까지 선보이면서 결국 대상까지 거머쥔 박명수도 저력이 대단하다. 심지어 그는 뮤지션으로서도 활약하고 있다. 정형돈은 케이블의 유재석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진행으로서 자리를 확고히 했으며, 정준하 역시 연기, 뮤지컬 등에서 꾸준히 자기 영역을 넓히고, 특히 식신으로서 확실한 무기를 지니고 있는 연예인이다. 하하는 제작진의 의도를 가장 잘 파악하고 방송 내에서 필요한 액션을 만들어내는 데 훌륭한 역량을 보이며, 아시아 최고 인기 예능인 <런닝맨>의 한 축으로서도 활약하고 있다. 특히 음악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만능 재주꾼이기도 하다. 이렇게 <무한도전>의 모든 출연진은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무한도전>의 출연진은 다른 영역이나 방송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무한도전>을 제일 우선하고 있다. 방송되지 않는 동안에도 이들은 함께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장기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제작진에게 있어서는 매우 성실하고 충실한 출연진인 것이다. 시청자들 또한 출연진에게 아주 큰 사랑을 보내고 있다. 때문에 <무한도전>의 고정 자리는‘ 독이 든 성배’라 불리기도 했다. 너무 큰 사랑을 받다 보니 아무나 들어와서 <무한도전>에 해를 끼치는 모습을 시청자가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무한도전>의 출연진이라는 사실은 시청자들에겐 매우 큰 특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른 일을 희생하면서까지 <무한도전>을 중심에 둬야 하고, 좋은 방송을 위해 방송 외적으로도 모여 계속 회의와 연습을 해야 하며,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그만큼의 책임을 부여받는 점을 봤을 때, <무한도전>의 출연진이 얼마나 대단한 역량을 지니고 있는지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어떤 예능의 출연진도 <무한도전>의 출연진만큼 큰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시청자에게 제작진은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제작진이 예능 프로그램에 끼치는 영향은 출연진 이상으로 대단하다. 최근에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아무런 사건도 없는 이 예능이 제작진의 노력과 실력에 의해 얼마나 재밌는 방송으로 탄생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와 쌍벽을 이루는 스타 PD인 나영석 PD는 자막과 음악을 적절히 사용하고, 직접 개입하기도 하면서 프로그램의 재미를 극적으로 끌어 올린다. 제작진의 힘이다.

<무한도전>은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제작진의 힘이 가장 두드러지는 방송이다. 시청자들이 제작진을 방송을 통해 먼저 인지했으며 인정했을 정도다. <무한도전>의 자막은 또 하나의 출연진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으며, 여전히 <무한도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자막은 단순하게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을 넘어서, 사회를 풍자하거나 비판하면서 예능이 지닌 표현의 한계를 극단적으로 넓히고 있다.

<무한도전>의 제작진은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요소들을 사용해 프로그램 외적으로도 상당한 메시지를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스피드' 특집에서 보여줬던 수많은 암시와 힌트들은 예능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제작진의 노력을 보여주었으며,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무한도전>의 방송이 끝난 후에 방송 내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또 다른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단순한 웃음을 목적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치를 뛰어넘은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무한도전>은 여러 가지의 에피소드가 동시에 진행되기도 한다. 이를 조정하고 촬영해 결국 방송까지 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실력이 필요하다. <무한도전> 제작진이 국내 최고의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무한도전>의 또 하나의 출연자라고 불리는 시청자들은 어느새 <무한도전>의 가장 큰 힘이 됐다. 어떤 방송도 <무한도전>만큼 시청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지는 못했다. 시청자들은 꾸준히 <무한도전>을 시청하는 아주 기본적인 시청자의 역할을 넘어 직접 출연하고, 방송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며, <무한도전> 내의 다양한 암시와 상징을 풀어내 전달하고, 때로는 방송을 막거나 출연진을 제한하기도 하는 등 매우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시청자는 방송 프로그램과 피동적인 관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이 방송되면 보는 것이 시청자고, 시청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보지 않는 것' 정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일부 프로그램에서 이러한 시도를 깨기 위해 시청자를 출연시키거나, 시청자의 의견을 묻긴 하지만 그 어떤 방송도 <무한도전>만큼 정도가 심하지는 않다.

최근에는 시청자의 갑질 논란까지 불거질 정도로 <무한도전>의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에 깊이 관여한다. 이런 이유로 '홍철아 장가가자' 에피소드는 방송이 중단됐고, 제작진은 '식스맨 프로젝트'를 통해 식스맨 선정 과정을 시청자들에게 낱낱이 공개하며 설득해야 했고, 그 와중에 또 한 연예인은 후보에서 사퇴해야 했다. 총리 인준보다도 <무한도전> 새 멤버가 되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청자들이 <무한도전>에 대해 갖는 관심과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에 대한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적극적인 시청자들 덕분에 <무한도전>이 더욱 발전할 수 있었고, 국내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가요제를 열면 미리 와서 대기하는 수만 명의 시청자들이 있고, 투표하자고 하면 몇십 분씩 줄을 서서 실제 투표를 하는 시청자들이 있다. <무한도전>은 어느 순간부터 시청자 없이는 방송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수많은 시청자들과 함께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듯 <무한도전>은 국내 최고의 출연진과 제작진 그리고 시청자가 똘똘 뭉친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10년 동안 프로그램이 유지돼 왔고, 대한민국 예능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서 언급되는 상징적인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세 가지의 요소가 계속해서 자신의 역량을 유지하는 한, 앞으로도 <무한도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명품 예능 프로그램으로 남을 것이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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