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종종 ‘MBC는 봐주기 심의를 한다’는 의혹을 받는다. 가끔은 심의위원들조차 ‘MBC 출신 심의위원들이 너무 봐주는거 아니냐’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최근 사안만 봐도 그렇다. 방통심의위는 MBC 뉴스가 '2018러시아월드컵' 공식 엠블럼에 일베 이미지를 사용한 것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앞서, KBS에서 독일 바이에른 뮌헨(FC Bayern Munchen)의 앰블럼 속 구단 명칭을 ‘바이에른 무현(FC Bayern muhyun)’으로 바뀐 일베 이미지가 사용되어 논란이 됐던지라 관심이 컸다. 네티즌들은 계속되는 방송 사고에 “일베가 방송사를 장악했다”는 자조까지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 MBC '뉴스데스크'에서 일베 이미지가 노출된 모습

하지만 방통심의위의 심의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아 싱겁게 끝났다. 방통심의위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앞으로 수도 없이 많을 것”이라는 이유로 MBC <뉴스데스크>와 <뉴스투데이>에 대해 행정지도인 ‘권고’를 밀어붙였다. 지적된 위반조항 가운데 제14조(객관성)만 적용한 결과였다. MBC 내부에서 왜 자꾸 유사한 일이 반복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며 ‘의견진술’을 받아야 한단 요구가 있었으나 소수의견으로 무시됐다. 심의위원들은 ‘의견진술’ 안건이 너무 많아 안된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귀찮다는 것이었다.

심의안건 제대로 보기는 했나

그러나 이날 심의는 방심위의 존립 근거가 무엇인지를 회의하게 한다. 우선, 심의위원들은 심의안건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의에 들어서며, 고대석 심의위원은 “이(앰블럼)게 뭐가 잘못됐다는 것이냐”고 물었다. 안건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것이다. 다수의 언론매체들이 이미 충분히 기사화했던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심의위원은 엠블럼의 어떤 부분이 왜곡됐는지 조차 모르고 회의장에 들어왔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이날 심의위에서는 해당 엠블럼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한 일베 이미지’라는 쟁점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함귀용 심의위원은 곧장 “비하 목적이 아닌 방송사의 실수”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특정인을 비하하거나 이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이번에는 단순실수”라며 “이미지가 무엇이냐를 고려해야 한다. 비하할 목적이었느냐가 (제재수위를 정하는데)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어떤 심의위원은 왜곡이 뭔지도 모르던 상황에서 심의위는 2018러시아월드컵 일베이미지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할 목적이 아니었다고 전제하고 시작한 셈이다. 민원인은 MBC의 노출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0조(명예훼손금지)를 위반하고 있다고 적시해 심의를 요청했지만, 이는 애당초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함 심의위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한 것이라면 해당 조항이 적용되어야 하지만 이건 (단순)팩트가 틀린 것”이라고만 말했다.

함귀용 심의위원이 가이드라인(?)을 정하자 나머지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도 동조했다. 김성묵 방송심의소위원장은 “이런 건 (방송사)자율에 좀 맡겨야 한다”며 “함 위원 말에 동의한다.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과 아주 단순한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앞으로 수도 없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던 고대석 심의위원 역시 ‘권고’ 입장을 같이 했다.

▲ 그동안 MBC에서 노출된 일베 이미지 모음

물론,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일베사이트에서는 다양한 엠블럼들이 변형되고 있고, 앞서 문제가 됐던 SBS <8뉴스>의 연세대 로고처럼 '일베'를 활용한 단순 왜곡 이미지들이 많다. 반면, 이번 MBC <뉴스데스크>와 <뉴스투데이>에 등장한 2018러시아월드컵 엠블럼과 MBC <기분좋은날>의 밥로스, MBC <섹션TV연예>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음영이미지와 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타깃화해 비하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도 많다.

심의위원들의 지적대로, 이 두 가지를 구분해 제재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구분을 논의해야 하고, 그 구분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조항과 제재수위를 통해 발현되어야 한다. 심의위원들이 기준 없이 자의적으로 어떤 것은 '단순 실수'로 치부하고, 어떤 것은 '비하 왜곡'으로 일방 전제하면 곤란하다. 특히, 그 기준이 어떤 방송사냐에 따라 흔들리면 편파적이 될 수밖에 없다. 심의위원들이 지적한대로 앞으로 수도 없이 나올 수 있는 사례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방송사 자율? 그건 그냥 책임 방기다

정부여당 추천심의위원들이 말한 ‘방송사 자율’도 마찬가지다.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 ‘일베 이미지’뿐만 아니라 모든 방송심의 전체가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방통심의위는 방송사의 자율심의가 잘 운영되는지 관리하는 역할을 찾는 것으로 위상 변화를 이뤄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전향적 기대에 스스로 반하고 있는 방통심의위이다. 그동안 MBC를 비롯해 KBS, SBS, 채널A, MBN 등 수많은 방송사들이 일베 이미지를 잇따라 노출해왔다. 그들은 한결 같이 방송심의위 의견진술에서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개선이 되기는커녕 심의위에 불려오는 일은 더 잦아졌다. 그렇다면 방통심의위는 “(일베 이미지 사용)은 자율심의하는 게 맞다”고 이야기할 게 아니라, 방송사 전체에 “철저하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게 우선이다. 방송사 내부 시스템을 바꿀 수 있도록 권고하고 유도해야 한단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잦아져 귀찮은 사람들처럼 “방송사들도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방치에 불과하다.

방송사들의 일베이미지 사용에 많은 시청자들은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CI이미지를 다운받으면 될텐데”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조금 더 ‘주의’만 기울이면 될 문제인데 방송사들이 “귀찮다”는 이유로 이 간단한 작업을 하지 않아 계속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SBS '스브스뉴스'가 제작한 <방송가에 침투한 ‘일베’?…SBS가 알아본 사건의 ‘전말’> 편(▷링크)은 참고해 볼만하다.

SBS는 “일베 이미지 침투 경위는 고화질의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실수”라면서 “두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봐도 헛갈려 걸러내기 쉽지 않다”며 ‘일베 이미지’를 지뢰에 비유했다. 물론, 그럼에도 대안은 있다. SBS는 “로고만 모아놓은 별도의 라이브러리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 로고는 인터넷에서 찾아야하기 때문에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방통심의위가 이런 시스템을 방송사가 갖추도록 통합적으로 권고하고, 후에 재발된다면 그 시스템의 작동 여부를 기준점으로 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종합하면, 방통심의위의 MBC 일베 징계는 한 마디로 ‘MBC에 대한 봐주기 심의’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심의 과정에서 야당추천 장낙인 심의위원은 “MBC는 지난번 재심의를 요청해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해서 한 단계 제재수위를 낮춰줬었다”며 “그 후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의견진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개진했으나,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MBC는 앞서 <섹션TV 연예통신>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음영이미지를 사용해 방통심의위로부터 ‘경고’(벌점2점) 제재를 받았다. 당시, MBC는 3단계 필터링을 통해 재발방지를 약속했고 지난 달 말 재심을 통해 ‘주의’(벌점1점)로 감경받았다. 하지만 같은 사태가 이번에는 뉴스에서 벌어졌다. 당연히 ‘3단계 필터링’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했지만 방통심의위는 자신들이 권고한 내용조차 잊었는지 확인조차 않했다. 이는 방통심의위가 스스로 직무를 포기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게 아니면 MBC에 대한 봐주기 심의다.

방통심의위가 일베 이미지에 대해 '막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나온다면 차라리 심의를 포기하는게 옳다. 어떤 방송사의 일베 이미지는 제재하고, 어떤 방송사의 일베 이미지는 봐주는 방식의 일처리로는 오히려 문제를 만성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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