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2월17일 건강보험 재정 현황을 발표하면서 2014년 당기 흑자가 4조6천억원, 누적흑자가 13조원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흑자 원인에 대해 의료기술이 발전했을뿐더러 ‘건강한 고령화’ 때문에 지출의 증가 속도가 줄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노인빈곤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아파도 참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에 설득력이 실리는 게 사실이다.

김형성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통계는 가계의 목적별 소비지출에서 보건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출 증가액은 줄었는데, 가계 보건의료비는 오히려 증가하는 것은 국민들의 소득은 줄어들고, 의료보장성은 턱없이 낮다는 증거다. 또한 경제적인 이유로 질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건강보험은 의료공공성의 바로미터다. 13조원에 달하는 흑자를 보장성 강화와 공공의료시설 강화·확충에 써야 하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역주행 중이다. 정부는 일부 중증질환을 건강보험에 적용하기로 하면서 입원 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현행 20%에서 30%로 올리고 입원 31일째부터는 40%까지 올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법으로 정한 정부부담금 20%를 줄이겠다고 시사했다. 이른바 ‘마른 수건 쥐어짜기’이자 ‘긴축정책’이다.

이밖에도 정부는 원격진료를 내세우며 기업과 의료기관의 ‘융합’을 추진 중이고, 진주의료원을 폐업하는 등 공공의료기관 또한 구조조정하고 있다. 보건소는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됐고 지역의 의료수요가 수도권의 대형병원에 집중되고 있는데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의료관광을 명분으로 추진한 ‘메디텔’은 의료영리화의 한 단면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이 건강보험 흑자 13조원을 활용할 방안을 내놨다. 건강보험 흑자를 활용해 보장률을 높이고 공공의료시설을 확충하자는 게 핵심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당장 13조원의 일 년 이자(약 2600억원)만으로도 진주의료원 규모의 국립병원을 5개씩 지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 흑자를 활용하면 민간의료보험 가입률 증가, 공공의료 축소 보건의료 영역의 ‘영리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게 보건의료단체연합 제안이다.

다음은 22일 보건의료단체연합이 발표한 <꼭 알아야 할 우리가 낸 건강보험료 흑자에 관한 8문 8답>

1. 건강보험에 돈이 도대체 얼마나 쌓여 있는 건데요?

건강보험은 2010년까지는 적자이거나 겨우 수지를 맞추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2011년부터 계속 흑자를 내서 이후로 매년 3조원, 4조원, 5조원 이렇게 쌓였죠. 흑자분의 누적 규모는 정부 공식 발표에 따르면 2014년까지 12조8천억 원이나 됩니다. 그리고 올해도 건강보험 흑자 흐름이 계속되어 연말에는 건강보험이 최소 15조는 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네요.

건강보험 수입은 국민으로부터 걷는 건강보험료가 80퍼센트 대부분이 국민부담이고요. 정부보조금 20퍼센트(일반회계 14%, 담뱃세 건강증진기금 6%)로 구성되는데요, 정부가 부담해야 할 정부지원금을 지금까지 내지 않은 돈만 7조원이나 된답니다. 그래서 사실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 13조 남은 것과 더하면 13조+7조=20조. 실제 건강보험 흑자의 규모는 2014년 현재 20조원에 육박하는 것이죠. 1년 건강보험 총 지출이 44조원인데 절반이 되는 20조원이 남은 것은 어마어마한 돈이 남은 거죠.

2. 와! 그 많은 돈이 왜 남게 된 거죠?

경제가 안 좋아지니, 국민들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했거든요. 병원들의 의료상업화로 인해 가파르게 증가하던 의료비증가율도 2012년부터 감소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가계 지출에서 보건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더 늘어났거든요. 건강보험으로 별로 해주는 것은 없는데 비급여(건강보험이 안 되는) 의료비는 계속 늘어나서 그런 현상이 발생하게 된 거죠. 물론 민간의료보험으로 내는 돈도 많아졌고요.

결국 경제위기로 소득이 주니 아파도 병을 미루고 치료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증거죠. 그런데 정부는 세금 걷어 국민 건강에 쓰는 돈은 줄이고만 있다는게 문제예요. 한국의 의료비를 누가 냈느냐 살펴보면요, 공공지출(정부지출) 54.5%로 선진국 그룹이라는 OECD 국가들 평균인 72.3%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거든요.

즉 건강보험 흑자는 국민들의 고통과 피눈물로 남은 돈이라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건강해져서 흑자가 생겼다고 자랑하는 정부의 언행은 정말 파렴치한 것입니다.

3. 그래도 건강보험 흑자는 좋은 거 아닐까요?

맨날 건강보험 재정이 없어서 의료비의 절반 밖에 건강보험으로 해 줄 수 없다는 뉴스만 보던 우리들은 건강보험료가 이렇게 많이 남았다니까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건강보험 재정이 이렇게 많이 남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랍니다.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은 국민의 의료비로만 쓰이는 것이라서 저축할 필요가 있는 돈이 아니거든요. 그 해에 걷은 건강보험금은 그 해에 국민들의 치료비로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정부는 매해 국민들이 필요한 총 의료비를 예측하고 건강보험의 수입과 지출을 고려하여 매년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고요.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국민들은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 가는데 정부는 돈을 쌓아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이상한 일이죠.

4. 그렇다면 13조 흑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건강보험 13조원은 국민들이 아파도 병원에 못가서 남은 돈이잖아요? 그렇다면 그 돈은 국민들에게 돌려주어야지요!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서 국민들이 제발 병원비 걱정 없이 병원 이용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13조는 병원비를 낮추어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거죠.

당장 3조원이면 일 년 입원료 본인부담금을 전액 면제할 수 있고, 6조원이면 입원시 무상의료를 실현할 수 있어요. 또 13조 중에서 2조 5천억원만 쓰면 19세미만의 우리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일 년간 의료비를 내지 않아도 병원을 다닐 수 있게 된답니다. 만약 13조원을 모두 국민을 위해 사용한다면 일 년 동안 4500만 전 국민이 본인부담금 없이 병의원과 약국을 이용할 수도 있답니다.

아주 중요한 정보로는요, 이 돈으로 양질의 좋은 의료를 제공하는 공공병원을 세울 수도 있다는 것이죠. 심지어 당장 13조원의 일 년 이자(약 2600억원)만으로도 진주의료원 규모의 국립병원을 5개씩 지을 수 있습니다.

비리의 온상 홍준표 경남지사는 일 년에 50억원이 적자라며 진주의료원을 폐쇄했는데요, 우리가 낸 건강보험료로 진주의료원도 다시 운영할 수 있는 것이죠. 국민이 낸 건강보험 흑자를 아주 조금만 써도 진주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을 지키고 우리 동네에도 공공병원을 만들고 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답니다.

5. 정부는 흑자가 남았는데 왜 국민을 위해 안 쓰나요?

정부는 현재의 건강보험 흑자를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남겨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진짜 속내는 다른 데 있어요.

현재 정부는 법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의 20퍼센트를 부담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액수를 줄이거나 없앨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바로 ‘마른 수건 쥐어짜기’. 즉, 이른바 긴축정책이죠. 건강보험이 흑자가 되었으니 정부는 건강보험에 돈을 댈 필요가 없다고 하는 거죠.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지원 만기도래(2016년 말)에 대비하여 재정지원방식 등을 재점검하겠다고 발표했어요. 국민건강보험법 108조에는 정부의 건강보험금 20퍼센트 지원을 하라고 되어있는데, 문제는 이 규정이 2016년 말까지만 유효한 한시적인 규정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정부는 2016년 이후부터 정부지원을 하지 않을 생각으로 건강보험 흑자분을 비축하려는 거예요.

이처럼 정부가 건강보험 흑자분을 쓰지 않으려 하는 것은 경제위기 시대에 의료와 복지에 대한 정부의 예산과 역할을 줄이고 그 부담을 환자와 국민에게 떠넘기려는 박근혜 정부의 건강에 대한 긴축정책과 맞닿아 있습니다.

6. 건강보험 13조나 흑자인데 왜 보험료는 계속 올리나요?

건강보험은 2011년부터 4년 연속 흑자로 돈이 쌓여 있었는데요, 건강보험료와 보험료율(직장가입자 임금 대비 보험료 비율)은 계속 올랐습니다. 보험료가 계속 오른 이유는 정부가 매년 다음년도의 건강보험 지출을 예측하면서 매번 건강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2011년 이후 정부 예측이 다 틀린 거죠.

국민들은 이 사실을 알 수도 없었어요. 매년 오르는 보험료를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거죠. 병원가면 오르는 보험료만큼 보장성이 올라가 의료비가 싸진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정부는 잘못된 예측을 하고 책임지는 모습도 없이, 국민들이 건강해져서 돈이 남았다고 자화자찬만 하고 있답니다.

게다가 보험료인상을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국민들의 입장을 대변할 사람이 턱없이 부족해요. 총 25명인 위원 중 국민들 입장을 대표하는 사람은 고작 2~ 3인 밖에 들어갈 수 없는 구조랍니다. 보험료를 결정하는 정부 기구가 편파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큰 문제랍니다.

7. 돈이 그렇게 많은데 정부는 왜 입원료를 올린다는 거죠?

그러게 말이에요. 박근혜 정부는 건강보험료를 저렇게 쌓아 두고도 쓸 생각은 안하고, 장기입원 환자의 입원료를 올리겠다네요. 16일~30일 입원 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현행 20퍼센트에서 30퍼센트로 올리고, 입원 31일째부터는 40퍼센트까지 올린다는 거죠. 이렇게 되면 몸이 많이 불편한 중증환자를 비롯해 장기입원이 꼭 필요한 환자들은 그야말로 ‘입원료 폭탄’을 맞게 되는 거죠.

박근혜 정부는 한국 환자의 입원 일수가 OECD 평균인 8.5일보다 높은 14.2일이라는 점을 근거로 입원비가 너무 싸서 일부러 입원을 많이 한다고 주장해요. 그러나 지난 10년간 OECD국가 중 한국만 병상 수가 두 배로 늘어난 것은 감추려하지요. 정부가 아무런 통제를 하지 않아서 민간병원들이 무분별하게 경쟁적으로 병원을 짓고 환자들을 유인해 억지로 입원처방을 많이 내린 것이 입원이 길어지는 진짜 원인이라는 사실은 감추려고 하는 거예요. 결국 정부 책임은 감추고 전 국민을 이유도 없이 병원에 입원하려고 하는 ‘나이롱환자’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건강보험 재정이 엄청난 흑자인 상황에서 환자의 입원료를 줄이지는 못할망정 더욱 늘리겠다는 것은 국민을 더 쥐어짜려는 흡혈귀 같은 노릇이지요.

8. 어떻게 하면 흑자를 국민들을 위해 쓰도록 할 수 있나요?

보험료를 내는 주체인 국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면 정부 정책을 바꿀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2004년 건강보험 흑자가 1조 5천억이었을 때 흑자로 보장성을 높이자는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이 진행되었고, 이 운동에 국민들도 적극적으로 함께했죠. 지금 암에 걸리면 본인부담이 5% 밖에 안되는데요. 이 운동의 결과죠.

우선 주변에 우리가 낸 건강보험료가 이렇게 많이 남았다고 알리는 일을 해 주세요. 의료비 때문에 매달 허걱허걱 하는 가족들에게도 알려주시고, 주변의 지인들과 SNS 등을 통해서도 널리 사실을 알려주세요.

그리고 건강보험 흑자를 국민에게 돌려주라고 여러 가지 캠페인과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활동에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세요. 많은 국민에게 알리려고 만든 선전물과 소책자 그리고 카드뉴스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이런 것을 활용해 작은 토론회도 열어보세요. 저희단체에 문의를 해주시면 찾아가서 설명을 드릴 수도 있답니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이 있는 곳에서 목소리를 내 주세요. 이러한 힘이 모이면 커다란 움직임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의료는 누구나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입니다. 아프면 누구나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는 우리 모두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통해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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