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일 보건복지가족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관계 부처 회의를 열고 야간 시간대 청소년에 대한 게임 서비스 제한(셧다운 제도) 등을 포함한 청소년 보호법 개정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부모가 게임업체에 자녀의 게임 이용 시간 제한을 요청할 수 있도록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법제처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 11월 6일자 경향신문 20면.
이른바 ‘셧다운(shut down) 제도’의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셧다운 제도’는 온라인게임을 이용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인터넷 중독, 폭력성 증가, 사회성 결여 등과 같은 문제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고, 청소년의 수면권과 학습권을 신장한다는 명분으로 밤부터 아침까지 청소년의 온라인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기술적 조치를 말한다.

말은 그럴싸한데, 영 허술한 논리이다. 우선 온라인 게임의 이용 시간 증가를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과 폭력성 증가 그리고 사회성 결여 등의 사회적 문제로 곧장 연결시키는 것은 논리의 완전한 비약이다.

인터넷 중독의 경우 그 현실적 심각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전적으로 온라인게임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만약, 이러한 방식의 논리 전개라면 차라리 인터넷 자체에 대한 이용 규제를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폭력성 증가에 대해서는 이미지를 모방하는 여러 조건들(연령, 사회화의 정도, 심리적 상태 등등)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온라인 게임과의 인과 관계로만 설명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사회성 결여의 경우 완전히 다른 견해도 가능하다. 온라인으로 사회적 시공간이 확대됨에 따라, 사회성을 획득하는 방식이 변화(오프라인 접촉 → 온라인 접속)한 것 일뿐, 오히려 온라인게임이 사회성 증가에 기여한다는 견해도 있다.

한마디로, 온라인 게임 외에도 사회성 형성과 관련한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조건반사적으로 온라인게임의 규제가 사회성 결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진다고 믿는 바보스러움이다.

결론적으로, 청소년의 수면권, 건강권, 학습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셧다운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헌법상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에 대한 침해로 이어지는 개념 상실이다. 이렇듯 수단이 목적을 침해하는 법률을 흔히 악법이라고 한다.

산업을 활성화한다며 각종 규제를 모두 풀고 있는 정부이다. 그런데 왜 유독 이런 규제 법률을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근본적으로 온라인게임을 유해 매체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기성세대들이 게임에 대해 갖는 전통적 경멸이자 전체 청소년 인구의 97%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중 40% 이상이 온라인게임을 즐기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국회의원/관료들이 보이는 착란 증세이기도 하다.

거의 대부분의 현대인은 미디어에 대한 중독 증세를 가진다. 비단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셧다운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도 알고 있을 간단한 상식이다. ‘셧다운 제도’ 도입을 외치는 진짜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청소년의 행동을 규제하고 통제하려는 욕구이다.

흔히들, 청소년을 ‘미래 사회의 주역’이라는 부른다. 이러한 훈계적인 수사는 자유총연맹, 한나라당과 같은 우파들이 특히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청소년의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이다.

누구도 미래라는 감언이설 때문에 오늘을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주체로서 시민권을 포함한 모든 헌법상의 권리를 갖는다. 그것은 청소년이 미래사회의 주역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오늘을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당연한 권리이다.

‘셧다운 제도’는 시민으로서의 청소년의 권리를 박탈하며, 청소년 문화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태도이다. 지금 필요한 청소년 정책은 문화적 환경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청소년이 처해있는 현실적 상황과 조건을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 청소년들은 학습의 부담과 존재에 대한 사회의 불인정이라는 이중고에 놓여있다. 온라인게임을 하는 것을 범죄적 행위로 만들 수는 없다. 셧다운 제도의 도입에 반대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