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을 일자로 붙인 채 “음매 기살어”를 연신 외쳤던 코미디언 김미화.

김미화씨가 진행하는 MBC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 ‘보통 사람들을 위한 눈높이’를 향해 달려온 지도 지난 20일로 꼭 5년이 됐다. 그 사이 그는 ‘코미디언’과 ‘시사 프로그램’이라는 ‘어색하고 수상한’ 조합을 ‘친근하고 신뢰도 높은’ 조합으로 바꾸어 놓았다.

지난 28일 방송을 앞두고 MBC 라디오국에서 김씨를 만나 시사 프로그램의 새로운 길을 열어온 지난 5년의 경험과 소회, 여성이자 연예인으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인터뷰 도중 <김미화의…>를 설명하면서 ‘따뜻함’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수십년을 코미디언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던 그가 많은 망설임 끝에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뉴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주기 위함이었다.

▲ 방송인 김미화 ⓒ송선영

그는 그렇게 시작한 <김미화의…>을 통해 때로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뉴스를 전하기도 하고, 가끔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채 조심스럽게 나쁜 뉴스를 전하기도 한다.

매일매일 라디오를 통해 ‘뉴스’를 전하지만 정작 그는 ‘뉴스’를 만드는 기자들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고, 많은 기사들이 만들어 낸 ‘사회적 편견’과 혼자 싸워야 했다.

“사실 전화 한 통만 하면 알 수 있는 문제인데 기자들은 전화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진과 함께 기사를 내보낸다. 그렇게 잘못 나간 기사는 다른 기자의 인용에 의해 재생산되고, 인터넷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걸 다시 퍼간다. 이건 완전 ‘네버엔딩스토리’와도 같다. 정말 답답한 거다.”

그는 “언론은 사람이 다치는 것에 대해 전혀 생각을 안 한다”며 언론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내면서도 인터뷰를 요청하자 “도와드려야죠” 하면서 단번에 요청을 받아들였다.

다음은 김미화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한 지 5년이 됐다. 지난 5년을 돌아보면 어떤가?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는 느낌이 하나도 없다. 남들이 옆에서 5년 됐다고 하니까 ‘정말 대단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시청자들이 느끼는 것과 달리) 안에 있다 보니 세월이 가는 걸 잘 모르겠다. 아마도 처음에 코미디언이라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잘 해내지 못하리라 생각하셨던 분들이 많았을 텐데…(그래서 오래 진행했다고 느끼시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5년이란 시간동안 매일같이 먼 거리에서 달려와서 임무 완수하고 또 먼 거리를 달려갔는지, 스스로도 대견하고 칭찬해주고 싶다.

-“보통 사람들을 위한 눈높이”라는 목표에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 충실했다고 생각하는가?

‘보통 사람들을 위한 눈높이’라는 말 안에는 “서민들을 위한 따뜻한 뉴스, 서민들이 듣고 용기를 가질 수 있는 뉴스를 전해드리겠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런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아서 아쉽다.
초창기에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눈높이에 충실하려고 했고 따뜻한 뉴스를 많이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 따뜻한 뉴스라는 게 굉장히 어렵더라. 우리 사회에서 선행을 한 사람들 찾는 것이 나쁜 뉴스를 전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막상 그런 분들을 찾아도 ‘숨어서 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안해주다보니까 굉장히 애를 먹었다. 매일매일 프로그램 제작을 해야 하니까 이런 부분이 조금 어려웠다.
그래도 내가 코미디언이기 때문에 라디오를 듣는 많은 사람들이 “뉴스가 쉽다” “푸근하다” “우리의 얘기다”라고 느끼시니까, 어느 정도 서민 눈높이에 살짝 근접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처음 시사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두렵지는 않았나?

프로그램 PD분께서 내가 <개그콘서트>를 기획한 점을 높이 평가했던 것 같고, 여러 사회단체에 봉사하며 살아온 나의 행보를 ‘진심’으로 느끼셨던 것 같다.
처음에는 굉장히 두려웠다. 나는 시사프로그램 진행하기 전까지는 사실 신문도 잘 안봤다. 신문을 보더라도 큰 제목만 보고 ‘어떤 사건이 있었다더라’ 여기까지만 접했다. 그래서 처음엔 PD분께 게스트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갈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웃기는 뉴스를 시사적으로 얘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PD분이 집으로 찾아오셔서 “김미화씨, 사람이 나이 마흔이 넘으면 사회에 좋은 일을 하면서 사셔야 한다. 라디오에서 나가는 ‘착한 뉴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선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김미화씨가 하고자 하는 사회복지 개념과 맞는 거다.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내가 사회복지를 하려는 이유도 사람들에게 긍정의 힘을 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나도 어려운 가운데 잘 헤쳐 가는데 여러분 힘들어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라디오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결심을 하게 됐다.
결심하기까지 여러가지 문제가 걸려있었다. 오후 6시부터 8시까지는 ‘황금 시간대’다. 라디오 시간대도 그렇지만 개인적인 돈벌이로도 그렇다. 코미디언들은 기업체 행사 혹은 파티같은 곳에서 사회를 자주 보는데 라디오 시간과 딱 걸린다. 개인적으로 돈벌이에도 엄청난 지장이 있었고, 또 관심도 없었던 분야라서 부담이 되기도 하고 그랬다.

인터뷰 도중 가수 송대관씨가 우연히 지나가다 김미화씨와 반가운 회포를 나눴다.

송대관: 아가~ 어미~ 잘 있었냐? 어미~ 아따, 고마워. 자네가 진짜 옛날에 나 클 때 일조를 한 거 알어? 태진아랑 나랑 싸움 붙여서 라이벌 만드는 데 일조를 한 게 자네잖어?

김미화: 라디오에서도 예전에 내가 얘기했지만 송대관씨와 태진아씨, 내가 키웠는데. 하하

송대관: 그게 재밌지.

김미화: 오빠 요새 좋으세요? 어떠셔?

송대관: 정신없어. 좋기도 하고. 열심히 하면 (가수들은) 새로운 국면 맞이할 거 같어. 그려 말씀 나눠.

김미화: 고맙습니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면서 버려야 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나?

인생은 복불복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게 있으면 손해보는 것도 있는 것이기에 아쉬움은 없다. 대신 <무릎팍 도사> 같은 젊은 친구들이 재미있어 하는 프로그램에 계획적으로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평상시 예능프로램에서 섭외가 많이 오지만 라디오 스케줄에 지장도 있고, ‘라디오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제하고 있다.
시사프로그램이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코미디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어디서든 권위적이지 않고 재미있는 사람이 방송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언론과 인터뷰 할 때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서”라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만큼 이 프로그램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맞나?

현재 하고 있는 게 이 프로그램이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애착이 간다. 시사라는게 하면 할수록 묘한 끌림이 있고 빠져드는 게 있다. “뉴스에 빠져든다?” 처음엔 어려운 일일 거라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왜 시사에 빠져들고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사람의 생각이란 게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됐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평론가들마다 의견이 너무 다르더다. 너무 해석이 달랐기 때문에 사실 어떤 사람의 말이 맞는지 판단이 안 섰다. 각자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게 재미있더라. 이게 시사프로그램의 매력이구나 느꼈다.

-시사프로그램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따뜻함이다. 정말 마음 속에 따뜻함을 담고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려고 노력한다.
최근 멜라민 파동 때 대부분 언론은 식약청의 늑장대응을 지적했다. 물론 식품과 관련된 일이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식약청 관계자와 통화할 때 ‘적은 인원으로 얼마나 힘들까, 이 분들도 우리 식구고, 가장이고, 아들일 텐데’라는 생각에 인터뷰 도중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집어넣으려고 노력했다.
“목소리가 쉰 것 보니까 밤 새고 힘드시겠다”고 위로했더니 그 관계자가 “집에도 못 들어가고 힘들다”고 토로하더라. 그래서 “어려우시겠지만 우리 국민들 음식 때문에 고통도 많고 신경도 많이 쓰이까 잘 좀 해주세요”라고 당부의 말을 전하면서 서로 기분 좋게 인터뷰를 했다. 세월이 흘러 지나고 보니 '그때 라디오 인터뷰할 때 닦달하지 않고 이야기 들어준 것 고맙다’는 말이 종종 들려온다. 당근과 채찍이 필요한 것 같다. “정말 더러워서 못하겠다”고 하면 안되니까.(웃음)

-반면, 진행자로서 가장 후회스러웠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나?

나쁜 뉴스 전할 때가 가장 힘들다. 힘들어서 목숨을 끊었다거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거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조심스럽고 어렵다. 그래서 최대한 표현을 순화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살해 사건이 있었습니다”라고 하면 너무 끔찍하니까 “아이쿠, 안타깝게도 몇 분이 목숨을 잃었네요”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그래야 듣는 사람들이 ‘그래도 덜 끔찍하다’라는 생각을 할 테니까. 이런 뉴스를 전할 때가 가장 어렵다.

-‘아침 손석희, 저녁 김미화’라는 말이 있다. 손석희 교수와 비교했을 때 본인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은 어떠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가?

손석희 선생님과 비교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일단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손 선배님은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굉장히 냉철하시고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다. 나는 그런 카리스마가 없다. 코미디언으로서, 연기인으로서의 카리스마는 있을지 몰라도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서의 냉철한 카리스마는 없다.
다만 서민들이 뉴스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따뜻함을 가지고 방송을 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송선영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서 가장 뿌듯했던 때는 언제인가?

많은 분들이 시사프로그램 진행하는 것을 대단하게 봐주신다. 심지어 MBC 보도국 계신 분들도 그렇다. 사실 당신들 밥그릇에 내가 숟가락 담근 것이라 ‘왜 우리 영역을 침범해’라고 바라볼 수도 있는데 MBC분들은 다 따뜻하게 보듬어 주신다. 어떻게 하면 더 도와줄 수 있을까 준비해주시고, 어려운 용어가 있으면 해석해주시고 편안하게 설명해주신다. 나는 5년이나 했지만 아직도 모르는 거 투성이다.

-동시간대 청취율 1위다. 인기 비결은 무엇인 것 같나?

내가 잘해서라기 보다는 MBC가 갖고 있는 힘 때문인 것 같다. 대중 교통에 종사하시는 기사분들이 많이 듣는다고 하더라. 사실 앞 뒤 프로그램이 재미있는 거라 덕을 많이 본다. (하하)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고 있지만 일부 보수단체들은 방송이 편파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동의하는가?

‘편파적이다’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편파적이지 않다. 내가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닌 대중 연예인이기 때문에 어느 단체로든 ‘편파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 방송 내용을 들어봐도 편파적이지 않다. 먹고 사는 길이 방송인데 뭐하려고 그걸 편파적으로 하겠나. 나에게도 득이 안 되는데. 내가 소신을 가지고 지지했다면 이런 얘기를 들어도 좋은데, 이는 MBC가 가지고 있는 개혁적 느낌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며칠 전만 해도 이명박 대통령 국민 담화를 가지고 각 당 관계자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의원님들이 바쁘셔서 그러실 수도 있겠지만 한나라당과 연결하기가 너무 어렵다.
편파적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사실 어떤 단체와 몇 번 전화 연결을 했는지를 가지고 편파 여부를 따진다. 그러나 보수 쪽은 웬만해선 안 움직여주고 워낙 전화 연결이 힘드니까 결과적으로 한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괜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방송 중에 “한나라당을 연결하고 싶었지만 사정상 연결하지 못햇습니다”라고 반드시 말을 한다.

-사생활이 언론을 통해 그간 수없이 보도됐다. 언론 보도를 보면서 어떠한 느낌을 받았나?

아우~ 속상할 때도 많았다. 나는 알려진 사람이니까 괜찮은데 주변 가족들이 힘들어 했다. 숨겨져 있어도 될 사실들이 밝혀진 거니까 아이들한테도 미안하고. 예전 나의 성이 바뀌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내 동생이 가슴 아파했다. 재혼한 것도 언론에서 안 밝혔으면 했는데…, 재혼이라서 더 갈라서면 안 되기 떄문이다.(하하) 남편도 ‘취재를 안 당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지금도 힘들어한다.

-황우석 난자 기증, 서울종합예술학교 겸임교수, 동아일보의 ‘정치하는 연예인’ 기사 등 언론 보도와 관련해 정정 보도를 요청했었다. 당시 이런 기사들을 접했을 때 어땠나?

언론은 사람 다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안 한다. 정말로 연예인들은 정정보도를 요구하거나 법적으로 싸우는 것에 굉장히 취약하다. 이미지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저 여자 굉장히 드세다’ 이런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 같기 때문에 웬만하면 참는다. 지금도 그렇다.
정정보도가 나왔음에도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의 사랑으로 호의호식한다. 방송한다”는 기사가 아직도 퍼져 있다. 기자들이 정정보도 나왔다는 생각은 안하고 그냥 기사를 인용해 쓰는 거고, 그걸 보고 퍼나른 사람들은 정말 그런 것처럼 인식하게 되는 거다. 아직도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에 방송을 하는 사람처럼 되어있어서 답답한 거다.
그럴 때마다 항의하고 전화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기분은 나쁜데 계속 언론중재위원회 따라다니면서 소송을 할 수도 없는 거고. 좋게 기자한테 전화하면 “알아보고 내릴 게요”라고 얘기하고 3일이 걸린다. 참 힘들다. 내가 시사프로그램을 하고 있으니까 비교하는 게 재미있고 장사가 된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다.

-정정 보도 요청했을 때 이들 언론사의 반응은 어땠나?

동아일보 정정보도 요청 때는 기자분이 극렬하게 안 하겠다며 ‘정정보도가 아니라 반론보도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반론보도는 당신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건데, 이 기사로 인해 파생되는 기사가 무수히 많다"고 말했다. 그나마 정정보도를 받아냈기 때문에 잦아들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또 솔솔 나오고 있다. 이건 완전 ‘네버엔딩스토리’로 도는 거다.(하하) 매번 억울하다 할 수도 없어서 답답한 거다.
사실 전화 한통만 하면 알 수 있는 문제다. “김미화씨, 이게 사실입니까?”라고 물으면 말해줄 텐데 이건 뭐 일체 전화도 없고, 당당하게 사진까지 내보낸다. 그래서 억울하다. 진짜 소신있게 누구를 밀었으면 억울하지는 않다. 나는 정치 쪽에는 아예 관심도 없거니와 그런 것을 싫어한다. 정치를 하는 분들을 봐도 왜 정치를 하는지 전혀 매력을 못찾겠다. 그런데 수십년 정치 안한다고 말했는데도 자꾸 나를 찍어다 붙이는 게 웃긴다. 그것 좀 파헤쳐 달라.(하하하하)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수도 없이 많을 것 같은데 두렵지는 않은가?

인터뷰를 하면 오히려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어서 좋다. 전화 한번도 없이 마구 짜깁기로 기사 쓰는 게 문제다. 그래서 참 속상하다. 나는 인터넷 없어도 사는 세대다. 이메일 체크하고, 방송에서 필요한 기사를 검색해보고, 가끔 ‘김미화’라는 이름을 쳐서 내 기사를 확인하는 수준이다. 나에 대해 마구 심하게 인격적으로 모독해 놓은 것들도 많다. 그걸 보면 분통터져서 못 산다. 비판 의견은 수용하지만, 지나친 인신공격은 안 본다. 그래도 내 기사는 꼼꼼히 챙긴다.(하하)

ⓒ송선영

-예전 기자협회보에 쓴 글에 마이클 잭슨 노래를 인용해 ‘You are not alone’(넌 언론이 아니다)라고 꼬집은 바 있다. 지금 대한민국 언론의 모습을 어떻게 보는가?

언론을 보면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한쪽으로 치우친 언론이 있기도 하고, 바르게 보는 언론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만 언론들이 하나의 사안에 대한 판단을 할 때 대안 제시가 부족한 것 같아 조금 아쉽다. 너무 한쪽으로 몰리는 경향이라고 해야 하나.

-최근, 기자협회보에 남긴 글에 “기자들,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기자들을 위해 김밥 싸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어떤 의미에서 이런 말을 했는가? 진짜 김밥 싸줄 의향 있는가?

그 글 쓰고 기자협회보에서 메일이 왔는데 ‘진짜 김밥 싸줄 거냐’고 문의가 많이 왔다고 한다. 그러지는 못하고 원고료로 김밥을 살까 하는 생각은 있다.(하하) 그런 표현을 쓴 것은 요즘 나라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현안 때문에 기자분들이 수고하고 고생해야 하기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가운데는 YTN사태를 비롯해 KBS, MBC 문제도 있다.

-김미화씨를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본인 스스로가 표현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내가 붙인 말 맞다. 기자들에게 비교해서 설명하기 좋더라.(하하) ‘오프로(5%) 윈프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프라 윈프리처럼 안과 밖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방송에서의 모습과 실제 모습이 같은 사람. 베풀고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계속할 생각인가?

계속하는 것도 좋지만, 모든 사람 일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니겠나. 나는 나이를 먹는 게 두렵지 않다. 나이를 먹으면서 연륜이 쌓이는 것이 좋고 그 나이에 맞게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본다. 방송인으로서, 코미디언으로서 평생 사람들 곁에 있는 것이 최고겠지만, 사회에서 봉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많다.
나는 어릴 때부터 꿈이 코미디언이었고, 꿈을 이루면 정말 좋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며 살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고 행복하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주는 것도 감사한 일인데 더불어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서도 좋은 평가를 받아서 더욱 감사하다.

김미화씨는 '자신의 삶'에 대해 감사한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되고 싶었던 '코미디언'이라는 꿈을 이룬 것도, 좋은 일을 하면서 사회에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하게 된 것도 모두 감사하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참 바빴다. 장애인을 위해 열리는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동영상 촬영을 하기도 했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가수 송대관씨와 만담(?)을 나누기도 했다. 또 지나가던 슈퍼쥬니어 멤버들의 인사를 반갑게 받았으며, PD들과도 수없이 눈웃음을 나눴다.

덕분에 몇 차례 인터뷰 흐름이 끊기긴 했지만 "죄송하다"는 말에서 느껴진 그의 진심때문에 서로가 "하하" 웃으며 유쾌한 인터뷰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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