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제도 도입 3년을 맞아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이 ‘단체협약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인지 한국경영자총협회인지 모르겠는, 노동부의 존재 의의를 되물을 수 밖에 없는 왜곡과 편향으로 점철됐다.

노동부는 사용자단체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했을 뿐더러 ‘노동조합 때리기’에 집중했다. 노동부는 노동조합의 권리가 축소된 부분은 법 개정 취지가 반영됐다고 평가하고, 반대의 경우는 ‘여전히 노동조합이 인사·경영권을 흔들고 있다’는 식으로 비난했다.

보도자료 초장부터 ‘노조 때리기’

13일 노동부와 노동연구원이 ‘2013년 말 기준 유효한 단체협약 총 727곳’을 조사, 분석한 자료는 참고자료까지 총 24쪽에 이른다. 자료는 △집단적 노사관계에 관한 사항 △임금, 근로시간, 휴일, 복지 등 개별적 근로조건 관련 사항 △인사·경영권에 관한 노동조합의 관여정도 △종합 정리로 나뉘어져 있는데, 1쪽에는 노동부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내용이 모두 ‘노동조합 때리기’다.

1쪽은 “전근 등 배치 전환시 노동조합의 동의 또는 합의 절차를 거치게 하는 곳이 181곳(24.9%)에 이르고, 그중 상당수(87곳, 전체 12.0%)는 징계위원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하고 있으며, 가부 동수 시 부결(20곳, 전체 2.8%)토록 하여 사실상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는 징계, 해고가 불가능한 사업장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시작하는데 기술 자체가 노동조합에 대한 덧씌우기로 점철된 방식이다. 이어 “단체협약에 나타난 인사·경영권 제한 수준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마무리하며 노동조합으로 인한 경영권 침해를 양껏 부풀렸다.

2쪽부터는 조사결과를 개괄하는 내용인데 간략히 보면 이렇다. 먼저 ‘집단적 노사관계에 관한 사항’이다. △유니온숍(일정기간 내 노동조합 의무가입) 제도: 2009년 46.1%에서 30.1%(219곳)로 감소 △유일교섭단체 규정: 2009년 94.7%에서 47.0%(342곳)로 감소 △단체협약 유효기간 2년 규정 71.8%(522곳), 2년 미만 21.3%(155곳), 단협 유효기간 중 재교섭 규정 53.0%(388곳) △쟁의행위 종료 후 불이익 처분 금지규정 51.0%(372곳), 쟁의행위 기간에 대한 임금지급 규정 0.4%(3곳).

‘개별적 근로조건 관련 사항’ 조사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통상임금 범위 규정 23.9%(174곳) △연봉제 규정 5.0%(36곳), 이중 능력·성과·업적 등 평가를 통해 연봉을 결정하는 경우 1.1%(8곳) △임금체계 제정·변경시 노조 동의(합의) 절차를 규정 8.5%(62곳), 협의는 5.4%(39곳) △주당 소정근로시간 규정이 있는 곳 86.4%(628곳) △연장·휴일근로 실시절차 개별노동자 동의 17.0%(123곳), 노조 동의와 협의 각각 10%(78곳) △탄력적 노동시간 규정 87.0%(636곳), 선택적 노동시간제 2.0%(15곳) △유급휴일 규정 87.0%(636곳)…

마지막으로 노동부는 ‘인사·경영권에 관한 노동조합 관여 정도’를 별도 항목으로 정리했는데 내용은 이렇다. △정년퇴직자, 업무상 재해자 등의 배우자나 직계자녀의 우선·특별채용 규정 30.4%(221곳) △전직, 전근 등 조합원 및 조합간부 배치전환시 노조 동의(합의) 규정 24.9%(181곳), 협의 34.1%(248곳)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 12.0%(87곳), 찬반 동수시 부결 규정 2.8%(20곳) △정리해고시 노조 동의(합의) 17.2%(125곳), 협의 22.6%(164곳) △분할·합병·양도·휴·폐업시 노조 동의(합의) 10.9%(79곳), 협의 19.9%(145곳) △비정규직 비중 결정시 노조 동의 규정 3.9%(28곳), 협의 3.3%(24곳) △신규채용시 노조 동의 규정 0.4%(3곳), 협의 4.0%(29곳).

▲ 노사관계의 핵심은 단체협약이다. 그런데 정부는 정규직 노동자들을 ‘비정상’ 프레임에 가뒀다. 그리고 과보호론을 얘기하며 이를 정상화하자고 선동한다. 노동부는 사용자단체의 자료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고, 보수언론은 여전히 나팔수 노릇 중이다. (사진=미디어스 자료사진)

노동부가 불지피고 언론이 부채질하는 ‘정규직 과보호론’

노동부는 조사결과를 정리하면서 “노동조합 관련 집단적 노사관계 영역에서 복수노조제도, 근로시간면제제도(time-off) 등의 법 개정 취지가 단체협약에 뚜렷하게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 예로 유일교섭단체 규정과 유니온숍 규정이 대폭 감소했고 근로시간면제제도 규정이 신설되고 있는 점을 들었다. 또한 노동부는 “임금, 근로시간, 휴가, 복지 등 개별적 근로조건 관련 규정 변화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인사·경영권에 대한 노조의 참여비율은 다소 감소하였으나, 배치전환·징계시 노조동의 등 과도하게 제한하는 규정은 여전히 남아있다”며 “이처럼, 인사 경영권을 단체협약으로 과도하게 제한하게 되면 경영상 신속한 의사 결정이 어려워지고, 인력의 적기·효율적 활용을 어렵게 할 개연성이 커 기업의 생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일자리세습’ 관련 조항에 대해서도 “노사가 사회적 책임을 갖고 반드시 개선해나가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노동부가 이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놓자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정규직 과보호론’을 띄우는 기사를 내보냈다. 동아일보만 하더라도 13일자 18면에 <기업 25%, 노조동의 없인 전환배치도 못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고, 중앙일보는 경제 4면에 <“능력·성과 따져 연봉 결정” 기업 100곳 중 1곳 밖에 안돼>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매일경제는 <고용세습에 전환배치까지 노조요구 지나치다>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썼다. 노동부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사용자단체들이 원하는 대로 단체협약 실태조사 결과를 해석했고, 보수언론은 다시 한 번 ‘정규직 과보호론’을 부채질했다. 결과적으로, 노동부가 기업의 보도자료 생산기지 역할을 한 셈이다.

노동부의 노림수는 언론의 논조를 보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매일경제는 사설에서 “물론 노사가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경영 현안을 협의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일부 유럽 기업은 이런 바탕에서 노조가 경영에 활발히 참여한다”면서 “하지만 한국 기업에서 노조의 경영 참여는 정규직 노조가 단체행동을 무기로 회사를 압박해 얻어낸 전리품 성격이 짙다. 노조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부당한 경영 간섭을 더는 허용해선 안 된다”는 황당한 논리를 펼쳤다.

“그래야 노조도 기업 발전에 공헌하고 사회의 신뢰를 얻어 한국의 노조 결성률(10.3%)을 일본(18.2%)이나 독일(19.1%)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매일경제 주장인데, 사회보험이 두텁지 않아 ‘실업에 대한 공포’가 강하고 최근 ‘외주화’ 추세로 고용불안이 심각한 한국에서는 이 같은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보수언론의 논리대로라면 단체행동을 무기로 전리품을 획득하고 과보호 받고 있는 한국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일본, 독일보다 높아야 한다. 노동조합은 이익단체이고, 쥐고 있는 ‘현장권력’이 있어야 가입률이 높아진다. 노동부 자료는 한국의 정부와 기업이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해석해야 상식적이다.

노동부의 보고서는 노동조합에 관한, 정부와 재계, 보수언론이 원하는 분석을 대행했을 뿐이다. 노동부를 출입하는 한겨레 전종휘 기자는 13일자 12면 기사 <노조 경영참여 흠집 내는 고용‘노동’부>에서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안정적인 기업 경영과 노사분쟁의 예방이라는 측면에서 권장할 만한 일”이라며 “고용부는 복수노조 시행 3년을 맞아 처음으로 실태조사를 했다며 정작 발표의 초점은 ‘정규직 과보호’ 비판에 뒀다”고 꼬집었다.

노동부와 언론은 ‘세습채용’, ‘현대판 음서제’를 자주 띄우며 정규직 과보호론을 강화한다. 그러나 전종휘 기자는 “일하다 다치거나 숨진 사원의 가족을 채용해 이들의 어려운 생계를 돕자는 것마저 (현대판 음서제로) 도매금으로 비난을 받아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다”며 “더구나 단협 규정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는지,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고용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조항이 사문화된 회사도 많다”는 게 노동부 관계자 설명이다.

▲한겨레 2015년 3월 13일자 12면.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무력화한 ‘권리들’

노동부 조사결과를 거꾸로 보면 그 동안 축소된 노동권이 눈에 보인다. 노조와 합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기업이 전체 60%가 넘고, 노동조합 간부를 제멋대로 전환배치하는 기업도 40%가 넘는다.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징계할 수 있는 기업이 97.2%나 되고, ‘경영상의 필요성 없는 경영상 해고 금지’ 규정이 있는 곳은 3.5%밖에 안 된다. 단협에 징계사유를 규정한 기업은 절반이 채 안 되고 2009년에 비해 5.7%나 줄었다. 조합원과 노동조합 간부를 징계할 경우 노동조합이 참여할 수 있는 규정이 있는 기업은 각각 24.9%와 29.8%밖에 안 되는데 이 또한 2009년에 비해 20%P 줄어들었다.

노동조합 가입을 고용조건으로 하는 유니온숍 규정은 2009년에 비해 16.0%P나 감소했다. ‘노동조합 활동 관련 사용자의 편의 제공’ 규정이 있는 경우도 2009년에 비해 6.1%P 줄었다. 노사협의회 규정이 있는 단협을 갖고 있는 기업은 28.1%뿐이고, 노사협의회 개최시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의견청취 규정이 있는 경우는 1.8%뿐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규정하는 단협은 14.7%밖에 안 되는데 2009년에 비해 오히려 줄었다.

뿐만 아니다. 경영진이 임의대로 회사의 빈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울 수 있는 기업이 93%가 넘는다. 임금체계를 만들거나 바꿀 경우 노동조합 동의가 필요한 기업은 8.5%뿐이다. 기업의 넷 중 하나는 노동절을 유급휴일로 규정하지 않았고, 회사 창립기념일을 유급휴가로 규정한 곳도 58.2%밖에 안 된다. 경조휴가에 대한 규정이 있는 기업도 81.0%로 2009년에 비해 10.5%P나 떨어졌다. 생리휴가를 월 1회 유급으로 의무보장하는 기업은 9.9%뿐이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규정이 있는 기업은 26.7%뿐이고, 노동조합에게 산업안전 보건활동을 보장하는 경우는 10.6%다. 정기 건강진단 규정이 있는 단협을 체결한 기업은 2009년 85.0%에서 2%P 감소했다. 복리후생 시설 및 장비 규정이 있는 경우는 2009년 89.2%에서 8.7%P나 감소했고, 학자금 지원규정도 같은 기간 3.3%P나 떨어졌다. 급식비와 체력단련비 지급 규정 단협이 있는 회사의 비율도 줄었다.

노동부 자료는 2009년과 2013년 단체협약을 비교하는 수준이지만 IMF 구조조정 이후 한국의 노동권은 축소될 만큼 축소됐다. 정규직노동조합이 획득한 권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법외노조가 됐고 공무원노조도 마찬가지다. 이주노조는 십 년 넘게 합법노조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다. IMF 시기를 전후로 급격히 확대된 간접고용(파견, 도급, 하청) 또한 상시필수업무의 영역을 파고든지 오래됐다. 무분별한 ‘직군분리’는 오히려 임금격차를 더 심화했고,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정규직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치워버렸다.

박근혜 정부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등장한 이후 이른바 ‘구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노동부의 보수화가 심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정규직 노동조합은 ‘적폐’이자 ‘비정상’이다. 값싼 ‘시간제 일자리’ 확대로 시작한 박근혜 정부 노동·고용정책은 해고요건 완화, 중규직 도입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규직에 대한 보호가 과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고, 정부는 언론을 파트너로 삼고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계를 견제해야 하고, 청와대의 의지를 검증해야 할 노동부마저 재계의 주구 노릇을 하는 상황이 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선전기지로 몰락한 노동부는 차라리 사용자단체에 흡수, 통폐합 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동부가 명심해야 할 것은 노동부가 구조조정되거나 해체되더라도 구성원들의 의견을 물어서도 안 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몰아칠 정부의 징계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굿바이 노동부’라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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