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놀랐다. 자부심이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짐작을 못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3일 내놓은 JTBC 손석희 사장 인터뷰 기사에는 이렇게 시작하는 질문이 있다. “허핑턴포스트를 비롯한 새로운 온라인 매체들이 기존 프린트 매체들의 영향력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 언론의 문법으로 보면 허핑턴포스트는 ‘언론’이 아니라 포털사이트 같은 뉴스 유통 플랫폼이다. 계약을 맺은 언론사들의 기사를 선별해 내보내고,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사나 필자의 글을 활용해 광고수익을 올리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허핑턴포스트에 ‘기자’는 없다. 모두 ‘에디터’다.

물론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자부심을 이해할 수 있다. JTBC <뉴스룸>을 만드는 사람은 120명 정도인 반면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에디터는 십여 명 정도인데 하루 페이지뷰는 150만 수준이다. 웬만한 종합일간지 닷컴, 인터넷신문보다 독자가 많다. 출범 첫해인 2014년에도 적자를 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면과 시간이 정해져 있는 신문, 방송과 달리 온라인에서는 “개개인에 따라서 더 알고 싶은 뉴스”를 골라서 읽을 수 있다. 또한 “‘허핑턴포스트’처럼 SNS를 기반으로 한 매체가 독자들에게는 뉴스를 섭취하는 더 쉽고 효과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좋은 뉴스를 골라준다는 평가도 많고, 파급력도 있다. 한겨레의 한 기자는 “같은 기사라도 한겨레보다 허핑턴에서 더 잘 읽히는 게 많다”고 말했다.

저녁만 되면 KBS와 MBC 뉴스에 ‘무조건’ 노출되던 시대는 지났다. 능동적으로 뉴스를 선택하는 데 능숙한 이용자가 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도 네이버와 다음이 편집한 뉴스에 일방적으로 노출되고, ‘우라까이’(타매체 기사를 그대로 복사붙이기 수준으로 내보내거나 교묘하게 바꾸는 못된 행태)가 성행하고, 정부와 기업의 보도자료가 몇 글자만 바뀐 채 그대로 기사가 되는 언론 환경이다. 때문에 제대로 된 뉴스를 찾아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뉴스를 많이 읽는 것과 좋은 뉴스를 읽는 건 다른 행위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이러한 지점을 파고들었고, 현재까지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허핑턴포스트가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손석희 사장과 인터뷰에서 세 차례나 ‘허핑턴포스트’를 언급하며, 뉴미디어의 역할과 장점을 강조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사람들은 마음껏 뉴스를 취사선택합니다. 물론 그런 장점은 있습니다. 자신의 취향대로 뉴스를 본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뉴스들이 꼭 이용자들에 의해서만 최종 선택되는 건가요? 매체가 특정한 방향의 뉴스만 독자들이 선택하도록 내놓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허핑턴포스트코리아’도 에디터들이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질문자 입장에서는 꽤 아픈 대답을 들은 셈이다. 물론 하루 종일 이슈를 추적하고 좋은 뉴스를 선별하기 위해서는 에디터는 많을수록 좋다. 에디터들은 하루 열 건의 원고를 손대고 직접 기사를 쓴다. 콘텐츠는 크게 전재기사, 블로그, 직접작성 기사, 번역기사 등 네 종류인데 비율로 보면 전재(한겨레 한겨레21 연합뉴스 오센)의 기사가 전체의 절반 수준이고 나머지는 비슷한 비율이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프린트 매체 이상의 영향력”을 자랑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들의 영향력을 이끌고 있는 건 좋은 저널리즘은 아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에디터들은 큐레이터로서 뉴스를 고르기도 하지만 가십성 기사도 편집하는데, 4일, 오후 4시 반 인기기사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글은 대부분 전재계약을 맺은 언론사의 기사나 허핑턴포스트가 직접 생산한 리스티클(listicle=list+article)이다. 제목만 보면 이렇다.

<그 많은 아웃백 어디로? 패밀리 레스토랑 쇠락 이유 4가지>, <“이태임이 예원에게 욕설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인이 가장 기르고 싶은 개 베스트 10(사진)>, <인지과학으로 본 ‘드레스 색깔 논란’>, <인도 버스 성폭행범 “피해 여대생 책임이 더 크다”>, <당신의 주방을 스마트하게 바꾸는 팁 17>, <불륜에 대해 당신이 몰랐던 10가지 통계>, <남자의 섹시함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11가지>, <최고의 유튜브 요가 채널 9>

혹자는 “독자가 선택한 기사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인기기사 리스트는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가십과 전 세계를 떠도는 리스티클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3일 오후 비슷한 시간에 발행한 손석희 인터뷰와 연예기사의 페이스북 ‘좋아요’ 숫자를 보자. 4일 자정 기준 손석희 인터뷰 기사에 달린 ‘좋아요’는 천 개 정도였던 반면, 연예기사에는 3만개가 넘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정치, 경제, 사회부문 에디터들은 하루 최소 7~8개의 기사를 골라 전재하고 보통 정치·경제·사회 기사들이 상위기사 30~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결국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트래픽을 끌고 가는 콘텐츠는 리스티클, 동영상, 사진 같은 것들이다. 허핑턴포스트 본사는 매일 각국 지사에 “바이럴이 잘 된 동영상과 사진”을 보내주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가 아닌 에디터에게 “왜 직접 기사를 쓰지 않고 큐레이팅만 하느냐”고 따지는 것은 허핑턴포스트라는 뉴스 플랫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에디터가 직접 쓴 기사를 두고 “취재 없이 링크만 붙인 우라까이”라고 비난하는 것 또한 부적절하다. 좋은 뉴스는 더 읽혀야 한다. 온라인은 뉴스의 독점이 아니라 뉴스의 공유를 위한 도구인 것이 더 바림직하다. “글값이 없다”는 지적을 제외하고 허핑턴포스트에 대한 비판은 분명, 과도한 측면이 있다.

진짜, 문제는 허핑턴포스트가 자신의 매체력을 저널리즘적 영향력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허핑턴포스트가 비판하는 매체처럼 리스티클과 동영상, 사진으로 트래픽을 쌓아 올리면서 뉴스의 미래를 언급하는 것은 솔직히 낯뜨겁다. 허핑턴포스트는 ‘좋은 뉴스를 골라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결국 지금 허핑턴포스트의 포스트는 이 매체의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한겨레 파견 직원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서 네이티브광고를 쓰고 있다).

사실 비판자들이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묻고 싶은 것은 그들이 손석희에 물었던 것 같이 (꽤나 거창하게도) 뉴스의 미래다. ‘SNS의 시대에 뉴스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우리는 집단지성의 정화 작용을 믿을 수 있는가? 새로운 플랫폼이 난립하는 시대에 뉴스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창간 1년이 된 허핑턴포스트가 해야 할 일은 좋은 기사를 골라내고 이 기사의 의미를 알려내는 것만으로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리스티클 트래픽을 저널리즘 영향력으로 착각한다면 저널리즘에도 생존에도 도움이 안 된다.

‘허핑턴포스트를 비롯한 새로운 온라인 매체들이 기존 프린트 매체들의 영향력을 넘어서고 있다’는 그들의 자기 규정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래서 매체 환경이 어떻게 바뀌었고 저널리즘의 선순환에 그들이 어떻게 기여했는지 허핑턴포스트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대체는 대안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허핑턴 이후 안 읽어도 되는 기사, 보지 않아도 그만인 뉴스만 더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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