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무한도전> ‘무도작은잔치’에 삼성전자 노트북이 등장했습니다. 유재석이 “제가 이런 거 갖고 다니는 거 처음 보시죠?”라고 할 만큼 뜬금 없었고, “웬 노트북?”이라는 자막이 등장할 정도로 생뚱맞았습니다. 유재석은 일어서서 노트북을 왼쪽 팔뚝에 걸친 채 모니터에 있는 대본을 줄줄 읊었습니다. 간접광고(Product Placement)를 하려면 차라리 갤럭시탭 같은 태블릿PC로 하지, 왜 노트북을 들고 서 있는지… 보는 내내 답답했습니다. 신학기 시즌이라 노트북을 팔고 싶은 삼성의 마음, 광고주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MBC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오랜만에 <무한도전>에 실망한 날이었습니다.

▲ 2월28일 방영된 <무한도전> ‘무도작은잔치’에 등장한 삼성전자 노트북. (이미지=<무한도전> 갈무리>
▲ 유재석이 삼성전자 노트북을 들고 대본을 읽는 모습이 불편해 보였던 사람은 저뿐인가요. (이미지=<무한도전> 갈무리)

<무한도전>은 광고주들이 가장 탐내는 프로그램입니다. 시청률도 잘 나오고, 몰입도와 파급력 모두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MBC와 KBS의 방송광고 판매를 대행하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 물어보니 <무한도전>은 시놉시스를 사전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광고주들이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괜히 잘못 노출했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라네요. 그래서 지금까지 몰입을 방해하는 PPL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코카콜라 같은 음료수를 앞에 두고 토크를 하고, 현대·기아자동차로 추격전을 하고, 뭔가 따뜻해 보이는 네파 아웃도어를 입고 나오는 정도였죠.

아무리 잘 나가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라 하더라도 간접광고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특히 요즘 같이 본방송 시청자가 적어지는 VOD(Video On Demand) 시대에 광고주들은 100% 노출을 보장하는 간접광고를 선호합니다. 솔직히 프로그램 앞뒤에 붙는 광고를 보기는 하나요? 콘텐츠를 만드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들의 숙원사업 중 하나가 바로 간접광고 규제 완화입니다. 라디오에서부터 PPL을 소개하는 신종광고가 등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DJ가 방송 도중 음원서비스 같은 PPL을 설명하는 식이죠.

여기서 잠깐! 간접광고 규제는 이렇습니다. 장르는 오락(예능, 드라마)로 제한돼 있고, 프로그램 전체 시간의 10%를 넘기면 안 되고, 상품을 화면의 4분의 1 이상 노출하면 안 됩니다. 또 상품의 기능을 직접 설명하지 못합니다. “방송을 홈쇼핑처럼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규제가 엄격한 탓에 사업자들도 잘 지킵니다. 물론 극의 흐름과 맞지 않는 PPL 연출은 몰입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tvN 드라마 <미생>에서는 ‘홍삼판매점’이 그랬죠. <미생> 영상을 비슷하게 연출해 드라마 앞뒤에 붙인 ‘유사-풋티지’ 광고도 유행했습니다. 시민단체에서는 지나친 간접광고를 ‘막장드라마’의 한 요소로 지적하기도 합니다.

▲ <미생> 14화에는 장그래와 안영이가 바이어에게 줄 선물을 사러 홍삼판매점을 찾은 장면이 나옵니다. 장그래는 특정제품을 들고 “가격이나 상품 고려하면 이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안영이는 끄덕이고, 극중 판매점 직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와 적합해서 외국 바이어 선물용으로 권해드리고 있는 상품입니다”라고 알려줍니다. 장그래, 안영이, 장백기가 홍삼판매점에 머무는 시간은 VOD 기준 2분가량이나 됩니다. (이미지=드라마 <미생>에서 갈무리)

시청자의 저항 수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지금 분위기를 보면 간접광고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광고주가 작가이자 코디인 세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아직 한국의 간접광고 수준은 갓난아기 수준이라는 점입니다. 간접광고 전문가인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오철현 차장(영업2국 3팀)은 “KBS와 MBC만 따지면 한 달에 10억 채 안 되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물론 앞으로는 크게 늘어날 겁니다. 오철현 차장에게 간접광고의 현황과 전망, 그리고 트렌드를 듣고 나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무섭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 따르면, 지상파 3사의 간접광고 금액은 도입 2년차 2010년 174억 원(KBS 15억, MBC 106억, SBS 53억)으로 출발해 2014년 408억 원(K 122.3억, M 125.7억, S 160억(e))로 4년 동안 2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오철현 차장은 올해는 KBS와 MBC의 간접광고 매출 전망을 묻자 “올해는 상승 기조다. 각각 150억 원을 무난하게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왜냐면 프로그램 시청률도 괜찮고, 콘텐츠가 재방·삼방하기 때문에 광고주들이 간접광고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장르, 시간, 내용규제가 풀리면 훨씬 늘겠죠.

▲ 웬 노트북? (이미지=<무한도전> 갈무리)

우선 <무한도전>에 나온 삼성 노트북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오철현 과장은 “노트북 판매의 절반 이상이 신학기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짧게 답했습니다. 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노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시청자와 광고주의 선호가 달라 조심스럽기도 하고, <무한도전>은 시놉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PPL을 넣기 힘든 측면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대한민국 대표 예능인데 장기계약한 상품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장기계약은 아직까지 없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무한도전>이 간접광고한 제품은 코카콜라, 현대기아차, 네파, 해지스, 데상트, 아디다스, KT뮤직, 삼성 제품 정도입니다.

<무한도전> PPL에서 보듯 옷과 신발이 간접광고 시장에 몰리고 있습니다. MBC 주말드라마 <장밋빛 연인들>과 설 특집 <아이돌육상선수권대회>의 경우, 스베누의 신발과 옷이 돋보였습니다. 오철현 차장은 “스베누가 메인스폰서로 참여했고 의류와 신발을 PPL 했다. <아육대>의 경우, 아이돌 스타 250명에게 옷 입힐 기회가 어디 있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전자제품 PPL 중에서는 삼성이 가장 큰손이라고 합니다. 오 차장은 “전자제품의 경우, 삼성과 LG를 구분해서 내보내지만 삼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며 “특히 드라마 시간대 전체를 선점하고 제작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간접광고가 잘 팔리는 프로그램’이 뭔지 물어보니, 예능에서는 <무한도전>과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가 괜찮지만 “역시 드라마”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곧 방송을 시작할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에는 삼성전자 갤럭시6가 전회에 걸쳐 등장할 예정입니다. 김희선 지현우 오윤아 김유정 바로 리지 등 등장인물들이 갤럭시6을 즐겨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또 스베누도 의류와 신발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오철현 차장은 “MBC 드라마 <전설의 마녀>, KBS 드라마 <파랑새의 집>, SBS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가 잘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쪽박을 차는 경우도 있습니다. 타깃으로 잡은 시청자가 외면하는 프로그램을 경험한 광고주들은 다시 투자하기를 꺼립니다. 민영방송이 좀 더 과감하게 PPL을 배치하고, 공영방송은 아직까지 시청자 눈치를 본다고 합니다. 또 중국시장을 노리는 콘텐츠도 있는데 중국의 유료방송은 홀드백(무료전환 시점) 기간이 6개월이라 광고효과를 내기 힘들어 영업하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간접광고는 언제쯤 자리를 잡을까요. 그런데 시청자 입장에서는 간접광고가 자리를 잡을 수록 ‘홈쇼핑 앵글’을 피하기 어려워집니다. 언젠가부터 조금씩 PPL을 다루는 카메라 앵글이 좀더 똑똑해지고 있고, 때때로 노골적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VOD시대, 방송사들의 전략 중 하나는 간접광고 붐업입니다. 오철현 차장은 “임팩트 있고 몰입도 높은 <무한도전>이 잘 해주면 PPL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무한도전>이 사전에 시놉을 공개한다면 우리는 그날을 ‘방송이 광고에 빠진 날’로 쿨하게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 시청자 반응이 궁금합니다. <무한도전>의 애청자 중 한 명은 “제작진이 일부러 PPL을 깐 거라 생각했다”고 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영진의 압력에 마지못해 PPL을 하게 된 NBC 제작진의 PPL 극복기를 소개합니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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