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사용자 책임’을 촉구하며 구본무 LG그룹 회장 집 앞에서 집회와 노숙을 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해 LG유플러스가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런데 신청인은 구 회장 자택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 운전기사, 시설관리책임자들이다. 또한 LG유플러스는 노동조합 조합원이 구 회장 집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이들이 구본무 회장을 언급하는 구호를 외치지 못하게 해 달라는 ‘명예훼손 금지’ 가처분 신청도 제기했다.

9일 희망연대노동조합에 따르면 LG그룹 구본무 회장 집에서 일하는 전일제 가사도우미, 주5일 가사도우미, 구 회장 일가의 운전기사, 시설관리자 3인 등 6명은 최근 서울서부지법에 “(구본부 회장 자택은) 업무 장소일 뿐만 아니라 주거의 평온을 향유하는 거주 장소”라며 “그런데 노조가 확성기 소음을 유발하고 주택 출입을 방해하며 야간에 탐조등을 비춰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업무방해 가처분 신청을 냈다. LG유플러스는 구 회장 자택 앞 30미터에 2명 이상의 조합원이 접근하지 못하고 LG·LG유플러스·구본무 회장이 포함된 구호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시 하루 1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도 제기했다.

▲2월3일 LG유플러스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서울 한남동 구본무 회장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인 LG유플러스의 해결을 촉구했다. (사진=희망연대노동조합.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LG유플러스의 인터넷과 IPTV 등을 설치, 수리하는 기사들은 지난해 3월 노동조합(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을 만들고, 지난해 9월부터 서울 여의도 LG그룹 트윈타워 앞에서 노숙농성을 해왔다. ‘무단협’ 상황이 길어지고 ‘조합원 일감 뺏기’ 등으로 사태가 갈수록 나빠지자, 이들 노동자와 가족들은 서울 한남동 구본무 회장 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고, 지난 2일부터 구 회장 집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노동조합은 그 동안 ‘실질적 사용자’인 LG유플러스가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며 호소해왔다. 그러나 이번 LG유플러스의 가처분 신청은 하도급업체 노사문제로 ‘선을 긋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희망연대노조 장제현 조직국장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우리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우리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에게 사용자 책임을 묻고 있는데, LG는 이 요구조차 막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조차 원천봉쇄하는 슈퍼 갑질”이라는 게 노동조합 주장이다.

장제현 조직국장은 가사도우미 등 명의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에 대해 “을을 내세워서 또 다른 을을 압박하는 사실은 LG와 구본무 회장이 슈퍼갑이라는 사실을 다시 보여준다”며 “소장에는 구본무 회장이 ‘사실상의 채권자’로 등장하는데, 이는 회장 자택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구본무 회장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이번에 가처분 신청을 낸 노동자들은 LG계열사인 서브원 등에 소속된 간접고용 노동자다. 이중 시설관리 노동자 셋은 지난 2013년 LG전자 하청업체 사장의 집 근처 시위에도 비슷한 내용의 가처분 신청을 냈다.

소송 비용 또한 LG유플러스가 부담한다. LG그룹 관계자는 <한겨레>에 “회장과 가족은 낮에 집을 비우지만, 가처분신청을 낸 이들은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며 “두달여 가까이 적게는 50여명, 많게는 500여명이 매일 낮과 밤에 도를 넘어선 시위를 했다. LG유플러스가 가처분신청을 낼 때 이들도 함께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무방해 가처분 신청에 대한 공판은 10일 열린다.

▲한겨레 2월9일자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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