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김정욱 이창근, 스타케미컬 차광호에 이어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간접고용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해 3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회사와 단체협약 교섭을 벌여왔으나, 회사는 반년 넘게 노동조합의 안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합법적인 쟁위행위를 시작한지 석 달 가까이 지났고, 지난달 ‘끝장교섭’까지 벌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6일 LG유플러스 서광주센터 AS기사 강세웅씨와 SK브로드밴드 인천 계양 행복센터 AS기사 장연의씨(2014년 8월 1일자 계약만료 해고)가 서울 소공동에 있는 15미터 높이 전광판에 올라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강씨는 노조(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에서 조직부장을, 장씨는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에서 연대팀장을 맡고 있다. 거리의 칼바람이 여전한 때, 그들이 고공농성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더이상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6일 낮 현재 서울 소공동 서울중앙우체국 앞 전광판 아래에는 천여 명의 노동자가 모여 있다. 경찰은 불법집회라며 강제해산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진=미디어스)

6개월 넘게 진행한 교섭은 사실상 어그러졌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하도급업체들은 임금과 복지 그리고 산업안전 등 '비용' 부분에 있어 '원청이 내려보내는 도급비가 작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의 요구를 수용하긴 힘들단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재하도급 금지 요구에 대해서도 재하도급업체와의 관계 문제와 계약기간 때문에 즉각 중단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핵심이 엇갈리니, 교섭이 진전될 리 없는 상황이다. 두 회사의 협력사협의회는 모두 한국경영자총협회에 교섭을 위임하고, 사실상 통신 간접고용 문제에 있어 공동대응하고 있다. 한 업체의 최저조건을 다른 업체 노동조합과 협상에 제시하며 교섭을 저울질하는 구조다. 경총은 삼성전자서비스 하도급업체 노사교섭에서 사용자를 대리하고 있기도 하다. 삼성을 비롯, SK와 LG가 경총을 통한 공동 교섭 전략을 펴고 있는 셈이다.

희망연대노동조합 김하늬 위원장은 6일 고공농성장 아래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로는 교섭하겠다고 하지만, 몇 달 전 내놓은 교섭안을 똑같이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와 (교섭권을 위임받은) 경총은 기존에는 없는 성과급을 만들자고 하고, 다단계하도급을 금지하자고 했더니 안 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미디어스 <SK·LG·삼성·다산콜이 ‘경총’에 그 중요한 교섭을 맡기는 이유>)

▲ 6일 서울 한복판 명동 주변 전광판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한 강세웅 장연의씨 모습. (사진=미디어스)

노동조합은 고정급 중심의 월급제와 다단계하도급 즉각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김하늬 위원장은 “SK와 LG 노동자들은 간접고용 때문에 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불안에 떨며 근속 0년의 신입사원이 된다”며 “또 불법 재하도급으로 소사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체들은 소위 동기부여를 위해 ‘건바이건’의 변동급 신설과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총은 교섭 과정에서 고정급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고정급이 줄고 실적 위주 변동급이 늘어날수록 ‘조합원 일감 뺏기’와 ‘노동조합 무력화’는 수월해진다.

파업기간이 길어지며 설치·AS기사와 고객센터 상담원들의 형편은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섭을 질질 끄는 것은 ‘노조 무력화’ 목적이라는 게 노동조합 주장이다. 희망연대노조 관계자는 “사측은 ‘올해 상반기를 넘긴다’는 입장”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조합원들이 노조를 탈퇴해 현장에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진짜사장나와라 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두 회사 업체들의 체불임금과 다단계하도급을 지적하며 “매일 매시간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재벌과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총이야말로 ‘노조가 무너질 것’이라는 오판을 하고 있다”며 “LG 구본무 회장, SK 최태원 회장의 불법행위가 평소에는 얼굴만 봐도 싫은 경쟁회사 노동자들을 하나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연말 정규직과 비정규직, 해고자와 비해고자가 함께 싸운 씨앤앰처럼 SK와 LG가 함께 싸운다면 질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권영국 변호사는 “한국의 헌법은 새로운 사회적 신분을 만들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SK와 LG는 지금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만드는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승현 노동당 부대표는 “(이 싸움은) 일하며 개에 물려도, 비오는 날 전봇대에 떨어져도 산재조차 안 되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 기자회견에 참석한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는 지난해 11월 파업에 돌입했다. LG비정규직지부는 파업 6일 기준 81일차다. 서울 여의도 LG그룹 건물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지는 138일이 지났다. 닷새 전부터는 서울 한남동 구본부 회장 집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SKB비정규직지부는 파업 78일차,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T타워 앞 노숙농성 109일차를 맞았다.

희망연대노동조합은 “그동안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등 통신대기업들은 매년 무분별한 외주화와 다단계 하도급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이들의 착취를 통해 수조 원에서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려왔다”며 “이제 이러한 비정규직 양산을 통한 비인간적인 인력운용으로 돈벌이에 급급한 탐욕은 즉각 중단되어야 하며 현재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제공자이자 진짜 사장인 원청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희망연대노조는 이어 “만약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끝까지 외면한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윤리경영, 정도경영은 허울뿐이며 반사회적이고 무책임한 기업으로 결국 국민들의 질타와 외면을 받게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며 원청이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하고, 고공농성자와 파업 조합원들이 설 연휴 전에 가정과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 달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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