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가 위험하다. 정부 비판 영화에 대한 상영을 불허하는가 하면 예술영화 지원사업을 통폐합해 ‘미리 선정한 26편’에 대해서만 배급과 개봉을 지원하고, 영화제에 대한 사전심의도 강화할 계획이다. 독립·예술영화과 영화제에 대한 관리 수준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독립영화계에서는 정부로부터 독립성이 사라진 영진위가 그 동안 영화계의 성과를 무너뜨리고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우선 지원사업 통폐합. 영진위는 ‘예술영화로 인정되는 영화가 급증하고 있어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 26편을 선정하고 이 영화를 제작·배급하고 상영하는 것을 돕겠다’는 계획이다. 지원 대상도 독립예술영화전용관에서 지역 멀티플렉스까지 확대해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게 영진위 생각이다.

그러나 지역 전용관의 경우, 상영이 어려워 폐관하는 곳도 많다. 지난해 거제 아트시네마도 지원대상에서 탈락해 결국 문을 닫았다. 그렇지 않아도 독립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상황에서 영진위가 전용관 지원금을 지역 멀티플레스로 확대하면 전용관 사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한 독립영화 PD는 <미디어스>와 만나 “영진위는 콘텐츠 베이스로 지원하겠다고 건데, 결국 독립영화전용관을 죽이는 길로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독립예술영화 개봉 편수가 늘어나 지원금을 늘려야 할 상황이지만, 앞으로 전용관은 금요일과 토요일에 영진위 사전심사를 통과한 영화를 상영해야만 지금과 같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26편에 선정되지 못한 영화들은 관객을 만날 기회가 그만큼 적어진다. 극장의 편성권을 침해하는 조치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영진위가 26편의 영화를 고르는 행위 자체가 부적절할뿐더러, 그 기준조차 모호하다. <다이빙벨> 상영 불허 사례로 볼 때, 우경화한 영진위의 ‘자기검열’이 작동해 정부 비판 영화는 지원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영진위 개편안의 핵심이 된 연구용역 보고서 <예술영화 유통 활성화를 위한 예술영화전용관 운영 지원 사업 개선 방안 연구>에서 갈무리. (자료=미디어오늘.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영진위가 스스로 관리와 검열 주체가 되겠다는 의지는 ‘등급분류 면제 추천’ 강화 움직임에서도 나타난다. 그 동안 독립예술영화전용관과 다수의 영화제에서는 영진위의 ‘서류심사’만 통과하면 됐으나, 영진위는 서류심사와 심의를 강화하겠다는 것. 영진위 관계자는 <미디어스>에 “최근 홍보와 마케팅을 위해 이 제도를 오용하고 남용하는 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지난해부터 관련 규정 개정을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영진위가 ‘영화상영등급분류 면제 추천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영화제를 관리할 수 있다. 영진위 관계자는 “지금도 자동으로 면제 추천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위원장 아래 예술영화소위원회가 심사를 하고, 필요하면 영화제 규모와 프로그램을 고려해 현장실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관리 수준을 높이려는 영진위 움직임은 극장과 독립영화계에 대한 ‘검열’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선수를 쳤다. 최근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제가 영진위의 추천을 받지 못해 취소되기도 했다. 인디스페이스의 독립영화 기획전 <으랏차차 독립영화>에서도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등 3편의 영화가 상영되지 못했다. 모두 영진위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탓이다. 영진위 관계자는 “영화제 측에서 상영신고를 할 때, 등급이 없는 영화만 신고하고 나머지는 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신고한 것과 다른 상영스케줄을 올릴 경우가 있어 제재한 적은 있다”고 전했다.

영진위는 ‘검열’의 몸통이 되고 있다. ‘친박’ 서병수 부산시장은 부산국제영화제를 흔든 데 이어 박근혜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인 김세훈 영진위원장은 본격적으로 칼을 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이어진 ‘독립영화 척결’ 시나리오가 작동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독립영화 관계자는 “영진위가 독립영화 진흥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문화관광체육부와 기획재정부의 하위조직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진위는 “영화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한국영화 및 영화산업의 진흥”을 위해 1999년 설립됐다. 정부에서 예산은 받지만, 정책적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은 ‘분권자율기구’다. 이런 영진위가 오히려 독립영화에 대한 개입 수준을 높이는 것은 위원회의 설립 목적에 반한다. 제작, 배급, 개봉이 어려운 영화에 대한 지원을 늘려 영화 저변을 넓히는 게 영진위 역할이다. 경쟁과 효율의 논리, 그리고 선별 지원 원칙을 강화한다면 영진위는 기재부와 다를 바 없다. 역주행하는 영진위를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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