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방송’도 자신의 투자자가 누군지 따지지 않습니다. 지난 2008년 사모펀드 6곳은 ‘국민유선방송투자(KCI)’라는 회사를 활용해 업계 3위 종합유선방송사업자(케이블SO) 씨앤앰을 사들였습니다. 6곳 중 절반은 MBK파트너스가 GP 역할을 맡고 있고,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는 2곳, 미래에셋은 1곳입니다.

세 회사 모두 PEF입니다. 사전을 검색해보니 일반 사모펀드는 “소수 투자자들로부터 단순 투자 목적으로 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펀드로 주식형 사모펀드가 대표적”인데 비해 PEF는 “특정기업의 주식을 대량 인수해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기업 가치를 높여 되팔아 수익을 남기는 펀드”라고 합니다. 이들의 목적은 매각차익입니다.

씨앤앰은 내년이나 내후년 매각됩니다. 씨앤앰이 포함된 MBK펀드1호의 만료(2016년)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MBK와 맥쿼리 등이 씨앤앰을 사들인 2008년 당시 가격은 2조 원 가량이었습니다. 지금 가격은 얼마나 될까요.

케이블기업의 가치는 크게 ‘가입자수’와 ‘전망’으로 볼 수 있습니다. 2008년만 하더라도 가입자당 백만 원 정도였습니다. 2008년 3월 씨앤앰 가입자가 208만583명이었고 당시 MBK 등이 씨앤앰을 담보로 잡아 신한은행 등으로부터 빌린 돈을 합친 총 인수대금은 2조 원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럼 지금 가입자는 얼마나 될까요. 2014년 8월 242만7024명입니다. 2008년 3월에 비해 34만여 명 늘었습니다. 디지털 전환 성과도 뛰어납니다. 디지털가입자만 따지면 2008년 3월 29만7812명에서 2014년 8월 158만4628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실적도 나쁘지 않습니다. 2009년 4203억 원이던 매출액은 2013년 4973억 원으로, 영업이익은 806억 원에서 1098억 원으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씨앤앰을 산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업계 1, 2위인 CJ헬로비전과 티브로드에 ‘실탄’은 충분하고, IPTV사업자인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도 일부 영업지역을 전략적으로 구매할 수 있을 텐데 반응은 떨떠름합니다. 가입자당 가치도 떨어졌고, 전망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씨앤앰을 사들여 업계 순위를 높인다고 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업계는 결합상품 판매로 경쟁합니다. ‘방송’은 휴대전화나 인터넷의 부가상품입니다. 한국 유료방송시장을 지배하는 9인의 사업자(IPTV 3사, 케이블SO 5개사,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는 상품권과 위약금으로 ‘가입자 뺏기’에만 혈안입니다. 지금 씨앤앰을 사들인다 하더라도 언제 뺏길지 모릅니다.

광랜 빵빵 터지는 KT에 비해 케이블은 대부분 동축케이블망입니다. 케이블SO도 덩치가 엄청 나지만 IPTV 3사에 비해서는 초라합니다. 그래서 케이블SO 중 어느 누구도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지 않습니다. 한 케이블SO 관계자는 “결국 네트워크와 2개 플랫폼(IPTV와 위성)을 가진 KT가 업계 최강자가 될 것”이라며 “케이블에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더구나 케이블은 유일한 장점인 ‘지역’도 버렸습니다. 가입자를 지킬 ‘무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KT 같은 IPTV사업자가 시장을 쓸어 담는 동안, 케이블은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노력하지 않는 독점사업자’라는 오명도 뒤집어썼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가입자를 유지하고 있냐고요? 적은 규모의 케이블SO를 사들여 가입자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것으로 ‘매출’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이익’입니다. 하청과 직원을 쥐어짜기는 게 중요했습니다. 지인 이름 빌려 자기 돈으로 상품 가입하는 속칭 ‘자뻑’이 괜히 생긴 게 아닙니다. 멀쩡한 노동자를 꼬드겨 하청업체 차리라고 회유했습니다. “네가 일하는 만큼 가져갈 수 있다”면서 말이죠. 그리고 이 가짜 사장들은 다른 노동자에게 ‘소사장’을 하라고 권했습니다.

원청은 하청에 주기적으로 ‘영업목표’를 내립니다. 하청은 노동자와 소사장에게 이 숫자를 할당합니다. “실적 못 채우면 퇴근하지마”라는 말에 사무실 앞 편의점에서 시간을 때우는 노동자들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케이블 기사들이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일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적이 좋을수록 주머니는 두둑해집니다. 그러나 실적을 못 채우면 퇴근을 못하고 반성문을 써야 합니다.

물론 회사마다 사정이 다를 겁니다. 주주와 경영진이 푸시(push)하는 정도도 다르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씨앤앰은 어떨까요. 이 회사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사모펀드 6개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주간 단위로 영업실적을 보고받고, 셋톱박스 교체도 주주와 협의해야 하는 곳이 씨앤앰입니다. 그만큼 이 ‘투자자’들은 실적에 민감합니다. 씨앤앰을 되팔아 ‘이문’을 남겨야 하니까요.

2008년 MBK와 맥쿼리가 주도해 씨앤앰을 샀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되팔 겁니다. 그 동안 이자로만 수천억 원 썼는데, 최소한 2조5천억이나 2조6천억 원은 돼야 씨앤앰을 팔 수 있습니다. 만약 MBK와 맥쿼리, 그리고 미래에셋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한다면 앞으로 누가 이 회사 펀드에 투자할까요. 펀드 종료일이 다가오는 만큼 고민도 깊어졌을 겁니다.

가입자 1인의 가치는 떨어졌고, 케이블 업계 전망도 좋지 않는데 매각가가 높을 리 없습니다. 투자자는 손해를 볼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할까요. 경영진 압박해서 비용을 줄이라고 지시하지 않는다면 투자자의 이익에 반하는 것일 겁니다. 거기에 노동조합 리스크를 없애면 정말 좋겠죠. “노동조합 없애면 2천억 원 더 쳐 준다”는 말이 업계에 돌고 있는데 아닌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걸까요?

지난 7월부터 서울파이낸스센터 주변 거리에서 노숙농성을 하는 해고자들, 지난달 12일 전광판 위에 올라간 임정균 강성덕씨, 지난달 18일 파업을 시작한 씨앤앰 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 이렇게 얘기합니다. “투기자본 사모펀드 MBK와 맥쿼리가 매각가를 높이기 위해 노동조합을 없애기 위해 109명을 해고했다.” 노동조합이 ‘생떼’를 부리는 걸까요?

109명 원직복직, 매각 전후 구조조정 금지, 2014년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 위로금 지급. 이 4가지 요구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지난달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던 씨앤앰 경영진은 해고 업체를 설득하지 못했다며 “원직 복직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다릅니다. 업체들은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나”라고 합니다. 교섭은 ‘시간끌기’ 목적인 것 같습니다. 지금 생떼를 쓰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지난 16일로 고공농성 35일 강성덕, 임정균씨의 모습.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성탄절인 오늘은 고공농성 44일차입니다. 강성덕 임정균씨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됐다고 합니다. 20여 명이 단식에 들어간 지 나흘째입니다. 걱정입니다. 살기 위해 하늘에 오르고, 곡기를 끊었습니다.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그런데 씨앤앰은 여기저기 ‘가능성’을 흘리며 카드를 만지고 있다죠? 도대체 언제쯤 “인간적이고 도의적인” 모습을 보여줄 건가요.

민주노총과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부터 종교계와 사회운동단체들이 모두 씨앤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언론도 꾸준히 농성장을 찾습니다. 성탄절 전날인 24일에 우원식 은수미 의원이 크레인에 올라갔습니다. 노동자들의 가족들은 집이 아닌 농성장에서 성탄절을 맞았습니다. 남들은 모두 즐겁게 웃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시간에 씨앤앰 가족들은 울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씨앤앰, MBK, 맥쿼리 경영진 여러분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겁니다.

씨앤앰 사태를 하루 빨리 해결하길 바랍니다. 단언컨대 노사가 함께 살 수 있는 시점은 지금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공농성에 단식까지… 저는 이제 갑자기 걸려온 전화가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씨앤앰 경영진도 마찬가지겠죠. 부탁드립니다. 씨앤앰이 사람 목숨 값을 재는, 그런 나쁜 기업, 사라져야 할 기업은 아니지 않습니까. 씨앤앰에게도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MBK 측 관계자는 제게 “사모펀드와 GP의 역할에 대해 모르신다고 생각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MBK와 맥쿼리가 씨앤앰에 어느 정도로 개입하는지, 씨앤앰 정규직 노동조합과 간접고용 노동조합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조건’을 제시하는지, 그 투자자들은 도대체 누구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씨앤앰이 어떤 기업이 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는 것은 씨앤앰 노동자들이 정말 단단하게 뭉쳐 있다는 겁니다. 회사가 회유하고, 싸움이 길어지면 ‘이탈’한 사람이 남아 싸우는 사람보다 많아야 하는데 이 현장은 정반대입니다. 씨앤앰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손해를 보는 쪽은 투자자들일 겁니다. 명색이 사모펀드계 큰손으로 불리는 MBK와 맥쿼리가 투자자에게 마이너스 수익률을 선물하면 안 되겠죠.

저는 저대로 열심히 당신들을 쫓아다니겠습니다. 지금 제게 씨앤앰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사실이 나오는 ‘특종’ 현장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씨앤앰에 불 지른 투자자를 찾고 있습니다. MBK펀드1호에 과연 누가 돈을 부었는지, 맥쿼리와 미래에셋이 운용하는 펀드 투자자는 누구인지 추적하겠습니다. 누가 노동자의 피땀을 뽑아먹는지 말이죠.

마지막으로 아무 것도 몰랐던 노동자와 일개 기자들에게 ‘사모펀드란 무엇인지’ 몸으로 알려주고 있는 MBK와 맥쿼리에 성탄절 인사를 보냅니다. “블루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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