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서울시 서울시민인권헌장 논란은 한국사회에 많은 의미를 던졌다. 보수기독세력이 민주주의의 공론장에 등장해 동성애 혐오발언을 해도 괜찮았고, 이는 향후 이들의 행위가 더욱 극렬해질 가능성을 제시했다. 반면, 한국사회 성소수자들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개념으로 소외되는 좌절감에 빠져야 했다. 인권헌장의 제정 과정에서 나타난 비민주·반인권 행태는 둘째 치고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박원순 시장의 발언은 그 자체로 큰 파문을 낳았다.

박원순 시장이 일련의 과정에 대해 사과 아닌 사과를 하면서 농성은 일단락됐지만, 이번 사건은 끝난 게 아니다. ‘유력’ 대선후보인 박원순 시장은 정치인으로서 시험대에 올라있다. <미디어스>는 지난 16일 서울시 인권헌장 사태 그리고 박원순 시장을 놓고 좌담회를 가졌다. 이날 좌담은 김완 편집장의 사회로 인권헌장 제정 당시 시민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종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과 무지개농성단 기획단에 참여했던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가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패널들은 △서울시청 농성이 가지는 의미, △박원순 서울시장의 패착, △인권을 제도화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가치, △동성애 혐오세력과 정치세력과의 결탁의 문제 등 다양한 부분에서 함께 의견을 나눴다.

▲ 12월 16일 오후2시 레드북스에서 서울시 인권헌장 사태 그리고 박원순 시장을 놓고 좌담회를 가졌다ⓒ미디어스

“유럽에서 ‘동성애 지지 하지 않아’ 발언 정치인은 그냥 아웃”

김완 편집장(이하 김완) : 공공기관을 점거한다는 건 누가 하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웃음) 여전히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우리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서울시청을 점거했다. 농성에 참여했던 분들 입장에서 ‘이번 농성이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이었느냐’는 이야기부터 해봐야 할 것 같다.

이종걸 사무국장(이하 이종걸) :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은 안 된다는 것, 그것이 인권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성소수자들의 시민적 존재와 연결이 됐던 것 같다. 박원순 시장이 사과하면서도 이 부분(동성애차별 금지)을 명확하지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성공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미흡한 상황이지만 농성을 통해 그 지점부터 다시 싸움을 시작하면 되겠단 자신감을 얻었다. 사실 명분 있는 싸움이었기 때문에 겁은 없었다. 박원순 시장에 분노한 이들이 장을 열면 올 것이라고 믿었다. 농성을 통해 성소수자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부분이 맞아 떨어졌다고 본다.

▲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미디어스

명숙 활동가(이하 명숙) : 대외적으로 말고, 무지개 농성단 기획회의를 할 때 무엇을 목표로 삼을 것이냐고 했을 때 2가지였다. 하나는 우리도 밟히면 꿈틀거릴 수 있다는 분노를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선출직 공무원이 공공연한 자리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경고가 필요하다고 봤다. 다른 하나는 성소수자들도 인권의 주체임을 드러내며 힘을 모으는 것이었다. 인권헌장 선포 등 공식적으로 내세운 요구안 4가지를 다 이뤄내진 못했지만 당초 목표를 어느 정도는 달성했다고 본다. 그리고 농성장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의 힘을 확인했던 것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이번 농성을 보면서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하면서 지하철에 쇠사슬을 묶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장애인도 인간이다. 이동할 권리가 있다던 그 상징적 싸움만큼 이번 농성의 의미도 각별하단 생각이다. 2014년 대한민국의 인구 1/4가 사는 서울, 그 중심인 서울시청을 점거하면서 성소수자들의 존재감과 힘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시민사회 단체들이 힘을 보태줬다.

김완 : 서울시민 인권헌장 공청회에서 벌어진 폭력사태 때에만 하더라도 박원순 서울시의 미흡한 행정처리 차원과 ‘정치적 곤란함’의 문제였다. 그런데 ‘동성애를 지지 하지 않는다’는 박원순 시장의 발언은 정치인 박원순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보여줬던 촉발점이 된 것 같다.

이종걸 : 박원순 시장이 누구한테 머리를 조아리며 이야기를 했느냐가 중요했다. 성소수자들의 면담은 받아주지 않으면서 그 사람들 앞에 가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 발언은 충격적이었고, 분노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워딩도 이상했다. <기독신문>을 보면 ‘트렌스젠더는 존중하지만 동성애는 지지 하지 않는다’라고 돼 있는데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는 얘기다.

명숙 : 박원순 시장의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인권헌장의 왜 폐기됐는지가 명확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서울시는 겉으로는 인권헌장 채택이 ‘만장일치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고 사실은 성소수자 인권을 차별해야 한다는 세력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유럽에서는 그런 발언을 하는 정치인은 그냥 아웃되는 건데….

김완 : 인권헌장 제정을 계획할 때부터 동성애 혐오세력들의 반대는 노정돼 있었던 것이었다. 서울시가 이를 너무 편의적으로 생각했단 생각도 든다.

▲ 이종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미디어스

이종걸 :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로서 시민위원으로 참여를 했다. 처음 서울시 인권위가 끌고 가면서 위촉장을 받을 때까지는 ‘분위기는 좋은데 원하는 만큼 잘 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다. 시민위원 150명이 각 지역과 연령별, 성별로 나눠지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과학적 구조로 보이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다. 서로 간 잘 모르고 소통할 계기가 부족하다보니 이 사람들과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보니 처음 인권에 대해 이야기 나온 것은 거주자 주차 문제나 층간소음 등 민원성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인권으로서 소수자 문제는 ‘왜 우리가 그들의 인권을 보장해줘야 하느냐’는 식의 편협한 시각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안경환 위원장이 ‘인권교육’을 해주기도 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또, 150명 안에 동성애 혐오세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혐오나 성폭력적 발언을 제지하면 그들은 ‘나도 인권이 있는데 말할 권리가 있다’, ‘왜 내 의견을 묵살하느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서울시 인권헌장에서 성소수자 차별은 인권으로서 꼭 지키고 가야 한다는 것을 담보하지 않았다면 인권헌장 제정은 처음부터 시작하면 안됐던 것이다.

“‘인권도시’라는 브랜드만 정치적으로 취하려…그들에게 인권은 ‘장식’일 뿐”

김완 : 인권을 섣불리 제도화하거나 규범화하는 것의 위험성은 그래서 계속 지적되어 왔다. 이번 파동에서도 드러났듯이 ‘합의’를 통해 인권을 논하기 시작하면, 더 낮은 수준으로의 하향적 사고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종걸 : 답답하다.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차별금지를 명확히 담고 있다. UN 등 한국이 가입돼 있거나 비준한 규약들을 또한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정부차원에서 그에 따른 인권교육을 하지 않는 데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보니 국민들은 자신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보고 그 안에서 소수자들은 배제된다. 이번 사건처럼 ‘인권도시’라는 브랜드성만 정치적으로 취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명숙 : 맞다. 정치인들에게 인권은 그냥 ‘장식’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인권의 제도화는 섣부르게 하면 안 되는 게 맞다. 이종걸 사무국장도 이야기했듯 지방정부가 인권을 제도화하려 한다면 분명한 의지가 필요하다. 인권교육을 담보하는 예산과 인력을 다 보여줬을 때에나 가능한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은 당초 서울시 인권헌장 제정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공청회에서 혐오세력이 폭력적인 발언을 하면서 인권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을 보고 대응 차원에서 농성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만일, 이번 사건을 그냥 넘어간다면 소수자·약자들은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인권헌장 제정 과정에서 동성애 차별 조항과 관련해 혐오자들의 논리 중 하나는 ‘소수를 위해서 다수가 희생해야하느냐’라는 것이 있었다. 그를 통해 일반 시민들이 ‘맞는 말 같다’라고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인권을 제도화 하려한 서울시가 잘못한 게 많다. 이번 인권헌장 제정 과정도 그랬지만 사실은 <서울시인권기본조례> 제정 때부터 문제였다. 조례에서 차별 금지사유가 명시됐다면 이번에 이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현재 <서울시인권기본조례> 제6조는 “모든 시민은 인권을 존중받으며, 헌법과 국가인권위원회 법 등 관계 법령에서 금지하는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추상적으로 규정됐다)그러다보니 ‘차별금지’가 명시되면 문제없지 않느냐는 주장들이 나온 이유이다. 그런데, 인권이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명시되는 게 매우 중요하다.

▲ 미디어스 김완 편집장ⓒ미디어스

김완 : <한겨레>에 동성애 혐오 광고를 게재한 광주 지역의 보수기독교 세력들은 ‘보편적 인권’이 아닌 ‘표준인권’ 개념을 가져왔다. 한국사회에 맞는 표준인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인권헌장을 둘러싼 논쟁이 전국적이 되면 이 기괴한 명명이 상당히 치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

명숙 : 인권에 표준이라는 건 없다. ‘표준’이라는 말은 특정한 기준을 만든다는 뜻이다. 그 기준에 어긋나면 배제해도 된다는 뜻이지 않나. 인권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이라는 보편성이다. 인권과 표준은 만날 수 없는 개념일 뿐 아니라, 말 자체에 모순이다. 어떻게 인권에 그런 말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나라 인권 인식이 그만큼 후퇴하고 있다는 뜻인 것 같다.

김완 : 지역마다 다른 경험들을 갖고 있다. 예컨대, 광주지역이라는 특수성도 그 광고에선 엿보인다.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보니 ‘우리도 인권 잘 안다. 그런데 동성애는 안 된다’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명숙 : 이란의 여성 인권을 다룬 영화에 자전거를 타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란에서 여성들은 자전거를 못 타게 했다. 그 이유는 처녀막이 터진다거나 자위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싶어 하니 나라에서 여성들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구역을 따로 정해줬다. 이러한 차별은 ‘이슬람국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라고 볼 수 있는 문제인가. 아니다. 명백한 여성인권 침해 현실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말할 수 없고 인권이 아니라고 한다면 세상에 여러 형태로 인권이 동등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이 같은 얘기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왜 이슬람과 비교하느냐’라고 불편해한다. 그런데, 이미 자기들이 그 같은 짓을 하고 있지 않나. 인권에 예외를 만드는 순간 그것은 보편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이종걸 : 그건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의 문제다. 결코, 지역성으로 따져서는 안 된다.

“정치세력이 동성애 혐오와 결합된 양상으로 세력화되고 있다”

명숙 : 인권헌장은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서 지방자치가 잘 되고 있느냐. 잘 되고 있지 않다. 그러니 ‘표준인권’이니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해야하느냐’는 말도 안 되는 논리들이 먹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것들이 먹히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하나. 그건 이종걸 사무처장이 이야기한 대로 인권교육을 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교육지원법>을 추진했는데 관련 법안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했다가 극우세력의 공격에 의해 철회했다. 그들은 동성애 혐오를 조장할 뿐 아니라 그것은 매개로 사회를 정치적 극우로 조직화하고 있다. 서울시 인권헌장을 폐기하라는 단체명을 봤나. 극우 기독세력만 있는 게 아니다. 세월호 유족을 비난했던 엄마부대 등이 포함됐다. 많은 보수 단체들이 안행부로부터 매년 4000~8000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는 보수단체들도 함께 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박원순 시장을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이 꽤 있다는 말이다. 그 같은 정치적 목적이 동성애 혐오와 결합된 것이다. 그렇다면 박원순 시장은 그 같은 공격을 인권의 원칙을 가지고 맞불을 놓고 싸웠어야했다.

명숙 : 박원순 시장을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세력들이 동성애 문제에 결합한 이유는 간단하다. 동성애라는 것이 교육이 안 돼 있다 보니 ‘변태’나 ‘에이즈’ 등과 연관시키는 편견이 많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 등 특정 정당을 지지 하지 않지만 동성애라는 편견을 부추겨서 그것을 기준으로 정치적 지지를 조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프레임으로 ‘이 당은 아니겠네’라는 흐름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 같은 상황에서 잘 판단했어야 한다. 혐오세력과 정치 세력과의 결탁을 떼는 것은 ‘인권’밖에 없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 이번 사태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 박원순 시장의 패착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그 같은 패착으로 소수자 인권은 점점 뒤로 후퇴할 수밖에 없고 서민들은 더욱 살기 어렵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완 : 인권과 정치의 논리가 결합돼 있다면 정치인들에게는 ‘표 계산’이 더욱 중요해지는 게 아니냐.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누가 우리를 지지할 것이며 잃는 표는 얼마인가 이렇게 말이다. 그래서 이번 농성이 더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닐지. 반대하는 세력은 가시적인데 성소수자, 인권을 원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농성을 통해 위력을 보이니, 선출직 정치인들의 머리가 복잡해졌을 것이라고 본다.

이종걸 : 박원순 시장이 그 사람들(동성애 혐오+정치적 공격세력)에게 사과한다고 해서 그들이 표를 줄까. 아니다. 정치적으로 이미 그들은 박원순 시장 지지자드링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시장은 성소수자 단체들을 만나주지 않았다. 그 시점에서 인권단체들은 서울시청 농성을 통해 ‘박원순, 당신이 챙겨주지 않는다면 우린 돌아설 것’이라고 정면으로 이야기한 것이 됐다. 무엇보다 박원순 시장의 기반이기도 한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만들어 준 것에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김완 : 서울시가 인권헌장 말고도 많은 행정을 하고 있는데 그게 제일 중요한 것이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게 얼마나 중요하다고 ‘너희 편 시장을 만신창이로 만드느냐’는 공격이다. 또, 박원순 시장을 지지하는 시민사회 그룹도 있다. 그들은 현재 한국사회 시민운동의 주류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이종걸 : 인권운동의 차원에서 이야기하면 원칙이 핵심이다. 보편적 인권을 하지 않고 어떻게 ‘인권’을 논할 수 있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하는 것이다. 인권헌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권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그 속에서 소수자들이 배제된다면 인권을 더 이야기하면 안 된다. 박원순 지지자들의 공격으로 어려움은 없었다. 그들에게 ‘왜 박원순을 지지하세요’라고 물으면 답을 하지 못한다. 단순히 ‘이 사람밖에는 대안이 없다’는 인식뿐이다. 그것은 매우 약한 고리이다. 그에 반해 우리가 박원순 시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결국, 명분 있는 싸움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명숙 : ‘너희 편인데…’라는 진영논리는 사물의 진실을 제대로 못 보게 만든다. 박원순 시장의 태도에 대해 진영논리로만 접근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성소수자들에 대해서 ‘지지하지 않는다’라는 등의 발언을 한 적이 없다. 그 같은 발언을 하는 순간 정치적 손해를 입기 때문이다. 선출직 공무원의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얘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통칭 ‘민주세력’ 내 인사가 ‘동성애를 지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그래서 인권의 관점과 현실 정치가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득표계산만 따지는 좁은 의미의 현실 정치는 인권을 담을 수 없다. 이번 사건 이후, 페북에 ‘노무현이 노동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이 되더니 노동을 버린 것처럼 인권 시민 활동가 출신 박원순이 시장이 되더니 시민과 인권을 버렸다’는 글이 올라왔다. 생각해보면, 인권헌장은 180명이 만든 것을 한 명이 폐기해버린 것이다. 매우 반민주적 행태였다. 현실정치에서 권력을 가지면 소수자 인권은 배제되는가. 이 물음에 답을 준 게 인권헌장 제정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권의 원칙을 저버리면 당신을 지지할 수 없어’라고 이야기하는데 박원순 시장 지지 세력들은 ‘그래도 박근혜는 싫어’ 논리밖에 없었다. ‘야권 유력 대선후보가 박원순이니’, ‘한번 실수한 걸 가지고’라고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진짜 실수라면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반복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반대해야하는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김완 : 박원순 시장은 이제 정치적으로 큰 꿈을 꾸어도 될만큼 성장했고,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 가운데 한명이다. 그런 차원에서 자기가 과거 시민운동가로서 인권활동가로서 주장했었던 것들을 보다 대중적인 접점에서 어떤 스탠스로 취해 가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이 단순히 실수를 한 것이냐 혹은 구조적인 실패인 것이냐를 논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과거, 노무현에 대한 기대감이 꽤 컸는데 실패로 끝났다. 정치인 박원순은 어떨 것이냐의 문제다.

명숙 : 그 부분에서 큰 역할을 성소수자인권운동이 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반 인권단체들이 미안한 부분이기도 한데, 작년에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박원순 시장이 “우리나라가 70~80년대 군사 독재에서 벗어나면서 기능이 많이 바뀌었다. 이 때문에 과거처럼 반드시 폐지되거나 개정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발언했을 때 강하게 비판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박원순 시장은 그때에도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 사건에서 선긋기를 하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생각된다. 당시 인권단체들이 공식적으로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면 박원순 시장 또한 성찰할 기회가 됐을 텐데.

이종걸 : 박원순 시장이 정치지도자로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가치관이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있도록)더 보여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행정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인으로서만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표만 생각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그것이 스스로에게 패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숙 : 박원순 시장 뿐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이 그 부분에서 계속 패착을 보이고 있다. 도대체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만년 제1야당이라고 하지 않느냐. 어떤 이들에게 지지를 받을 것인지 여전히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박근혜·새누리당보다는 나으니까’가 비전인가라는 오명까지 듣는 게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삶이 너무 지치고 어려우니 그들에게 표를 주고 제1야당으로 존속시켜주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 무지개농성단은 지난 11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면담에 응했고 ‘1월’이라는 시기를 정해 면담을 이어간다는 후속 계획이 나오면서 해단했다ⓒ미디어스

“박원순은 이미 정치적 중도 이미지를 가질 수 없는 사람”

김완 : 새정치민주연합의 최근 행보도 그렇고 박원순 시장 역시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갈등적인 부분들을 피해, 생활적인 중도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지지 50% 게임룰’에 갇혀 있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그 룰에 그 역시 갇혀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국가보안법> 관련 발언 역시 자신이 걸어온 삶과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갈등이 노출된 것이었다고 본다. 이것은 대선 때까지 갈 수밖에 없는 그의 딜레마다. 주류를 포용하기 위한 논리에 말려 이번 인권헌장 부분도 성소수자 문제를 피해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종걸 : 이번 싸움이 그래서 곤란했다. 성소수자 문제나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그래도 박원순이 (생활적인)시정은 잘했지’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같은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박원순 시장을 지지했던 사람들과 겹치기도 하지만 겹치지 않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농성이 의미가 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생활적인 부분을 포함해)어떤 시정이든 어떤 원칙을 가지고 할 것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본다. ‘그거 하나 실수한 것 같다’고가 아닌 것이다.

명숙 : 개인적 바람인데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 등의 발언을 하는 사람은 대선후보가 될 수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미국은 동성애가 허용되는 주가 있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매우 보수적 사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대통령 오바마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고 그로 인해 소수자들이 많은 표를 그에게 던졌다. 박원순 시장은 그 같은 정확한 타깃팅이 없다. 그러니 박원순 시장이 안철수 전략을 써서 망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닌가. 박원순 시장은 이미 (그가 살아온 궤적을 놓고 봤을 때)중도 이미지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자기의 가치관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미래 발전된 사회 비전을 보여줘야 승산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소수자 차별을 반대하는 인권 및 시민사회단체들은 집토끼라고 생각하고 산토끼를 잡으러 가겠다고 하니 답답하다.

김완 : 인터넷 여론도 중요해 보인다. 최근 ‘개존취’라는 인터넷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개인취향존중이니까 그만 얘기하자는 뜻이다. 동성애 등 혐오발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건 너의 시각이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로 대화를 끝낸다. 그럴 경우, 성소수자 인권이 관찰자들을 그 속에 가둘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되기도 한다.

이종걸 : 우리나라가 혐오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감수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누군가에게 ‘당신은 혐오자다’라고 지목당하면 ‘내가 언제 그랬어?’라고 이야기를 한다. 자기반성을 하지 않는 것이다. 또, 혐오 발언을 하는 것 또한 폭력이 아니라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서울시가 서울시민 인권헌장 공청회에서 그 같은 모습을 보여줬듯이 말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차별당하는 소수자들은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정부나 언론이 소수자가 존재하고 있고 그것은 인권의 문제라는 명확한 입장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혐오세력들이 집회를 하고 항의를 하고 신문에 전면광고를 한다. 언론도 그들의 이야기를 의견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혐오세력이 고립될 수 있을텐데 현재는 그렇지 못한 채 그들의 세가 커지고 있다. 그러면서 더 복잡한 문제(정치와 결합되면서)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명숙 : 정말 차별에 대한 감수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몰이해가 심각하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고 싸움이 필요하다. 여성운동의 역사를 보면, 성희롱과 성폭력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팔을 잠깐 만진 게 무슨 성희롱이냐’는 이야기는 이제는 나오지 않지 않느냐. 사무실에서 포르노를 보는 것은 성희롱으로 인식된다. 그 과정을 보면 법제화되고 성교육 예방 등 교육이 꾸준히 이뤄져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혐오에 대해 우리의 인식과 규범이 없다 보니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발언을 하고도 오히려 ‘왜 나를 가해자 취급해?’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갈 길이 멀다.

김완 : 한국사회는 지금 황선·신은미 토크 콘서트를 대통령까지 나서 ‘종북 콘서트’로 규정하고, 폭탄테러를 실행한 고등학생을 의인화하고 후원금을 모아주는 형편이다. 혐오가 직접적인 폭력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각성은 부족해 보인다.

명숙 : 정치적 입장이 어찌되었건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하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폭력은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물리적 폭력에 의한 정치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최근 소위 종북 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에 달하고 있습니다. 몇 번의 북한 방문 경험이 있는 일부 인사들이 북한 주민들의 처참한 생활상이나 인권침해 등에 눈을 감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서울시청 점거농성은 성소수자 싸움이지만 이제 우리가 해야될 건 혐오의 정치와 맞서는 싸움일 것이다. 이제 혐오세력과의 싸움이 본격화되어야 우리 사회의 우경화를 막을 수 있다. 그들의 폭력을 그대로 두면 동성애자나 이주민, 노숙인 등 소수자들이 더욱 숨을 수밖에 없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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