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과 16일 양일간 진행된 국회의 ‘긴급 현안질의’는 새누리당의 앙상한 현주소를 드러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정윤회 문건’과 비선 국정 농단 의혹에 대한 발언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질의를 서로 미루기까지 했으나, 막상 질의를 한 이들도 수준 이하의 모습을 드러냈다.

일단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의 9일 오전 당 원내대책회의 발언부터가 코메디다.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당시 "15~16 양일간 긴급 현안질의가 있다. 우리 당에서 5명, 야당에서 5명 총 10분의 의원님이 질의를 하게 됐다”라면서, “아직까지 한 분도 신청하지 않았다. 만약 끝내 신청이 없을 경우, 그 동안 의정활동을 잘 하신 의원님들 위주로 강제로 배정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옆에 있던 이완구 원내대표 역시 "강제 배분은 각 위원회 간사와 원내 부대표단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프레시안>은 9일 관련 기사에서 “정치판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웃할 장면”이라고 개탄했다. 대중사회의 정치인은 TV에 한 장면이라도 더 비치고 신문에 한 줄이라도 더 나오려고 안달복달하는 존재인데 대통령 눈치 보느라 TV에 나올 기회도 마다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결국 9일 오후 결정된 10명의 질의자는 친박계 초재선, 야당 저격수, 당직자 등으로 채워졌다. 이렇게 현안질의를 서로서로 미루던 새누리당은, 현안질의 현장에서 또 한 번 놀랄 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미루고 미루다 간신히 차출된 이들이 ‘새가슴’ 새누리당에서 비교적 ‘큰 가슴’을 지닌 이들이 아니라, ‘낯짝’이 두꺼운 이들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15일 질의자로 나선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정윤회 사건을 접하면서 '야당, 또 거짓 선동 시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세계일보>가 폭로한 사안을 야당의 선동으로 막무가내로 우기더니, 질의 시간 후반부엔 긴급현인질문 주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황선·신은미 토크콘서트'를 언급하면서 "대한민국은 '종북 콘서트'로 떠들썩하다.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하는 '종북녀'들이 전국을 돌면서 민심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했다. 시간이 모자라니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종북세력’을 흠집내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어서 김진태 의원은 "종북 콘서트에 새정치연합 임모 의원이 참석했다", "홍모 의원은 신은미를 초청해 토론회를 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행사를 취소했다"고 하는 등 야당 의원들을 역공하더니 "(정부는) 오히려 전북 익산에서 이들에게 사제폭발물을 던진 고3 학생을 구속했다. 종북주의자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이를 보다 못한 우국 청년에 대해서는 일사천리로 법을 집행하는 것이 과연 정상이냐"라며 백색테러를 ‘우국’ 행위로 옹호하기까지 했다.
▲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대전 동구)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제330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현안 질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시 15일 질의자로 나선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과 김태흠 의원 등은 문건 정국을 ‘찌라시 유출’로 규정하고 ‘민주정부 10년’을 비방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장우 의원은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이 비리로 구속되는 진기록이 있었는데, 당시 비서실장이 누구냐"며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을 겨냥했다. 이어서 이 의원은 참여정부 당시의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최도술 총무비서관을 언급하며 "국정 농단이라면 이 실장, 최 비서관처럼 대선자금 수수로 사법 처리되는 상황이 국정농단"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의원은 황선·신은미 씨의 토크콘서트 관련 수사에 대해 황교안 법무장관에게 질의하며 "법무장관 뭐하고 있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새정치연합은 황선·신은미를 옹호하는 정당인가"라고 새정치연합에 대한 색깔론도 폈다
김태흠 의원 역시 "노무현 정부의 이광재·노건평처럼 돈을 받고 인사에 개입한 것이 국정 농단"이라며 참여정부를 공격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이와 같은 반응은 말 그대로 ‘생억지’다. 과거 정권들의 국정농단 사례들은 수사에 의해 드러난 만큼 처벌받았다. 지금의 국정농단 의혹은 말 그대로 의혹이 제기되었기에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따져보자고 하는데 과거의 사례를 들이미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 처벌받은 상황을 예시로 들이밀면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다는 얘기는 성립할 수가 없다. 하다 못해 문민정부나 이명박 정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예시로 드는 것 역시 고약한 일이다.
▲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충남 보령.서천)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제330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현안 질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 의원들이 몸을 사리거나 철판을 까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여에도 야에도 그 지지율을 흡수할 수 있는 주자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이번 파문으로 흠집이 났지만 ‘권력의 진공상태’에서 여전히 굳건하다. 그렇기에 새누리당 의원들은 무리한 얘기를 들이밀고 쓸데없는 종북 몰이로 시간을 때워서라도 대통령과 청와대 비판을 피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야말로 보수언론이 우려하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 청와대가 ‘십상시’가 들어찬 곳으로 사람들이 인지하기 시작한 가운데, 새누리당은 이에 대해 최소한의 긴장관계를 유지하지는 못할지언정 ‘십상시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꼴이다. 당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카리스마가 강하니 청와대든 내각이든 여당이든 옴짝달싹을 못 하지만, 결과적으론 5년 단임제 국가에서 중량감 있는 정치인의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를 만들게 된다.
이는 당장 박근혜 정부의 통치에는 편한 구석이 있을지 모르나, 보수세력의 미래를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훗날 새누리당 진영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 시기를 ‘잃어버린 5년’이라 부른다고 해도 놀랄 일이 없다. 박근혜 정부는 당선 후의 허송세월도 문제지만, 보수세력이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관리하는 능력 자체를 심각하게 후퇴시키고 있다. 이런 식으로라면 설령 보수세력이 국가를 계속해서 점유하더라도 필시 사회의 위기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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