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파리를 중심으로 프랑스 전역에 흩어져 살고있는 한인들의 커뮤니티 파리꼬빵(Paris Copain)입니다. 지난해 박근혜 씨가 파리를 방문하였을 때, 에펠탑에서 그가 대한민국의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님을 알리는 집회를 시작으로, 지난 5월 1일 노동절에는 세월호 참사가 사고가 아닌 정권의 학살이었음을 프랑스 사회에 알렸고, 세월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그 배의 실질적 주인이 유병언임이 밝혀진 이후에도 그의 사진전을 강행하려는 몇몇 프랑스 문화기관장들과 문화부 장관에게 이를 항의하는 공개편지를 보내 아해(유병언)의 전시들이 취소되게 하기도 했습니다.

저희는 차기대선의 유력한 주자이며, 동시에 작금의 암울한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인 박원순 서울시장의 파행적인 일련의 행동에 대한 소식을 접하며, 그가 저지른 실수들이 얼마나 큰 실망을 주는 행동인지, 그가 접어들기 시작한 소위 정치인 박원순의 길은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된 것인지를 알리기 위해 박원순 시장에게 멀리서 공개편지를 보냅니다.

안녕하셔요 박원순 시장님. 저희는 프랑스에 사는 한국사람들입니다.

서울시민도 아니면서, 주제넘게 서울시 일까지 간섭이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서울과는 동떨어진 이곳 프랑스에서 잠시, 혹은 앞으로도 오래 머물지 모르는 이방인들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을 잠시도 잊을 수 없는 한국인들이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유권자들이기도 합니다. 세월호에서 어린 생명들이 영문을 모르고 죽어갈 때 우린 같이 울음을 삼켰고, 거리에 나서서 국가가 벌인 이 학살을 세상에 알렸으며, 오직 진실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이 단식에 나설 때 이에 동참하기도 하였습니다. 최악의 상황으로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해 가는 한국의 사회의 현실을 목격하며, 저희도 무거운 돌 하나 가슴 한 켠에 얹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 사람들이 갖는 유일한 희망. 그나마 사람들이 간신히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숨 쉴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박원순이라는 선장이 대한민국호의 키를 쥘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지금 과거형의 동사를 썼다는 사실을 감지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 희망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말할 수 없는 국면에 갑자기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박원순의 급변침을 목격하였습니다.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로 살아왔던 박원순은 자신의 위치가 정치인으로 바뀌었다고 선언하면서, 스스로가 도모하려 했던 인권헌장을 포기하였습니다. “서울시장으로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하였으며, 그 과정은 극우 기독교단체들의 압력에 대한 순수한 투항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였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20조는 정치가 종교와 분리될 것을 분명히 합니다. 특정 종교단체의 협박에 위정자가 굴복하는 것은, 명백히 헌법을 위배하는 일이며, 한국사회를 심각하게 분열시키기 시작한 특정종교의 횡포로부터 시민들을 지켜주는 것 또한 서울시장이 수행해야할 중요한 임무라는 사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서울시청을 점거했던 무지개 농성단 (사진=미디어스)

새삼 말씀드리지만, 성소수자는 누가 지지하건 지지하지 않건, 우리 사회에 버젓이 존재합니다. 문제는 이성애자가 다수라는 이유로 성소수자들이 차별받아서는 아니 된다는, 너무나도 명백한 <평등의 원칙>이 지켜지느냐 여부겠지요. 역사 앞에 당당한 그 어떤 지도자도 평등의 원칙을 천명하기 위해 소수 압력단체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그런 자가 있다면, 그는 바른 지도자가 아니라 표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세상에 널린 정치인일 뿐입니다.

3년 전 프랑스의 중고등학교 생물교과서는, 인간은 생물학적인 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자라면서 자신의 사회적인 성인 젠더를 선택할 수 있다고 명시하며, 성소수자의 존재를 명백히 사회에 존재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에 감히 이의를 제기한 건 극우카톨릭주의자들이었죠. 그러나, 심지어 사르코지 정부 하에 있던 관료들과 교과서 편찬을 담당한 학계에서는 그들의 반발을 가볍게 일축합니다. 일고의 가치가 없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박원순의 사회의식은 결국, 극성맞은 우파로 간주되는 사르코지 정부의 의식보다도 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이 충격적인 사건에 이어 우리는 또 다시 믿기 어려운 박원순의 발언을 접합니다. 끊임없는 말썽의 진원인 서울시향에 관해섭니다. 시장의 역할은 서울시민 모두의 이해를 대변하여, 공정한 행정을 펴는 일입니다. 직원들에 대한 부적절한 언행으로 논란을 일으킨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와 전례없는 특혜를 누려와 자주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정명훈 지휘자 사이에 폭로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갈등이 생기면 그 갈등을 푸는 것이 시장님의 역할이고, 그 갈등의 해결에서 기준이 되어야 할 부분은 법과 원칙입니다. 그런데 박시장님은, 이 논란의 한가운데서 “정명훈을 배제하면 서울시향에 어떤 대안이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박시장께서,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전제를 갖고 있다는 사실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될 잣대가 평등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아닐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장님이 드러내신 주관성은 전 서울시장들이 가졌던 그것과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연합뉴스

냉정하게 현실을 들여다볼까요. 정명훈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자신의 정치적 장식물로 사용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치르며 끌어온 인물입니다. 오세훈 전시장도, 안상수 전 인천시장도 정명훈 일가를 끌어들여 그들이 걸치고 있는 세계적 명성이란 휘장 옆에 서고 싶어 했습니다. 물론 거기에 사용된 돈은 시민들이 낸 세금이었죠. 이들이 시민들의 예술향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정치인들이었다면, 같은 시간, 국립오페라 합창단을 비롯한 국공립 예술단체들이 예산 절감이라는 이유로 하나 둘 사라지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배경에서 정명훈에겐 처음부터 특권이 주어졌고, 그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지금까지도 처음의 이유가 유효하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영하의 추위 속에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은 70m의 굴뚝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목숨을 내걸고 싸우거나, 힘센 자의 발 아래 엎드리거나, 그도 아니면 차가워진 냉소로 마음을 문을 닫아걸고 돌아서는 것. 이 세 가지가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원칙이 지켜지는 모습,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아득합니다. 목숨 걸고 몸부림치지 않아도, 반듯한 정의, 보편적 상식이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기대하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사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일부 이성과 상식을 상실한 종교단체의 압력에 굴복하여 인권에 대한 원칙을 저버리는 모습, 세계적 지명도를 자랑하는 예술가의 명성 앞에서 원칙을 잠시 접고 고개 숙이는 모습을 우리는 정치인 박원순에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의 실패는 그의 지지자들을 배신하는 행보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이명박근혜 시대를 열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한국현대사에서 불행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시장님이 저지른, 그리고 저지르고 있는 실수들, 되풀이하지 않길 부탁드립니다. 당신이 성소수자단체 앞에서 했던 사과가 구체적 내용으로 실천될 것을, 지켜지지 않는 원칙 때문에 논란을 일으켜온 서울시향이 시민들의 믿음을 회복할 수 있는 조치가 이뤄지기를 당부 드립니다. 시민운동가 시절, 당신이 알고 있던 상식들, 가치들이 시정에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 그것이 지난 세월에 유린되어 왔던 모두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 서울시민들이 박원순에게 부여한 사명입니다.

2014.12.16

재불한인 대안커뮤니티 파리꼬빵 Paris Co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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