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재미교포 신은미씨의 북한 여행담이란 것도 지나치게 순진무구하거나 어떤 의미에서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이십 년 전인 원로문인 황석영의 <사람이 살고 있었네>(1993) 때에나 의미가 있었던 감수성이다. 그사이 북한에선 김일성이 죽었고, ‘고난의 행군’을 지나쳤으며, 김정일도 죽었고, 장성택도 죽었다. 그사이 남한은 OECD에 가입했고, IMF 구제금융 아수라장이 펼쳐졌으며, 수평적 정권교체를 두 번 겪었고, 대통령 한 명이 백조원을 날려먹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북한인들이 ‘뿔이 난 도깨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북한당국이 전시하는 평양의 모습이 북한의 전부라고도 믿지 않는다. 어쩌면 신은미씨에 대한 합당한 평가는 <동아일보> 3일자 6면 기사에 나온 이 기사의 이 부분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아일보> 기사 <종북논란 신은미 “토크쇼 계속하겠다”>의 말미에는, “한편 신 씨와 함께 북한을 6차례 다녀온 남편 정모씨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 별도로 만나 그간의 의혹을 해명했다”라며 남편 정모 씨의 발언을 소개했다.
▲ 3일자 동아일보 6면 기사
여기서 정모씨는 자신이 아내에게 북한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다는 보도에 대해 반박하며 “나는 오히려 북한에 가서 실망한 것이 많았는데 반공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던 아내는 순박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서 정씨는 “한 ‘꼴통 아줌마’가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고 말로 풀어 설명한 것뿐인데 언론이 너무 과민반응하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최근 몇몇 보수언론과 종편 방송이 신은미씨에 대해서 박근혜 대통령보다 더한 관심을 가졌기에, 우리는 그 ‘반공교육’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1월 29일자 10면 기사 <'종북 토크쇼' 신은미씨 집안의 逆說(역설)>을 보면, “신씨의 외조부는 1948년 제헌국회에서 국가보안법 제정을 주도한 박순석 의원(무소속·1960년 별세)이고, 작고한 신씨의 부친도 영관급 육군 장교로 6·25전쟁에 참전해 최북단까지 진군했던 군인이었다”라고 한다. 또 “신씨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차녀로 어린 시절 유명 어린이 합창단의 일원으로 세계 공연을 다닐 만큼 노래에 재능이 있었다고 가족·친지들은 전했”으며, “그는 서울의 유명 예중, 예고를 거쳐 명문 사립대 성악과에 진학했다. 이후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라고 한다.
▲ 지난 11월 29일자 조선일보 10면 기사
어쩌면 맹목적 반공을 말하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어떠한 계기로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겪은 새로운 경험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수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북한에 대한 증오심을 강요하는 반공교육의 현실 편향이 낳은 산물이 아닐까. <조선일보> 등이 다시 돌아가고픈 세상은 그렇게 다수의 증오자들과 소수의 신은미씨를 만들어낼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사건은 전적으로 <조선일보>의 ‘깨춤’으로부터 시작됐다. 지난 11월 21일 <조선일보>의 1면과 14면에 난데없이 <서울 한복판 ‘從北 토크쇼’>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조선일보>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 정권의 인권범죄를 국제형사재판소에 세우자'는 결의안이 채택된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는 오후 8시부터 '신은미&황선 전국 순회 토크 문화콘서트'라는 행사가 열렸다. 황선(40)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과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의 저자 신은미(53)씨가 방북 경험을 들려주는 자리였다. 황씨는 평양 원정 출산으로 유명한 인물이고, 신씨는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방북기를 연재했다”라고 소개했다.
<조선일보> 기사에 나온 황선씨와 신은미씨의 발언은 담론의 시장에 나온다면 비판받을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황선씨의 발언은 “미국이 독재자로 찍었다고 해서 주민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체 게바라, 호찌민, 마오쩌둥을 보면 알 수 있다"라고 말하는 등 편향적인 인식의 결이었고, 신은미씨의 발언은 "미국에서 왔다니까 '원수님 만나셔서 사진 한 장 찍으라'고 할 정도로 (김정은이) 친근한 지도자 같았다"며 "(우리나라는) 대통령님 만나려면 몇 개월씩이나 기다려도 못 만나는 그런 어려운 분"이라고 말하는 등 ‘자신에게 보여진 북한’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모습이었다.
어느 사회에서나 편향적인 생각을 하는 이들은 있다. 그러한 무리의 다발들 중에서 보도가치가 있는 것을 골라내서 비판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황선씨나 신은미씨의 발언이 대다수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한국 사회에 횡행하는 수많은 몰상식한 발언들이 ‘대중의 편견’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에 비하면 말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굳이 그들의 발언을 거론했을뿐더러, 대단히 부적절한 방식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첫 보도 다음날인 22일자 사설 제목을 <서울 한복판서 北 찬양, 평양서 '南 칭찬' 한번 해보라>으로 달았다. <조선일보>는 “북한 주민 중 누군가가 평양 한복판에서 대한민국 체제와 인권을 옹호하는 행사를 가졌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이런 행사가 아무런 제약 없이 열리고 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 제도를 종북(從北) 주장을 펴는 데까지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행사는 우리 내부 종북 집단의 병(病)적인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라고 사설을 마무리 지었다.
▲ 지난 11월 21일자 조선일보 14면 기사
‘서울 한복판 종북 콘서트’가 부당하다는 논조다. 인구 1000만의 도시에는 그 나라에 사는 이들의 다양하고 편향적인 견해가 모두 드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기가 막히다는 태도 자체가 북한이 보여주고 싶은 대상으로만 가득 찬 ‘매끄러운 평양’을 욕망하는 자세다. <조선일보>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 제도”를 운운하지만 사실상 민주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인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 제도”를 악용(?)하는 것은 황선씨나 신은미씨 뿐 아니라 <조선일보>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애초 민주주의 제도가 보장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악용’이라 말할 수도 없다. <조선일보> 사설은 황선씨의 일부 발언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몰이해가 여겨지는데, <조선일보>가 언론이고 영향력이 훨씬 크기 때문에 크나큰 문제가 된다. 그들 말버릇 대로라면, 광화문 한복판에 ‘서울’이 ‘평양’이 되기를 열망하는 ‘종북세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11월 21일만 하더라도 <조선일보>만 보도했을 뿐 기타 언론들은 이에 무심했다. 하지만 11월 22일에 <조선일보>가 사설을 쓸 지경이 되자 보수언론, 특히 종편을 가진 언론들은 이 건이 ‘화려한 불꽃놀이’를 할 만한 ‘꽃놀이패’란 걸 알게 되었다. <동아일보>를 필두로 여타 언론들이 ‘종북 콘서트’와 ‘신은미씨’를 비판하는 대열에 ‘참전’했고, 그들의 행사는 이 뜨거운 이슈가 많은 최근 정국에서도 종편 방송의 상당수를 점유하는 아이템이 됐다.
11월 25일 사설을 보면 <조선일보>가 두 사람의 토크 콘서트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과 연관지어 ‘종북 몰이’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불쏘시개로 삼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조선일보> 사설 <북 '先軍' 추종자들이 국회서 활개 치는 일 이젠 끝내야>에선 “3년 전 김정일의 가르침을 신줏단지처럼 떠받들며 남한 폭력혁명을 꿈꾸고 가르쳤던 민노당 사람들이 곧 지금의 통진당인 것”이라 주장하면서, “이런 민노당에서 부대변인을 하고, 통진당에선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15번을 받았다 제명당한 황선씨가 인터넷 방송에서 4년간 230여 회나 종북(從北)·반미(反美) 주장을 했다고 한다”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황선씨의 인터넷방송을 언급한데 이어서 예의 토크 콘서트를 엮어서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이후 ‘종북 콘서트’란 말을 확정하며 <'종북 토크쇼' 출연한 재미교포, 통일부 홍보영상에 출연>(11월 25일)과 <'종북콘서트' 신은미 저서, 문체부 우수문학도서>(11월 26일) 등으로 신은미씨를 정조준했다. 신은미씨의 저술이 문체부 우수문학도서가 되고 신은미씨가 통일부 홍보영상에 출연했다는 사실은 신은미씨의 북한 방문기 정도는 남북 우호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맥락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 지난 11월 28일자 조선일보 10면 기사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를 마치 북한 김씨왕조가 인민을 다그치듯 ‘우리의 사상 무장이 튼실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파악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다그침의 결과가 <'從北 토크쇼' 재미교포 신은미씨… 법무부, 한국 재입국 거부키로>(11월 28일자 10면)였다. 이어서 11월 29일자에선 앞서 보았듯 <'종북 토크쇼' 신은미씨 집안의 逆說(역설)>로 그녀의 집안과 친척을 털었다. 그리고 3주가 넘게 <TV조선>을 포함한 종편 방송이 ‘종북 콘서트’를 한국 사회에서 몰아내야 할 시급한 사안으로 비판하고 조롱한 결과는 ‘백색테러’로 돌아왔다.
앞서 말했듯, 신은미씨의 북한 사회에 대한 견해는 균형 잡혔다고 보기 어렵고 비판받을 지점이 있다.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라 하더라도 내용이 모두 터무니없었던 것도 아니다. 가령 지난 4일자 <조선일보> 10면 기사 <"신씨('종북 콘서트' 재미 교포 신은미)가 안다는 그 북한은, 우리가 演技(연기)했던 북한">를 보면 2007년 탈북자 한선화씨가 부유층 자녀가 다니는 청진외국어중·고교를 다닌 경험으로, "한 번은 재미 교포 관광객이 온다고 해서 650여명 전교생이 한 달 전부터 수업을 중단하고 건물 구석구석 횟가루를 발랐다"라면서, "재미 교포 아줌마 신씨가 바라본 북한은 우리가 연기(演技)했던 북한"이라며 "'북한을 제대로 알려주겠다'는 토크 콘서트를 벌이는 신씨를 볼 때마다 그날 학생들의 연기에 놀아난 재미 교포 관광객이 생각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지적이나 증언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 탈북자, 북한 이탈주민은 이미 2만 7천명에 이른다. 탈북자가 새로 내려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교차검증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국정원과 공안당국은 최근의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서 보여지듯 탈북자들이 그들의 가설을 부인하는 주장을 해도 묵살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만 좇아 ‘간첩’을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수언론이 정녕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면 이런 문제가 훨씬 심각하게 다가와야 한다. ‘보여진 평양’의 모습을 그대로 믿은 신은미씨가 순진무구하다면, 선정성이나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일부 탈북자의 의심스러운 발언을 여과없이 방송하는 그들의 모습은 ‘순진무구’도 안 되고 ‘허가낸 사기꾼’의 모습에 가깝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11일 오전 11시 전북 익산 신동성당에서 열린 전북지역 20여개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이 사건을 ‘사제 폭탄테러’로 규정했다. 단체들은 “통일 토크콘서트는 북한에 가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관객들과 진솔하게 나누는 자리로 마련됐다”면서 “이미 종편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허위, 왜곡보도로 종북몰이를 이끌었고 공안당국은 ‘출연진 내사 중’이라는 보도를 흘리고 신은미씨 ‘입국 불허를 검토’한다고 하며 협박을 일삼았다. 행사장 앞은 고엽제 전우회, 자유총연맹을 비롯한 보수단체들이 행사 참가자들을 위협하는 소동까지 빚어졌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종북소동은) 19살 청소년을 폭탄테러범으로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평했다.
▲ 10일 오후 8시 20분께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씨의 토크 콘서트에서 고교 3년생 오모(18)군이 인화성 물질이 든 냄비를 가방 안에서 꺼내 불을 붙인 뒤 연단 쪽으로 향하다가 다른 관객에 의해 제지됐다. 이 사고로 매캐한 연기가 나면서 관객 20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연합뉴스)
9년 전인 2005년 12월, <조선일보>는 비전향장기수 묘역에 대해서도 <간첩·빨치산이 '애국투사'라니…>(2005년 12월 1일자 2면), <의사라는 '비전향 장기수 묘역' 살펴보니/6·25때 빨치산으로 참전 지리산 토벌대와 교전도>(2005년 12월 2일자 8면), <대한민국 안의 '애국열사릉'을 아십니까>(2005년 12월 2일자 사설)을 통해 비판했다. 당시 사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지척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법은 돌아보지도 않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전사들을 추모하는 묘역을 대한민국 안에 만들었다면 서울 한복판에 주체사상탑이 세워지는 날도 그리 멀지는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이러한 공세를 펼친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2005년 12월 5일 북파공작특수임무동지회는 통일애국열사 등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했다며 경기도 파주시 보광사 '통일애국열사묘역'을 훼손했다.
담론의 장을 만들어가야 할 언론들이 증오의 언어로 행동을 선동한 채 거기에 책임을 지지 않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참담한 건 이제 선동되는 이들이 과거의 신념을 유지한 이해당사자가 아니라 ‘인생의 목적’을 찾지 못했던 미성년자로까지 확대됐다는 것이다. 이런 참담한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도 종편 방송들은 자신들의 보도를 전혀 반성하지는 않고 ‘신은미씨 출국금지’, '황선씨 집 압수수색‘에 관한 보도를 늘어놓고 백색테러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MBN>과 같은 종편방송에서조차 패널이 나와 국가 공권력이 그들을 금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잘못된 길로 빠져들었다고 강변하는 상황이다. 언론이 ’테러 선동세력‘이 된 이 나라의 언론운동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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