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아씨는 지금은 없어진 회사, ‘시그마’에서 일했고 지난 6월 말 씨앤앰의 업체변경과 계약만료로 ‘해고’됐다. 서울 한복판이자 금융자본의 심장으로 불리는 서울파이낸스센터 주변 농성장을 제집으로 삼고 노숙농성을 시작한지도 11일로 157일째다.

노동조합 간부조차 숫자를 세지 않던 때가 있었다. 노숙농성이 100일을 넘기면서부터 다들 숫자를 헷갈려 했다. 꿈쩍을 않던 회사와 최대투자자인 MBK파트너스와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운용 탓이다. 노동조합으로서는 출구를 찾기 힘들었다. 11일 노숙농성장에서 만난 마경아씨도 100일을 넘어가면서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노조가 뭔지’ 몰랐다. 마경아씨는 “노조가 뭔지도 사모펀드가 뭔지도 몰랐다”며 “해고 당하고 싸우면서부터 이게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비정규직의 문제라고 알게 됐고, 복직싸움이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라고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모펀드의 문제점도 알게 됐고, 규제기관이 왜 사모펀드를 투명하게 관리해야 하는지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오기’는 약해진다. 마경아씨도 그랬다. 그는 ‘투쟁이 길어졌다. 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석 달에서 넉 달 정도 되던 시기에 정말 힘들었다”며 “해봤자 이룰 것도 없을 것 같았고, ‘이기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고 회고했다. 월급을 못 받는 지난 다섯 달 동안 그는 노동조합이 지원하는 생계비와 ‘희망채권’으로 버텼다. ‘빚’이 늘었다.

지금도 갚아야 할 ‘빚’은 늘고 있지만 그는 매일 농성장에 나온다. 그는 “성덕이가 올라가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프레스센터 전광판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강성덕씨의 직장 동료다. 그에게 “이토록 ‘버티는’ 이유”를 물었더니 대번에 “성덕이가 올라가서 그렇다”고 했다. 그는 강성덕 임정균씨의 고공농성이 “다시 싸울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한 결정적 계기”라고 말했다.

▲강성덕 임정균씨가 서울 프레스센터 전광판 위에서 고공농성에 돌입한지 30일째인 12월11일 천주교 노동사목위원회 신부들은 3대 종단을 대표해 고공농성장에 올라갔다. 이들은 두 사람과 함께 사태 해결을 위해 기도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시사인 이명익 기자.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전광판 위에나 아래 길바닥에나 노동자를 보호할 난간은 없다. 때로 길바닥은 전광판보다 춥다. 다섯 달 넘는 투쟁은 고통이다. 그러나 마경아씨는 “성덕이가 올라간 뒤 우리 지회 사람들은 다른 지회보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뿐”이라며 “특히 성덕이가 저 위에서 삭발하던 날(11월27일) 다른 조합원 몰래 울었다. 나만 운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다들 몰래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MBK와 맥쿼리가 언론에 “씨앤앰 경영진에 해결방안을 촉구했다”는 말을 흘리고, 10일 씨앤앰이 노사교섭을 재개하자고 제안한 것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았다. “사모펀드는 언론 타기 싫어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그 동안 씨앤앰은 우리를 ‘우롱’하지 않았나.” 그래서 그는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시 말했다. 겨울이 다가왔지만 마경아씨와 동료들의 노숙농성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그들이 버티는 이유가 있다. 마경아씨는 오늘 아침밥으로 ‘닭볶음탕’을 만들었다. 어젯밤 닭을 한 마리 사서 저녁에 손질해 양념에 재워뒀고, 오늘 새벽 5시에 일어나 탕을 끓였다. 그런데 먹지 않았다. 일산에서 서울까지 닭볶음탕을 담은 냄비를 싸들고 농성장에 왔다. 그는 두 사람에게 닭볶음탕을 올려 보냈다.

강성덕씨는 페이스북에 “살짝 매운것이 맛도 있지만 나의 투쟁 호르몬이 사방에서 분비되는 느낌이다!! 경아야~ 너무 고맙고 잘 먹었어. 새벽부터 일어나서 요리하느라 고생했고, 날도 추운데 일산에서 냄비 들고 오느라 또 고생했겠네~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라고 썼다.

마경아씨는 “성덕이가 ‘맛있다’고 답장을 보냈는데 진짜 맛있는지 보낸 건지는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는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투쟁대오’로 돌아갔다. 그리고 검진을 받고 있는 두 사람을 올려다 봤다. 전광판 위아래를 연결하는 끈은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

▲ (사진=강성덕씨 페이스북)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