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은 월급부터 챙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합원이 떠난다. 특히나 정규직 노동조합은 더 그렇다. 민주노총의 핵심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거의’ 싸우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단 몇 시간 경고파업에도 “노조 때문에 몇 천억, 수 조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사측’의 비난, “강성 노조 때문에 한국경제가 휘청거린다”는 ‘여론(으로 포장된)’ 압박 때문이 아니다. ‘밥그릇’이 진짜 이유다. 진짜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당장 이번 달 생활이 안 된다.

“정규직 해고가 OECD 평균보다 쉽다”는데도 정규직 해고를 더 쉽게 만들겠다는 한국에서, 계약직 기간을 늘리고 ‘중규직’을 만들겠다는 정부가 있는 사회에서, 론스타에 당해보고도 사모펀드운용사에게 ‘방송’을 넘기는 이곳에서, 8304명에게 명예퇴직신청서를 손쉽게 받아내고 ‘외주화’로 정규직 노동자를 압박하는 기업이 넘치는 이곳에서 파업은 더 어렵다. 한국에서 노동조합은 파업을 않고 ‘적당히’ 밥그릇을 채워야 정상이다. 그래서 비정상이다.

사모펀드만 반기는 파업, 왜 할까?

정규직도 불안한 이때, 파업을 반기는 이는 회사를 팔아넘겨야 하는 주주뿐이다. 그래서 서울지역 1위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씨앤앰의 경영진과 주주들은 지금 웃고 있을지 모른다. 하청노동자의 싸움에 발을 담근 직접고용 정규직 노동조합이 있다면 회사는 구조조정 명단 만들기가 한층 쉽다. 씨앤앰 정규직 노동조합(희망연대노조 씨앤앰지부)는 회사가 제시한 임금 인상안(3%)도 받아들이지 않고 파업을 시작했다. 요즘 정규직노조답지 않은 선택이다.

씨앤앰지부 파업 21일차인 8일 밤 신승훈 홍보부장을 만났다. 그는 2004년 씨앤앰이 100% 출자한 방송프로그램제작업체인 ‘씨앤앰미디어원’ 기자로 입사했고, 올해 초에 노동조합 상근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5월 원·하청 노동조합이 합법 쟁의행위를 시작한 뒤 6월부터 ‘월급’이 끊겼고 노동조합 ‘활동비’도 바닥이 났다며 “이제는 마이너스통장도 한도를 늘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임금인상안을 받으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왜일까. 그는 MBK파트너스와 맥쿼리가 투자자에게 이익을 나눠주려면 매각 전 그들이 보기에 ‘쓸모없는 조직’을 솎아내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비싼 가격도 문제지만 케이블 산업에 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사고 나서 어떻게 할 건데?’라는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못하고 있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가입자수와 고정비용이 가격을 결정하는데 씨앤앰의 경우, 고정비용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9일 시민행동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는 노동조합 간부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돈 말고 ‘약속’이 필요한 정규직들

뭘 팔 수 있을까. 2013년 말 기준 씨앤앰 종속기업 7개 중 광고대행사 씨유미디어 등 3곳을 제외한 회사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적자 계열사에는 지역채널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미디어원과 고객센터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씨앤앰텔레웍스가 있다. 씨앤앰 본사와 계열사 관리자들은 구조조정은 없다고 단언하지만, 이 회사들은 씨앤앰 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대폭 축소되거나 ‘2차 외주화’로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노동조합 주장이다.

물론 씨앤앰은 “구조조정은 없다”고 설득한다. 그러나 매각 전후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합의’가 있어야 새로운 ‘주인’과 교섭할 수 있다는 게 노동조합 입장이다. 신승훈 홍보부장은 “고용보장 약속은 MBK나 맥쿼리에 경제적 손실이 아니다. 그런데 왜 약속을 안 하겠나. 노동조합을 깨면 매각가가 2천억 원 오르기 때문이다. 씨앤앰 가격은 2008년에 비해 떨어졌다. 사모펀드는 씨앤앰이라는 ‘회사’와 ‘노동자’보다 이 돈이 더 중요해졌다”고 주장했다.

신승훈 홍보부장은 MBK파트너스와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가 씨앤앰을 사들이기 직전인 2007년에 있었던 외주화 과정을 복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는 몰랐다. 지사에서 팀장급에게 ‘나가서 업체 차리면 일감 밀어준다’고 했고, 팀장들이 팀원들 데리고 나갔다. ‘씨앤앰보다 5% 더 챙겨준다’고 해서 나간 사람이 많다. 첫해 그쪽은 5% 올랐는데, 씨앤앰은 2~3% 올랐다. ‘회사를 잘 나갔다’고 한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냐고?”

매각 앞두고 갑자기 달라진 ‘사측’

“그 뒤 그쪽은 계속 동결이었다.” 이민주 전 회장이 씨앤앰을 ‘매각하기 쉽게’ 만드는 과정에서 정규직은 비정규직이나 소사장이 된 셈이다. 신승훈 홍보부장은 “매각을 앞둔 2015년에도 ‘매각이 쉽게’ 씨앤앰을 만들 것이라는 예측은 상식적”이라며 “협력업체가 바뀌고, 노동자 109명이 계약만료로 해고된 다음에는 정규직의 차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시점에서 회사가 제시한 3%를 받는다면 결국 구조조정을 막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노동조합과 잘 지내던 회사가 태도를 달리한 것도 올해다. 신승훈 홍보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2010년 봄 노동조합을 만들고, 여름이 지나서 35일을 파업했고, 3년 동안 25% 임금인상에 합의했다. 임금도 복지도 ‘동종업계 수준’으로 양보해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처음부터 교섭을 해태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교섭 마지막에 가서야 제시한 게 3%안이다. 그러다 109명 대량해고가 터지기 시작했다. 회사의 의도를 분명히 느꼈다.”

신승훈 홍보부장은 “경영상황이 어렵다던 회사가 3%안을 제시할 당시, 100~200명 정도를 지사로 전환배치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그런데 지사 인력은 꽉 차 있었다. 노동조합은 이를 구조조정 전단계로 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케비지부(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조합원만 해고당했고, 회사의 의도는 ‘노조를 와해하고 매각가를 높이려는 것’이라고 느꼈다”는 이야기다. “구조조정은 정규직에게도 당장 눈앞의 일이 됐다.”

▲9일 시민행동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는 노동조합 간부 팔뚝 사이로 고공농성 중인 임정균, 강성덕씨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구조조정 앞둔 정규직은 비정규직”

그는 “구조조정을 앞둔 정규직은 비정규직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하도급업체 대량해고와 노숙농성, 그리고 고공농성이 이어지면서 씨앤앰 정규직 노조가 파업에 나설 즈음 회사에서는 ‘차라리 잘됐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고 전했다. “전면파업을 한다는데 회사는 긴장을 안 했다. 잘 됐다는 분위기였다. 어차피 인력을 줄여야 하는데 ‘나가야 할 사람이 정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3%를 받는다? 첫 타깃은 ‘조합원’이 될 것이다.”

정부와 국회의 개입, 직접고용·간접고용 노동조합의 파업, 사회운동진영의 전방위 압박에 씨앤앰은 궁지에 몰렸다. 그러나 위태로운 건 노동조합도 똑같다. 싸움이 장기화하거나, 그 수위가 올라갈 경우 노동조합을 이탈하는 조합원도 생긴다. 특히 ‘블랙리스트로 찍히면 끝난다’는 공포감은 노동조합에게 최악의 적이다. 너도나도 ‘단결’을 외치지만 “너무 힘들다, 회사가 1%라도 더 올려준다면 받고 들어가자”는 조합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신승훈 홍보부장은 “여기서 임금인상안을 받는다면 조합원들은 내년에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회사가 ‘이 부서에 이렇게 많은 사람은 필요없다’며 영업을 시킨다면 개인적으로 거부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며 “아니다. 한두 달 월급 못 받더라도 무조건 이겨야 하는 싸움이고, 이길 수 있는 시점은 지금뿐”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씨앤앰은 ‘원거리 발령-비전문업무 부여’ 같은 KT식 해고 프로그램이 가능한 조건이다.

“처음에는 내 문제 아니라고 생각했다”

씨앤앰 사태는 ‘주목’받고 있다. 도심 한복판 고공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크다. 신승훈 홍보부장은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연말을 넘기고, 연초에 명절까지 싸움이 장기화하면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그래서 ‘아무 대책 없는’ 회사가 3자협의체를 제안해서 시간을 끈 것 같다”며 “올해 강경 일변도로 나온 MBK쪽 ‘노무라인’을 돌려세울 시점은 그나마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때뿐”이라고 강조했다.

“내년 매각작업을 마무리하려면 돈 계산을 끝내야 한다. 특히 미디어원 같이 ‘돈이 안 되는 조직’은 더 위험하다. 회사에 남아 있는 동료들도 생각해보면 좋겠다. 자기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지고 나면, 그 다음은 누구 차례가 될지 말이다.” 신승훈 홍보부장은 회사에 남아 있는 비조합원과 조합에 가입했지만 파업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동료들에게 “109명 해고가 아직 와닿지 않고 ‘왜 이렇게까지 싸우나’ 싶겠지만 결국 자기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정균이가 (전광판에) 올라가기 전에 만났다. 해고기간이 길어지면서 선봉대오(해고자) 109명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다. 일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투쟁을 했다. 정균이가 ‘그걸 보고 있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완전히 와 닿지 않았다. 접점도 넓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막상 파업을 하고 나니, 미디어원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왔다. 내년에 매각 추진할 텐데 내가 돌아갈 자리가 있을까? 절대 남일이 아니다. 정규직 우리 문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 모임 ‘돌곶이포럼’이 씨앤앰 농성장에 건 그림. (사진=미디어스) “TV를 켜면 멋진 삶이 쏟아집니다. 그들의 삶은 이 땅 위가 아니라, 호텔의 스카이라운지, 타워펠리스, 긴 담으로 둘러싸인 높은 곳에 있는 저택에서 펼쳐집니다. 이들과는 다른 높은 곳에 올라간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서울 한복판, 전광판 위에 올라간 두 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보는 서울의 풍경은 어떨까요. 그들이 올라간 자리보다 더 높이 솟은 빌딩들을 바라보며 자야하는 밤은 어떨까요. 흰눈을 몸으로 맞아야 하는 새벽은 어떨까요. 거리에서 지새우는 이들에게도, 전광판 위에 올라간 이들에게도 겨울은 길게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부디 이 겨울이 따뜻하기를 희망하며, 이곳에 불을 놓습니다.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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