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신문을 볼 때마다 이 난장판과 아수라장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난감하다. 매체비평지 기자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난장판과 아수라장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 관심이 정치적 관심의 목적에 부합하는지, 사회문제 해결과 관련이 있는지는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신문들의 열독률이나 조회수가 높아지고 있다면, 그것은 온 국민이 시청하는 드라마에서 급격한 상황전개가 발생했을 때 생겨나는 ‘국민적 관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문건 정국’은 일종의 ‘소설 정국’이다. 신문 기자들은 “이와 같은 ‘소설의 시대’가 열리게 되면, 언론사들은 과거 정보보고방에 올라왔던 것들 중 확인되지 않은 것들을 모두 방출한다”라고 푸념하기도 한다. “정윤회가 실세다”라는 ‘썰’ 내지 ‘카더라’는 언론매체 종사자들이라면 수없이 들었던 것이다. 다만 근거가 없었을 뿐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문건 정국’이 각 언론사의 심리적 한계를 해제했기 때문에 나오는 결과물들일 뿐이다.
▲ 4일자 경향신문 4면 기사
언론매체들의 쏟아져나오는 보도의 주요한 스토리를 보면 이 상황은 정윤회와 박지만이라는 두 정국 실세의 암투에 의해 벌어진 난장판 내지는 아수라장이다. 하지만 쏟아져 나오는 보도들을 차분하게 살펴보더라도 과연 그럴까란 생각이든다.
이를테면 정윤회의 비리라는 것에 대한 언론보도를 살펴봐도 그는 자기 가족을 위한 인사청탁을 한 대통령의 ‘유사 친인척’으로 여겨진다. 그가 박관천 경장이 작성한 문건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정국을 컨트롤하는 ‘밤의 비서실장’일 가능성은 어디에도 제시되지 않았고 사실상 희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박지만 라인’이란 것에 대한 언론보도를 살펴봐도 그가 과연 자기 파벌을 만들어 정국에 개입하려 했는지는 불투명하다. 몇몇 친구들을 밀어주려고 했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 취지에 나온 기사들에 대해서도 “그 사람은 박지만 라인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때쯤 승진할만했다”라는 증언도 존재한다.
▲ 4일자 중앙일보 4면 기사
그러나 이 논란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여러 언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 논란의 핵심은 박근혜 정부의, 아니 정치인 박근혜의 의사결정구조가 ‘지금까지 그래왔고 (이대로 놔둔다면) 앞으로도 계속’ 전혀 투명하지 않았고 그래서 도대체 박 대통령이 무슨 근거로 이런 인사나 정책을 펴는지 아무도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한 정치부기자는 “어쩌면 정윤회는 박근혜의 대책 없는 흑막정치의 피해자인지도 모르겠다”고 푸념한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어떤 매체가 공론을 형성하고 있는지 단지 장사를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면, 매우 단순하게는 ‘문고리 3인방’을 비판하는데 치중하느냐 ‘정윤회 박지만의 뒷 얘기’를 쓰는데 치중하느냐란 기준에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선 완전한 선역이나 순수한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어느 정도 공론적 역할을 하며 적당히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이런 기사를 올리는 매체비평지조차도 말이다.
▲ 4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하지만 상대성 정도는 판별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자(4일) 신문에서 ‘문고리’를 검색하면(‘문고리’를 사전적 의미로 쓴 아파트 기사 제외) 주요 일간지에선 <한국일보> 기사 5건과 사설/칼럼 2건 등 총 7건, <경향신문> 기사 5건으로 총 5건, <한겨레>가 기사 3건과 사설 1건 등 총 4건, <동아일보>가 기사 1건과 칼럼 2건으로 총 3건, <조선일보>가 기사 1건과 사설 1건으로 총 2건, <중앙일보>가 오로지 사설만으로 1건이다.
이를 해석하자면 중도지와 진보언론들이 그나마 공론형성에 주력하고 있고, 보수언론과 그들 중에서도 특히 최근 ‘미친 수준으로’ 청와대를 대변하고 있는 <중앙일보>의 독보적인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윤회’를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어떨까. 이 부문에서는 주요 일간지가 대동소이하다. <경향신문>이 기사 14건과 칼럼 1건으로 15건, <동아일보>가 기사 12건과 사설/칼럼 2건 등으로 14건, <조선일보>가 기사 11건과 사설/칼럼 3건 등으로 14건, <한겨레>가 기사 13건과 사설 1건으로 14건, <한국일보>가 기사 11건과 사설/칼럼 2건으로 13건 등이다. <중앙일보>가 기사 9건과 사설/칼럼 1건 등으로 10건 등이다.
▲ 4일자 한겨레 3면 기사
정윤회를 키워드로 잡은 기사가 모두 장삿속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경향성은 볼 수 있다. 현 상황에서 모든 매체가 어느 정도의 ‘장사’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되, ‘청와대 옹호’를 컨셉으로 잡은 <중앙일보>가 장사에도 상대적으로 덜 열심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과거에 비해선 언론매체 기자들이 일반인들보다 월등히 많은 정보를 제공받는 시기가 아니다. 웹에 유통되는 정보도 많아졌을 뿐더러,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심지어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에 비해서도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유명한 일이다.
물론 기자가 더 아는 것도 있다. 언론사 정보보고방엔 찌라시도 올라오지만, 찌라시보다 더 신빙성 있는 정보도 올라온다. 그러나 ‘소설 정국’의 조회수 장사 때문에 그 ‘아는 것’과 함께 찌라시도 방출해버리는 상황에서 독자는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이 난장판과 아수라장에 너부러진 정보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밝은 눈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