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 오후 6시 50분에 수정되었습니다.

서울시가 지난 11월 28일 저녁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의 서울시민인권헌장 의결을 인정하지 않아 파행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 측이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예상된다.

2일 오후 2시에 열린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주최한 긴급 진단 토론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과정, 서울시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에 참석한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서울시민인권헌장 전문위원)은 “나는 ‘현병철 인권위’에서 사회적 논란과 정치적 쟁점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떠난 사람이다. 설마하니 박원순 서울시장에게서 비슷한 일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고 상황을 개탄했다. 김형완 소장은 참여연대 초기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5년여 가량 함께 활동한 바 있다.
김형완 소장은 “4차와 5차 회의부터 혐오발언이 나오기 시작되면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무라인으로부터 경고 메시지가 나왔다. 그래서 6차회의 전에 안경환 위원장(제정 시민위원회 위원장, 전 인권위위원장)과 문경란 부위원장(제정 시민위원회 부위원장, 서울시 인권위원회 위원장)이 먼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면담을 요청하여 찾아갔다”며 그 둘과 박원순 시장이 나눈 대화내용을 전했다.
▲ 2일 오후 2시에 열린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주최한 긴급 진단 토론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과정, 서울시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미디어스
김형완 소장은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박원순 시장은 ‘나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작정했느냐’고 항의를 하였고 심지어는 ‘인권헌장을 뭐하러 하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김형완 소장은 이어서 인권헌장은 박원순 시장의 공약이며 이미 통과된 서울시인권조례에 만들어야 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사안이라고 지적하자 박원순 시장은 이에 "‘시장이 약속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모두 기억할 수 있겠는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형완 소장은 “이후 6차 회의 때 서울시 공무원들의 태도가 해괴했다. 그네들은 시장이 직접 나서서 그렇게 부탁했으니 전문위원들이 알아서 상황을 정리해줄 것으로 믿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문경란 부위원장이 시민위원들에게 만장일치를 통한 의사결정이냐 표결이냐를 선택하자고 했을 때 시민들은 표결을 선택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김 소장은 “그러자 함께 일했던 담당과장이 문경란 부위원장이 청한 악수도 거절하고 ‘부위원장의 이중플레이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소장은 “서울시민인권헌장은 제정은 됐는데 공포와 선포가 안 된 것 뿐이다. 12월 10일에 시민사회에서라도 나서서 발표해야만 한다”라고 주장했다.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서울시민인권헌장 전문위원) 역시 시민위원 논의의 경과를 말하며 박원순 서울시장의 선택이 무엇을 묵살한 것인지를 설명했다. 배경내 상임활동가는 “서울시 해명의 취지는 서울시민인권헌장이 사회적 갈등을 확산시켜 보류했다는 것인데, 우리가 보기에는 서울시가 사회적 갈등을 확신시키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배경내 상임활동가는 “처음 전문위원을 제안받았을 때는 서울시가 정말로 인권헌장 만들 의지가 있는지, 규범력이 약한 인권헌장을 만드는 게 큰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사실 전문위원들은 시민위원들을 설득한다는 인상을 주기가 싫어서 주로 진행자나 서기 역할을 많이 맡았다. 그런데 전문위원들이 자신이 공부한 인권의 틀에서 헌장이 어긋나지 않는지 챙기면서, 시민위원들은 자신들의 삶의 경험에서 나온 질료로 그 내용을 채우는 좋은 그림이 나왔다”라고 경과를 설명했다.
이어서 배경내 상임활동가는 “사실 당일 시청 바깥에 있던 동성애 혐오발언을 일삼던 시위대 때문에 시민위원들은 두려움에 떨며 입장했다. 그래서 회의가 거듭되면서 그분들이 상당히 많이 설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울 거라고도 예측했다.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신앙과의 갈등을 고백하면서도 흔쾌히 성적 소수자를 포함한 각종 차별의 양상을 열거한 문항 쪽에 표를 던진 경우를 보았다. 신앙과의 갈등은 있지만 그렇게 해야 소수자들의 차별을 구체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라고 설명했다.
또 배경내 상임활동가는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서울시의 사실상의 겁박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배경내 활동가는 “서울시는 몇 번에 걸쳐 오늘 표결을 강행할 경우 서울시가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사실상의 겁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그 정치적 함의를 간파하고 서울시민인권헌장을 무력화시키지 않기 위해 표결을 선택했다. 문경란 부위원장이 표결을 진행하려 하자 그들은 의사진행을 방해하고 사람들을 내보내려고 했다. 그런 과정에서도 표결이 이루어지고 압도적인 찬성표가 나왔다”라고 주장했다.
배경내 상임활동가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과정을 방해하면서 인권이 합의를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는 위험한 시선을 드러냈다. 또 시민들에게 제정을 맡긴다는 말을 뒤집으면서 위선을 고백했다. 그가 동성애 혐오세력을 염두에 둔 정치적 결정을 하면서 이제는 다른 지자체나 정치인이 나서서 그와 같은 일을 할 때도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하게 됐다. 이는 서울시장이 서울시민에게만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배 상임활동가는 “숨김은 차별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2일 오후 2시에 열린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주최한 긴급 진단 토론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과정, 서울시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미디어스
정욜 인권재단 사람 활동가는 관에 의해 주도되는 인권도시의 흐름이 성적 소수자에 반대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에 비해 좌초되고 있는 것은 서울시정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정욜 활동가는 광주시 인권조례에 성소수자 규정이 있는 것에 대해 뒤늦게 항의가 나오고 성북구민인권선언이 이루어졌음에도 지역의 교회 목사들의 협박으로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파행적인 상황을 지적하면서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을 둘러싼 파행이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정욜 활동가는 “인권도시가 그간엔 보수 정치세력으로 교체된 이후에도 지속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러기 전에 이미 지속가능성이 어려운 악세사리가 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고 한탄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소속 한가람 변호사는 “인권조례가 인권을 담보하는 기구적 측면을 설명하는 것이라면 그에 입각해 제정되는 인권헌장은 내용적 측면을 설명하는 것이다”라면서 “왜 차별의 사례를 열거해야 하냐고 묻는데, 구체적으로 많이 열거해야 현실에서 일어나는 차별을 좀더 즉각적으로 시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가람 변호사는 서대문구가 퀴어퍼레이드를 허가하지 않았을 때 서대문구인권위가 즉각 항의한 사건(서대문구청장이 수용하지 않음), 서북청년단 재건위가 자신들에게 장소 대관을 해주지 않는데 동성애자 모임에겐 장소 대관을 해준다는 이유로 항의했을 때 서울시인권위가 그것이 차별임을 확인한 사건 등을 예시로 제시했다.
한가람 변호사는 “인권은 인권 밖에 있는 대상과는 합의할 수 없다. 그것은 유럽에서 인권선언을 하는데 나치와 합의를 해야 한단 말, 일본에서 인권을 말하는데 재특회와 합의를 해야 한단 말, 미국에서 인종주의를 반대하기 위해 KKK와 합의를 해야 한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며 ‘합의’를 인권헌장 제정 보류의 근거로 내세운 서울시행정을 비판했다.
긴급 토론회에는 이들 외에도 이종걸 서울시민 인권헌장 시민위원,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서울시민 인권헌장 전문위원), 몽 언니네트워크 및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 행동 활동가가 참여하여 발언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서울시민인권헌장은 제정 시민위원회의 결단에 의해 통과된 것을 서울시와 박원순 서울시장에 의해 수용되지 않는 것 뿐이라며 “헌장 제정이 무산되었다는 보도는 명백한 오보다.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에 시민사회에 의해서라도 헌장이 발표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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