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만 들어도 안다. 12월1일 바람은 매서웠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눈이 내렸고, 천 조각이 찢어질 것 같은 바람이 불었다. 프레스센터 18층에서 훤히 보인다. 빨간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아래서 올려다보니 희미하다. 달 아래 사람 둘이 서 있다. 두꺼운 점퍼에 옹기종이 모여 있지만 길바닥에서 노숙하며 맞는 바람은 퇴근길 10분 동안 바람에 비할 게 아니다. 아마 저 위에 부는 바람은 바닥보다 훨씬 강하고 매서울 터다.
오후 6시, 퇴근하려 했다. 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은 채로 프레스센터를 나섰다. 서울파이낸스센터 주변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씨앤앰 노동자들이 150일 가까이 노숙하고 있는 곳이다. 강성덕, 임정균씨가 20일 동안 기어오른 전광판 앞이다. 바람과 추위가 심한 탓에 농성장은 난장판이 됐다. 노동자들은 바닥에 깐 은색 ‘돌돌이(바닥깔개)’와 비닐을 농성장 주변에 둘러치고 드럼통에 불을 지폈다. 칼바람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퇴근을 못했다. 다시 돌아온 18층 전국언론노동조합 사무실엔 빨간조끼 입은 노조 간부가 있었다. 회의를 준비한다고 했다. 저녁 7시 반에는 ‘예정대로’ 저 밑에서 문화제가 열린다 했다. 시간을 맞춰 내려갔다. 교회에서 ‘연대’하러 왔고, 아멘과 투쟁이 모두 들렸다. 목사가 되길 소망하는 한 대학생은 “씨앤앰 노동자들과 연대할 수 있는 영광을 주셔서 고맙다”며 “노동자를 이 거리까지, 저 높은 곳에 내몬 자본을 다스려 달라”고 했다.
이 학생이 “다스려 달라”고 부탁한 기업은 씨앤앰과 MBK파트너스다. 씨앤앰은 “회사가 어렵고, 전망도 없다”고 하지만 2012년과 2013년 602억 원, 755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케이블 업계 3위, 서울 1위 사업자다. 2012년엔 이익의 3분의 1 정도인 204억 원 가량을 주주에게 나눠줬다. 이 회사 하청업체들이 노동조합에 ‘임금 20% 삭감’을 요구하고, 노동자 109명을 잘라냈다. 구조조정이나 ‘먹튀’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까.
사모펀드운용사 MBK파트너스(회장 김병주)는 2008년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와 함께 ‘국민유선방송투자(KCI)’라는 회사를 하나 만들고, 투자자를 모아 씨앤앰을 사들였다. 인수할 기업을 담보로 인수대금 절반 이상을 빌렸다. 2013년 말 기준 KCI가 보유한 씨앤앰 지분은 93.81%로 씨앤앰 포함 9곳의 씨앤앰 관련 기업만을 종속기업으로 두고 있는데, 이 회사의 차입금은 2조767억8148만8428원(단기차입금 55억 원 포함)이다.
2009년 IPTV 등장으로 ‘가입자 뺏기’ 경쟁과 실적 압박이 심해지면서 직원들은 ‘자뻑’(자기 돈으로 상품 가입)마저 해가며 회사에 돈을 바쳤다. 그런데 씨앤앰은 언젠가부터 사모펀드의 빚을 갚는 현금빨대가 됐다. 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이고 씨앤앰 노동자는 이름 모를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동원됐다. 그래서 지금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노숙하고, 전광판 위에 있다. 매일 쉼 없이 전봇대를 오르던 노동자들은 이제 바닥과 하늘을 기고 있다.
109명 원직복직, 구조조정 중단,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이 불가능한 요구안이 아니다. 원청이 하청에 도급비를 ‘부족하지 않게’ 주고, “노동자 자르면 다시는 계약 안 한다”며 ‘갑의 횡포’를 조금만 부리면 되는 일이다. 씨앤앰은 고용문제부터 풀겠다고 했지만, 밤늦게까지 이어진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를 들으니 벌써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다. 노숙농성도 고공농성이 좀 더 오래갈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든다. 이제 더 추워질 텐데 말이다.
프레스센터에 있다 보면 씨앤앰 노동자들을 자주 만난다. 오늘 점심에는 경영진이 “업계 최고수준 임금을 받고 있다”고 자랑한 노동자들의 외식을 목격했다. 그들은 한 햄버거 프랜차이즈 가게 2층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3900원짜리 런치메뉴를 먹었다. 세 사람이 메뉴 2개를 나눠먹는 테이블도 있었다. 이들은 없는 살림에도 더 없는 동료에게 ‘50만 원’을 건네는 사람들이다. 4천 원대 햄버거를 먹는 내가 ‘사치’를 부린 것 같았다.
밤 7시 반, 굳어버린 입으로 구호를 외치는 모습에 왈칵 눈물이 났다. 이들은 농성장에서 저기 강동지역 시민들이 해준 보쌈, 굴전, 콩나물무침, 홍합국, 김치를 먹었고 추위를 견디며 문화제를 치러냈다. 드럼통에 지핀 불, 농성장에 있는 ‘하나뿐인 온기’를 연대하러 온 사람들에게 넘기고 고공농성장 아래 차가운 길바닥에 섰다. 몸에 밧줄을 묶은 고공농성자도 구호를 외쳤다. 오늘은 이렇게 추위를 넘겼다. 더 추운 내일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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