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시민위원회를 통해 제정하려고 했던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채택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여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1월 28일 인권헌장 제정시민위원회 6차 회의서 4시간의 토론 끝에, 50개 조항에 달하는 인권헌장을 최종 채택하는 듯 보였지만 45개 조항은 ‘전원일치’로 통과되고 5개 항에 대해서 ‘표결에 의한 합의’로 확정하고 다수결로 처리하는 상황을 서울시가 의사진행을 방해했고, 의결되고 채택된 인권헌장을 결국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1월 28일 회의가 있었던 서울시청 주변은 분주했다. 당일 7시부터 열리는 회의를 반대하기 위해 5시부터 일부 기독교인 중심의 시위대가 와 있었다. 그들을 ‘동성애 혐오세력’으로 규정한 성소수자 활동가 및 운동세력이 반대 시위대로 왔다. 시청 뒤편에선 그들이 대치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 지난 11월 30일 저녁 서울시청 주변의 풍경 ⓒ미디어스
이와 같은 대립은 지난 11월 20일 서울시와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가 주최한 공청회가 기독교인들의 반대 시위 및 난입으로 무산되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이어서 27일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 사무실에서 열린 서울시 시민보호관 주최로 열리는 ‘2014년 시민인권보호관 제도의 평가와 발전방안 토론회’를 난입하려 한 일부 기독교인과 그들을 막으려는 운동세력이 대치하는 일도 벌어진 바 있다.
그렇더라도 서울시민 인권헌장에서 동성애 차별을 적시하여 금지하려고 했던 조류를 극렬 반대하고 막아선 이들은 소수였다. 애초 동성결혼과 같은 제도를 만들려는 노력도 아닌 차별을 금지하자는 조항에 대해 “동성애 아웃”과 같은 구호를 들어 반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민망한 발언들을 옮기기도 어렵지만, 동성애와 항문성교와 에이즈와 죽음을 동일시하는 해괴한 논리구조였다. '레위기'의 구절을 그대로 옮겨온 반대운동에 대해 그러면 게이가 아닌 레즈비언은 왜 반대하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사실 구약 레위기의 저 구절에선 ‘남자’의 동성애만 언급되면서 금지된다).
▲ 지난 11월 30일 저녁 서울시청 주변의 풍경 ⓒ미디어스
그러나 그들은 확신을 과시하는 것으로 보였다. 처음부터 박원순 서울시장을 타게팅한 반대운동을 펼쳤고 “박원순이 (인권헌장을) 폐기하지 않으면 끌어내릴 것”이라고 공언했다. 28일 회의에서 그들은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만 혐오발언을 일삼은 것이 아니었다. 마이크를 들고 “박원순은 뭔가. 사람인가 원숭인가”와 같은 혐오발언을 서슴없이 했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지지를 받았을까. 시민위원으로 참여했던 이들은 150여명 시민위원 중에 그들의 견해를 대변하는 이가 20인 이하였다고 추정한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반대하려고 했던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나머지 시민들은 대다수 합의에 이르렀다고 한다. 28일 현장에서 잠깐 만난 전문위원 중 한 명이었던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심의민주주의 차원에서 의미가 있었다”며 의의를 설명한다.
▲ 지난 11월 30일 저녁 서울시청 주변의 풍경 ⓒ미디어스
말하자면 한 번 토론하고 결론을 내린다면 생각을 바꾸기 힘들지만, 6차례나 토의를 진행하며 도출해낸 의견이기 때문에 크나큰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시민위원은 서울시의 홍보에 따르면 “만 14세 이상 일반시민 대상으로 참여자 공개 모집 및 무작위 추첨을 통해 시민대표성 확보”하는 방식으로 선정되었다. “연령․성별․지역 대표성을 고려하여 균형있게 선정”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의 ‘참여 시정’이 만들어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소수 극렬 세력의 혐오대응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럴 거면 인권헌장을 만들어내자고 할 일이 아니었다.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시민위원회를 만들 일도 아니었다. 혐오세력은 다수도 아니었고 그들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은 사회적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그들을 두려워하며 인권헌장을 보류한 순간 그들은 불가피하게 존재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실체가 되었다. 그게 그들의 ‘자신감’을 강화한다면, 박원순이 한 것은 ‘긁어 부스럼’의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 지난 11월 30일 저녁 서울시청 주변의 풍경 ⓒ미디어스
몇 번의 관련 취재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동성애야말로 ‘세대이슈’라는 것이었다. 당일 서울시청의 침탈을 수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젊은 전경들도 그렇게 말했다. “저게 저러고 싶어서 태어나나. 누가 저런다고 나도 그러고 싶어 하나. 근데 자기가 저렇게 태어나지도 않았으면서 비난하는 건 뭐지. 그렇게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한편 양편 시위대가 다투고 있을 때 지나가는 노년층의 반응을 보면 오히려 일부 기독교인보다 혐오세력을 반대한다는 시위대에 혀를 차는 듯했다. 매우 마키아벨리즘적으로 따져본다 해도, 그러는 이들 중에 박원순 서울시장을 지지하거나 지지할수도 있는 이들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겁내는 것은 무엇인가.
굳이 인권운동을 하거나 거기에 관심이 있는 전문위원들을 끌어냈고, 굳이 혐오세력을 자극하면서 그들에게 반대할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활동까지 끌어냈다. 그들이 활동을 하면서 받은 상처가 없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 희생을 치르게 하면서도 모종의 ‘진전’을 거부한 상황은, 서울시정을 넘어 ‘정치인 박원순’의 가능성에도 의구심을 드리우게 하는 실책일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