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과거로부터 긴 시간을 거슬러 귀환하는 영화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리부트니 리메이크니 하는 새 옷을 입고 돌아오는 영화도 있고, 당당하게 옛 옷을 리폼하는 선에서 관객과 마주하려는 영화도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다시 한번 증권가에 날을 세운 올리버 스톤의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 벌써부터 내년을 기다리게 하는 <쥬라기 월드> 등이 모두 그런 영화입니다. 뭐 '그런 영화'란 건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좋게 보면 향수지만 나쁘게 보면 결국 할리우드의 창작력 고갈 내지는 흥행 안전성에 대한 추구의 결과입니다.

어쨌거나 <덤 앤 더머 투>도 한참의 세월을 은신하다가 관객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1편이 북미에서만 무려 약 2억 5천만 불을, 그것도 20년 전에 그런 돈을 벌었는데 왜 이리 오래 걸렸을까요? 실은 이미 약 10년 전에 <덤 앤 더머 투>가 아닌 속편이 제작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덤앤 더머 2>, 원제는 <Dumb and Dumberer: When Harry Met Lloyd>였습니다. 이 영화는 학창시절에 해리와 로이드가 만나는 과정을 다뤘으나 혹평을 면치 못했습니다. 물론 패럴리 형제와 짐 캐리 그리고 제프 다니엘스와는 전혀 무관한 영화입니다. 배급사만 '뉴 라인 시네마'로 동일하더군요. 이걸 알고 보면 어떤 장면의 이해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제목처럼 지상 최고의 얼간이 둘이 돌아온 <덤 앤 더머 투>는 아니나 다를까, 향수를 진하게 풍깁니다. 도입부에는 1편과의 연결고리를 꽤 많이 흘리면서 관객의 향수를 자극합니다. (반대로 1편을 보지 못한 관객은 어리둥절할 수도 있습니다) 이웃집의 빌리처럼 예전 배우가 그대로 등장하거나 강아지 자동차를 다시 보게 돼서 더 반갑기도 하고, 몇몇 에피소드까지 꺼내면서 자신들을 환대해달라고 청합니다. 이 호소는 분명 어느 정도 먹힙니다. 비록 나이가 들어 이젠 얼굴에 주름살이 역력하게 보여도 여전히 짐 캐리와 제프 다니엘스의 연기는 능청스럽습니다. 사실상 이 두 배우가 없었더라면 <덤 앤 더머 투>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역시 20년이란 시간은 길고도 길어서 안타까움이 커졌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덤 앤 더머 투>는 짐 캐리와 제프 다니엘스를 빼면 남는 게 없습니다. 이것이 참 의아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패럴리 형제는 <아메리칸 파이>의 웨이츠 형제와 더불어 미국식 화장실 유머를 대표하는 감독입니다. <덤 앤 더머>는 말할 것도 없고 <킹핀,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등에서도 기발하고 발칙하며 엽기적인,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유머를 선사해서 포복절도하게 했던 장본인입니다. 반면 <덤 앤 더머 투>는 유머코드의 변화를 떠나서 일단 이야기가 단조롭고 고루해서 지루할 지경입니다. 로드무비의 형식을 따른 것은 상관없지만 영화를 이끌어가야 하는 이야기의 힘이 매우 빈약합니다. 별안간 소식을 들은 딸을 찾아 나선다는 걸 제외하면 눈길을 끌 만한 게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그 구멍을 메워야 하는 유머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게 <덤 앤 더머 투>에게 있어 최대의 약점입니다. 간간이 1편처럼 빵 터지게 만들고 있지만 나머지 깨알같이 배치한 유머는 예전과 같은 웃음을 유발하는 데 완전히 실패합니다. 왜 썰렁한 개그를 살릴 때 오락 프로그램에서 "인공호흡을 한다"고 하죠? <덤 앤 더머 투>를 보는 동안에는 마치 박동이 멈출 듯 말 듯한 심장에 전기충격을 수차례 가하고 있는 응급실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모든 건 그대로인데 세월이 흐른 탓인지 영 마뜩찮더군요. 다만 두 배우의 고군분투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안타깝고 슬프지만 제게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조금 더 일찍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만이 진하게 남았습니다. 세월은 언제나처럼 야속하네요.

★★★

덧) 딸을 연기한 레이챌 멜빈이 은근히 매력적입니다. 엉뚱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주이 디 샤넬과 겹쳐졌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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