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은 입주민의 언어 폭력 등 모욕을 견디다 못해 분신 사망한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의 경비노동자 이만수씨의 동료 경비원들이 전원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현재의 용역업체와 계약을 종료하기로 한 것이다.

간접고용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원청업체와 용역업체 간의 계약해지는 사실상 전원 해고 통보와 다를 바 없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법적으로는 해고가 된 것은 아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최근 새 용역업체 입찰을 위한 공고를 냈다고 한다. 노동자 전원이 해고될지 일부는 고용승계될지 아니면 전원이 고용승계될 수 있을지는 확정이 안 된 상황이다. 그러나 의도한 것이 마지막이라면 현재 용역업체와의 계약 종료도 없었을 거란 점에서 앞의 두 상황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의 여론은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의 주민을 규탄하는 것에 쏠린다. 이만수씨를 모욕했던 일개인이 문제인 줄 알았더니 그 집단 자체가 ‘괴물’들의 거주지였다는 한탄이다.
▲ 11일 오전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열린 분신 경비원 이모씨의 노제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해당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의 문제가 크다. 평소에 경비원을 대하는 태도는 차치하더라도, 강북아파트였다면 한 경비노동자의 죽음이 이토록 전국적 이슈가 된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태도를 취하지 못했을 거라는 계급론적 시각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진 맥락은 존재한다. 그들을 ‘괴물’로 칭할 수도 있겠으나 그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란 사실도 분명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확산된 간접고용의 폐해는 경비관리직에서만 드러난 것이 아니다. 원청과 하청의 관계 속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되면 해당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취소하는 풍경은 한국 사회에서 일상적이었다. 지난 2010년, 현대기아차 본사 시위를 벌인 동희오토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기아차-동희오토-17개 하청업체-비정규직 노동자’로 이어지는 간접고용의 먹이사슬을 이해하는데 6년이 걸렸다.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는 현대-기아차에 직접교섭을 요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지금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에서 싸우는 이유다.“
경비관리직이라는 특수상황으로 와도 마찬가지다. 강남의 경비관리직을 아는 이들은 이곳에서도 해고가 일상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노무 관리술 자체가 해고를 통해 긴장감을 부여하는 방식이란 것이다. 특히, 입주자대표회의 눈 밖에 나면 금세 해고를 당한다고 한다. 강남 지역의 대표적 대단지에서 근무하는 한 관리직 노동자는 "일을 마치고 잠깐 쉬고 있는 모습을 본 입주자 대표회의 간부가 이를 관리 사무소에 항의하면서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을 색출해 해고한 일도 있었다"고 말할 정도다.
이렇듯 극단적으로 유연(!)해진 노동 구조이다보니, 노동자들에게도 자구책은 있다. 근처의 다른 아파트도 사정은 마찬가지니 다른 사람이 잘린 자리에 새로 취직하는 식으로 생태계가 구성된다. 간접고용 공장노동자들이 그렇듯 3개월에 한 번씩 새로 근로계약서를 쓰고, 일 년에 갈려나가는 노동자의 비율이 20%를 넘는 곳도 있다는 증언도 있다.
해당 아파트의 한 경비노동자는 “용역회사가 20일 교육을 한다고 모아놓고 해고 예고 통보서에 사인을 하라고 강요했다. 몇년간 일하면서 용역업체가 바뀐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는 간접고용이다 보니 업체가 바뀌면 해고될 수밖에 없는 파리 목숨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11일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열린 분신 경비원 이모씨 노제에서 민주노총 관계자가 이씨의 마지막 근무지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맥락을 살펴보면 이들의 고용상황은 지난 몇 년간 업계 평균보다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선기 서울일반노조 대외협력국장은 “경비노동자들이 지난 2012년 노조를 설립한 이후 입주민들이 안 좋게 보다가, 이씨의 분신으로 아파트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보고 매년 갱신해온 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노동조합 설립 이후 그들은 밉보이게 되었고 결국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리가 되었다는 해석이다. 만일 경비노동자의 상당수가 고용승계된다 하더라도 새 회사에서 노동조합을 다시 만들기는 어려울 거란 점에서, 이러한 해석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여기서 보게 되는 것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작동하는 ‘체계’이며 ‘상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평소에는 이것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느끼지 않으며 살아가다가 사람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 작동구조에 분개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강남아파트’와 ‘강북아파트’의 차이는 사람의 죽음이란 사태에 직면해서도 자신들의 ‘체계’와 ‘상식’을 일관성 있게 밀어붙이느냐 아니면 잠깐 주저하느냐의 차이일 수 있다.
물론 우리 모두가 그 ‘체계’ 그 자체인 것은 아니다. 입주자대표자회의는 모든 입주자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극성스러운 사람들을 대표할 뿐이다. 김부선과 같은 연예인이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항해 투쟁하고 많은 대중의 지지를 받기도 하는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따져보면 한국 사회의 대의구조란 게 몽땅 다 이런 식이다. 가령 자사고 공청회를 하면 평범한 학부모들은 오지 못하고 부동산업자와 사교육업자만이 나타나 여론을 왜곡한다. 막상 자사고가 들어서면 학부모들은 모두 당사자가 되어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겠다는 교육감에 맞서 시위한다.
▲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내에 마련된 분신 경비원 이모씨의 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조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정도 수준의 몰인정한 체제를 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심하고 맞서 싸우지 않으면 체제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을 막기 어렵다. 그리고 그 체계들은 '자치'와 같은 그럴싸한 말을 자의적 명분으로 삼아 체제를 공고히 한다. 작심하고 싸우자는 사람은 소수고, 소수가 되면 곤란하거나 적어도 피곤해진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경비노동자에게 심하게 대하는 한 명에 대한 분노는 이제 ‘압구정 현대아파트’ 주민들에게로 옮겨붙었다. 정확히 말하면 입주자대표자회의겠지만, 거기 사는 부유층들이 이 분노에 반응하여 입주자대표자회의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는 다음에야 구별하는 것도 우습다. 그리고 어쨌든 이 자연스러운 분노에서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싸움’의 당위에 더 많은 사람을 동참시킬 것인가일 것이다.
사실은 모두가 ‘작심하고 싸우는 소수’가 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가 작심하고 싸울 때 그 싸움의 동기와 당위를 인정하고 지지만 보내줘도 세상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지가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에 그 소수는 쉽게 고립되기 마련이다. 결국엔 이 분노의 와중에 이 부조리를 둘러싼 어떤 의제들의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인가가 이른바 진보진영의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상황이 한국 사회에 대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좀 더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할 이유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