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일에 나왔으니 5개월 됐다. 3개월 정도 지나니까 전기세도 가스비도 낼 돈이 없었다. 카드를 돌려막았더니 통장 압류가 들어왔다. 하나뿐인 자동차에도 딱지가 붙었다. 내 가족 죽게 생겼으니 지회장이랍시고 희생할 게 아니라, 그만 해야 하나 생각했다. 3일을 고민했다.

내가 당장 없고 힘들어도 여기서 그만 두면 다음 날 화병으로 죽을 것 같았다. 굶어 죽으나, 화병으로 죽으나 매한가지 아니냐. 그때 누군가 봉투에 50만 원을 넣어서 주더라. ‘급한 돈 먼저 쓰라’고…. 그 돈으로 쌀을 샀고 가스, 전기세를 냈다. 그 고마운 동지가 임정균이다.”

지난 7월1일 계약만료로 해고된 씨앤앰 하도급업체 노동자 이경호씨(티앤씨넷 해고자, 마포지회장)는 “자꾸 눈물이 나서 쳐다보지 않으려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해고된 지 5개월, 제3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근근이 사는 동료에게 ‘해고되지 않은’ 임정균씨는 돈을 건넸다.

▲ 고공농성 13일차 모습. (사진=희망연대노동조합)

임정균씨는 서울 한복판 20미터 높이 광고판 위에서 농성 중이다. 24일로 13일차다. 그는 동료 강성덕(35)씨와 강풍이 부는 광고판 위에 올라, 몸에 밧줄을 묶고 “해고자 전원 복직”과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전자파가 강한 전광판 안에서 쪽잠을 잔다.

씨앤앰은 서울지역 최대 케이블TV사업자(종합유선방송사업자)다. 2008년 사모펀드운용사 MBK파트너스와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는 씨앤앰을 담보로 1조5천억 원 이상을 대출받아 씨앤앰을 사들였고, 이제 펀드투자자에게 수익을 나눠주기 위해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사모펀드는 기업을 인수해 단기간에 사업을 확장하거나, 아니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해 ‘노동 몫’을 줄인 뒤 기업을 되팔아 차익을 얻는다. 해고자 109명은 그렇게 잘려 나갔다. MBK와 맥쿼리는 노동자를 줄이고, 노동조합을 없애거나 순치해야 매각가를 높일 수 있다.

▲ 고공농성 13일차. 희망연대노동조합 씨앤앰지부와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는 109명 해고자 전원 복직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사진=희망연대노동조합)

“노동조합을 없애면 씨앤앰 가치가 2천억 원 이상 오른다”는 이야기도 이 과정에서 흘러나왔다. 올해 들어 씨앤앰은 일부 하도급업체를 정리했고, 하도급업체들은 선별 고용승계를 강행했다. 협력사협의회는 노동조합에 ‘임금 20% 삭감’을 제시했다. ‘투쟁’을 유도한 셈이다.

회사의 전략이 먹혀들어가는 듯 보였다. 씨앤앰 경영진들은 MBK에 여러 차례 “조금 있으면 정리될 것이니 걱정 말라”는 취지로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고자들의 노숙농성이 130일 가까이 이어지고, 지난 12일 두 사람이 서울 한복판 광고판에 오르기 전까지 그랬다.

고공농성 돌입 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위원장 우원식) 소속 국회의원들이 농성장을 찾기 시작, 중재를 시작했다. 방송통신위원회 고삼석 상임위원도 씨앤앰 경영진에 해결을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씨앤앰 사태를 ‘최우선 과제’로 결정했다. ‘연대’ 단체들도 붙고 있다.

▲ 24일 밤에 열린 연대문화제 모습. 희망연대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은 “우리가 강성덕이다, 우리가 임정균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사진=미디어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인 강문대 변호사는 24일 고공농성장 아래서 열린 연대문화제에서 “노동자가 우리나라의 심장,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곳에 올라갔다”며 “한시라도 빨리 내려오길 바라지만 빈손으로 내려올 순 없다. 민변도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미디어스> 취재결과, 씨앤앰과 김앤장법률사무소는 ‘씨앤앰-협력사협의회-노동조합-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를 기획했다. 씨앤앰 관계자는 “26일 장영보 사장이 직접 서울상공회의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씨앤앰은 “해고자 복직” 정도를 약속하며 대주주 MBK로 번진 여론을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조합은 임단협 체결을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씨앤앰 경영진은 다른 쟁점에 대해서는 입장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고공농성은 보름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 서울파이낸스센터(SFC)는 한국 금융자본의 상징적인 곳이다. 이곳 20층에 씨앤앰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입주해 있다. (사진=미디어스)
▲ 희망연대노동조합 씨앤앰지부의 한 조합원의 자녀(초등학생)는 학교에서 ‘노’로 시작하는 단어를 적어오라고 숙제를 내주자, “노조”와 “노숙”을 적었다. (사진=희망연대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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