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시민이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을 지나며 손으로 저 위를 가리켰다. “봐, 저기 사람 있잖아.” “진짜네, 저기 어떻게 올라갔지?” 서울지역 1위 케이블업체 씨앤앰의 하도급업체 노동자 둘은 지난 12일 파이낸스센터와 프레스센터 사이에 있는 높이 20미터 옥외광고판에 올랐다. 이들은 사모펀드운용사인 MBK파트너스(회장 김병주)가 씨앤앰을 ‘먹튀’ 하기 위해 노동자 109명을 길거리로 내몰았다며 고공농성 중이다.

금요일 밤, 갓난아이를 등에 업은 한 남성, 어린 딸들의 손을 잡고 이곳을 지났다. 이들은 “109명이 해고를 당하고 넉 달이 넘게 이곳에서 노숙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멈춰 섰다. 서명판에는 “하루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한 남성은 “서명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씨앤앰 해고자에게 “저도 비정규직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떤 엄마는 “이게 뭐야?” 묻는 꼬마숙녀에게 “우리가 도와주는 거야”라고 했다.

이곳에서 노숙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지난 6월부터 해고됐다. 분명 지난해 ‘원청’ 씨앤앰과 ‘하청’ 노동조합은 “업체 변경시 고용승계”를 합의했는데, 하도급업체는 올해 들어 ‘선별 고용승계’를 고집했고, 임금도 20% 깎겠다고 했다. 고강도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을 동시에 추진한 셈이다. 이걸 노동조합이 받아들일 리는 없었다. 이 과정에서 109명이 해고됐고, 이들은 현재 140일 가까이 거리에서 먹고 자고 있다. 고공농성은 ‘마지막 싸움’이다.

▲서울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농성장 주변에 있는 걸개그림.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씨앤앰에서 일주일 단위로 영업실적을 보고 받고, 셋톱박스 교체에도 관여하는 등 경영 전반에 ‘촘촘하게’ 개입한 MBK파트너스는 숨어 있다. 고공농성장 주변에 있던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대화를 주선하려고 했지만 MBK 쪽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MBK파트너스가 입주한 서울파이낸스센터) 20층에 따로 용역을 세웠다”며 “노조가 기자회견을 해도 다 도망가고, 국회의원이 만나자고 해도 본체만체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MBK가 똥배짱을 부리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면 (고공농성이) 끝나지 않는다”며 답답해했다. 그는 “(농성 중인) 이 사람들은 다 약자”라며 “우리집에도 자주 수리하는 오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사모펀드 이 사람들은 원래 피도 눈물도 없지 않느냐”며 “전혀 얘기가 안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강제진압’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현재 고공농성장 주변에는 에어쿠션 정도만 설치돼 있다.

하청은 원청에, 원청은 주주에 “해결해 달라”했지만 주주는 원청에, 원청은 하청에 “우리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랐다. 이럴 경우, 노동자들이 찾아가야 할 곳은 대주주 MBK파트너스 사무실이다. 노동자 67명은 실제 면담을 요청했고, 경찰은 이들을 전원 연행했다. 갈 곳 잃은 노동자들이 하소연할 곳은 정부와 정치권이었지만,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 고용노동부는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출구가 안 보였다.

MBK파트너스가 씨앤앰 매각을 추진하고,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투쟁을 하고서야 출구가 열렸다. 정규직 노동조합은 연대파업에 나섰고,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는 중재에 나섰다. 야당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문재인 의원도 씨앤앰 사태를 언급했다. 방통위와 서울지방고용노동청도 움직이고 있다. 언론도 붙었다. 공영방송 KBS가 보도에 나선 것은 상징적이다. 뉴스타파는 사흘 동안 노동자들과 함께 노숙하며 씨앤앰 사태를 취재했다.

▲ 매일 저녁 7시 반께 농성장에서는 문화제가 열린다. 21일 밤 열린 문화제 모습. (사진=미디어스)

처음에는 외로웠다. 서울 송파지역에서 일하는 한 씨앤앰 노동자는 “파업에 나간다고 하니, 아내가 얼굴도 쳐다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시민사회, 종교, 노동운동단체가 달라붙고 민주노총도 방송통신업계 간접고용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결정하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다. 씨앤앰 노동자는 “아내가 삼보일배를 하는 나를 봤다면서 뜨거운 차를 끓어주며 수고했다고 하더라. 그리고 다음 날 아내와 손을 잡고 시청으로 출근했다”고 말했다.

씨앤앰은 최근 “해결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한국 최대 로펌 김앤장이 최근 씨앤앰 ‘대응팀’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앤장은 지난 2008년 MBK와 맥쿼리가 씨앤앰을 인수할 당시 법률자문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분위기를 보면 씨앤앰과 김앤장이 만든 출구전략은 ‘109명 복직으로 여론을 환기한 뒤 매각을 추진하는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국회가 사모펀드의 먹튀, 임금 20% 삭감은 그대로 둔다면 직무유기다.

21일 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조계사에서 민중특강을 끝낸 뒤 참석자 150여 명과 고공농성장을 찾았다. 백기완 소장은 두 사람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그는 마이크를 들고 고공농성 중인 강성덕, 임정균씨에게 “두 사람은 우리의 희망이다. 싸워나갈 길을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임정균씨는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고맙다”고 화답했다. 고공농성 열흘째, 하루는 이렇게 뜨겁게 지나갔다.

▲ 백기완 소장은 21일 밤, 농성장을 찾아 노숙농성,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격려했다. (사진=미디어스)
▲ 고공농성 열흘차인 21일 밤 강성덕, 임정균씨는 전광판 위에서 구호를 외쳤다.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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