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의 최종 단계인 한국시리즈가 끝났다. 삼성 라이온즈는 넥센 히어로즈를 4승 2패로 꺾고 4년 연속 정규 시즌-한국시리즈 우승의 영예를 얻었다. 이제 야구팬들은 내년 4월까지 ‘프로야구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올 가을에는 포스트시즌 경기에 대한 관심을 능가하는 이슈가 각 구단별로 뻥뻥 터져나왔다. 시즌이 끝난 후 무려 다섯 구단(SK, 두산, 롯데. 기아, 한화)의 감독이 교체되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가을야구’하지 못한 모든 팀의 사령탑이 바뀌었다. 누구는 임기가 끝난 후 재계약에 실패했고, 누구는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끌려 나갔고, 누구는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성난 팬덤의 아우성에 결국 사임했다.
그리고 ‘가을야구’ 하지 못한 팀 중 가장 화제가 된 두 구단이 있었다. 한 팀은 호텔 CCTV 선수 사찰 건으로 국회의원와 인권위의 입에 오르내렸고, 다른 팀은 3년간 프로야구를 떠나 있었던 감독을 선임하며 언론의 관심을 샀다. ‘야신 김성근’이 취임한 한화 이글스가 그 주인공이다. 단지 감독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팀내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코치들이 쓸려나갔고 그 자리를 ‘야신’과 인연이 있는 일본인 코치와 타팀 출신 코치들이 메꿨다. 한화 이글스 구단 대표이사도 바뀌는 등, 한화그룹이 김성근 감독을 전폭 지원하게 된 모양새다.
그러나 야구단에서 거둔 성과에 비해 프런트 및 언론과 친화적이지 못했던 김성근 감독의 스타일을 반영하듯 일각에선 비판의 목소리들이 나온다.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 행사방식이나 세계관이 지나치게 전근대적이고 인권 침해적인 요소도 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야구 팬덤 게시판에선 흔히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이 펼쳐진다.
▲ 1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 넥센 히어로즈 대 삼성 라이온즈 경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삼성 선수들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스포츠서울> 배우근 기자가 1일에 올린 <[배우근의 야구블랙박스]감독은 선수의 스승인가?>와 이를 페이스북에 공유한 한 야구 칼럼니스트의 행동이 문제가 되었다. 그 야구 칼럼니스트는 야구 팬덤에는 과거 김성근 감독에 대해 제대로 된 근거 없이 비판적 발언을 한 전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이유로 그는 ‘김성근 까는’ 칼럼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단 이유로 ‘SK 팬덤’과 ‘한화 팬덤’의 공적이 됐다.
상황을 살펴보면 ‘김성근 비판’에 과한 부분이 있다. “꼴찌에게 무슨 인권이냐”라는 식의 몇몇 팬들의 반응이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특별히 김성근 감독이 다른 한국 프로야구 감독보다 권위적이거나 인권침해적이라는 근거는 없다. 한화팬들이 김성근 감독에게 연호하는 것은 단지 ‘꼴지팀 선수’들을 마구 마구 괴롭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령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인 이정훈 감독은 충분히 선수를 괴롭히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만일 그가 한화 감독으로 부임하여 스포츠언론 기자들이 ‘한화 이글스 지옥훈련’ 기사를 송고했다면 지금과 같은 주목을 받았을까. 기자들이 아무리 ‘지옥훈련’을 강조한들 팬덤은 이를 ‘구단 언론플레이’로 보고 냉소했을 가능성이 높다. 선수들이 실제로 고생을 하든 안 하든 간에 말이다.
팬덤은 김성근 감독이 성과를 낼 것이라 믿기에 열광하는 것이지, 그가 선수를 괴롭히기 때문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꼴찌에게 무슨 인권이냐”라고 말하는 이들이 야구 팬덤에 없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 “12월과 1월에도 훈련해야 한다”라고 말하면 “직장인에게 휴일 근로하란 얘기와 뭐가 다르냐”며 반박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다. '두발규제' 역시 훈련 상황이란 특수성에서 나온 조치이지 그간의 김성근 감독을 보건대 시즌까지 이어질 일은 아니기도 하다. 게다가 이용균 기자가 <주간경향>에 적은 것처럼, "이를 두고 '한화 고등학교'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하지만, 미국 프로야구 명문팀 뉴욕 양키스도, 일본 프로야구 명문팀 요미우리 자이언츠도 모두 장발과 염색, 수염이 금지된 팀이다". 한국 사회가 특별히 '후져서' 김성근식 카리스마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란 의미이기도 하다.
▲ 2014 마무리 캠프 훈련에 참가한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정근우(오른쪽)와 김태완이 2일 일본 오키나와 고친다 구장에서 펑고 훈련을 하던 중 숨을 고르고 있다. 최근 한화팬들은 마무리 캠프 훈련에서 자팀 선수들이 고생하는 사진들을 돌려보며 싱글벙글하는 중인데, 잘 모르는 이들이 이 광경을 보면 메저키즘적으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화팬들이 '한화 선수들의 고통'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한화 이글스 제공) (연합뉴스)
사실 “감독은 선수의 스승인가?”라는 배우근 기자의 질문도 엄밀하지 않다. 감독을 스승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생각 안 할 수도 있다. 거기에 무슨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배우근 기자는 “다들 구단과 계약하고 돈을 받고 야구를 하는 건 데 앞으로 이런 거 하지 마라. 선물을 하려면 학교 선생님들한테 하라”라는 김응용 전 한화 감독의 발언을 소개하며, ‘스승’이란 말은 마치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나 써야 할 말이지, 감독을 향하기엔 부적절한 말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러나 ‘스승’이란 말은 애초에 다소 전근대적인 개념이다. 그런 식이라면, 자기 돈 내고 공부하러 가서(학교는 부모님이 낸 수업료로 운영되거나,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크게 보면 자기 돈 내고 가서 공부하러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적절한 수준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를 굳이 ‘스승’으로 섬겨야 할 필요도 없다. 감독이 꼭 선수에게 ‘스승’일 필요가 없다면 교사가 꼭 학생에게 ‘스승’이어야 할 이유는 존재하는가.
감독과 선수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로 사유하지 않는 김응용 전 감독의 태도가 그 부분에서는 ‘근대적인 것’으로 여겨질 구석도 있다. 배우근 기자는 이를 “단내 나는 지옥훈련을 소화해야 할 것이다. 재미있는 아이디어 하나만 미리 말하면 김태균은 당분간 3루에서 반쯤 죽을 것이다”라고 말한 김성근 감독의 태도와 대비시킨다. 말하자면 김응용은 근대적이며, 김성근은 전근대적이란 식이다.
그 부분에 한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배우근 기자가 “(김성근 감독의 발언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그를 프로선수로 인정하지 않는 의식이 깔려있다는 점이다. 이 발언으로 김태균은 프로가 아닌 고등학교 아마추어 선수로 강등됐다”라고 분석하는 것엔 동의하기 힘들다. 일단은, 고등학생을 굴리는 게 프로선수를 굴리는 것보다 정당할 이유를 모르겠기 때문이다.
▲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이 2일 일본 오키나와 고친다 구장에서 열린 2014 마무리 캠프 훈련에서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오히려 프로선수는 야구실력으로 밥벌이를 한다는 것이 확정된 사람이다. 감독은 그에게 강훈련을 지시하는 행위를 그 선수의 이윤추구를 위한 것이라고 얼마든지 합리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고등학교 아마추어 선수’는 다르다. 아직 야구를 업으로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해당 과정의 기본적인 교육은 받아가며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합리적인 일이 되겠지만, 한국의 엘리트체육 현실에선 그렇게 하지 못한다. 배우근 기자의 논법은 일견 성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으로 한국 사회가 ‘고등학교 아마추어 운동선수’들을 대하는 잘못된 세태에 대해선 ‘그럴 수도 있는 것’으로 호도한다.
한국 사회에서 중고등학교 때 운동부를 경험하는 이들은 10여만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 중에서 단지 1%만이 프로선수가 된다. 한국의 ‘학원스포츠’는 사실상 그들에게 일종의 ‘올인’을 요구하기 때문에 학생 선수들은 운동에 입문하면서 ‘학업 탈락’을 경험하게 되고 그렇기에 다른 경험이 없어 운동을 중단할 때는 ‘삶의 탈락’의 위험에 노출된다고 분석된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더라도,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한 이에게 야구를 살살 시키라는 얘기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일개 야구부 감독이 현 체제를 한순간에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 체제를 벗어날 수 없다면 고등학교 야구부가 성적을 내는 것이 감독의 장래 뿐 아니라 선수의 장래를 위해서도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성적을 내기 위해 선수들을 쥐어짜느냐, 선수의 몸상태와 미래를 위해서 ‘관리’를 해주느냐 정도가 도덕성의 척도가 될 것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 김응용 전 한화 감독은 별로 평가받을 여지가 없는 사람이다. ‘스승’ 대접을 바라지 않은 것은 가상하다 볼 수 있겠으나,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한 2년 동안 ‘감독 커리어’를 위해 자팀 선수 생명을 박살낼지도 모르는 무리하고 이기적인 팀 운영을 해왔다.
▲ 지난 10월 13일 오후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한화와 삼성의 경기. 한화 김응용 감독이 2회말 공격 중인 한화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김성근 감독은 혹사 논란에서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선수 개개인의 미래와 장래를 챙기던 이였다. 그런 상황에서 김응용과 김성근의 태도를 비교하며 김응용이 더 선수를 존중한다고 말한다면 야구팬들은 “세종대왕은 왕이고 박근혜는 대통령이니까 후자가 더 애민정신이 투철하다는 주장을 듣는 한국인”의 심경이 될 것이다.
따라서 배우근 기자의 글은 차라리 외부인의 글이라면 이해의 여지가 있으나, 스포츠언론 종사자의 것으로 본다면 미심쩍다. 김응용의 선수 운용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침묵했다면 김성근의 훈련방식에 대해서도 침묵하는 게 최소한의 염치 아닐까.
배우근 기자가 말했듯 프로야구 선수도 엄연히 구단과 계약관계에 있는 성인이다. 선수들의 ‘항명’ 내지 ‘반란’은 언론에 보도되는 것보다 훨씬 자주 일어난다. 김성근 감독의 훈련이 성과를 내고 찬사받는 이유는 무지막지한 강훈련이기 때문이 아니라 선수들 개개인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그들의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맞춤형 훈련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코치도 많이 필요하고 선수 뿐 아니라 감독과 코치도 힘들다.
물론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김성근 감독은 말하자면 ‘전근대적 장인과 가부장의 감수성을 근대적 훈육의 방식으로 실행하여 성과를 내는 사람’이라 정의할 수 있다. 선수들을 수시로 ‘아이’라고 호칭하니 이 점에 관한 한 진보주의자들에게 후한 평가를 받기는 글렀다. 또 한국 사회가 열광하는 리더상이 김성근이라는 현실은 반성적으로 성찰해볼 지점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성근 감독이 ‘김성근형 리더가 추앙받는 현실’까지 책임을 질 수는 없다. 이를테면 좌파들에겐 룰라와 같은 ‘노동자를 대변하는 노동자 대통령’이 당선되는 나라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노동자를 대변하던 법조인 대통령’이 당선되는 나라보다 긍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현실일진데, 일개인에게 로스쿨을 가지 말라고 한다거나 법조인 출신 정치인은 좋아하지 말라고 강요하면서 극복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 지난 2013년 4월 1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과 한화의 경기. 8회초 전광판은 15대0를 나타내고 있지만 한화 팬들은 쉼 없이 응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후배에 대한 위계 질서가 없다. 유니폼을 입은 경기장에서야 전쟁터지만 밖에서 사복을 입었을 때는 서로 예의를 지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회의에 나오지 않은 선수들은 아래 위가 없는 것 아닌가" 2009년 어느 날 언론에 보도된 김성근 감독의 발언이다. ‘선후배에 대한 위계 질서’니 ‘아래 위가 없는 것’이니 이만저만 ‘꼰대스러운’ 발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발언의 ‘맥락’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활동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2009년 선수협이 선수노조로의 전환을 추진하자 일부 선수단이 반발했고 대표자 모임이 파행으로 치달았다. 당시 김성근 감독은 "노조설립이야 아직 시기상조라고 하지만 노조설립 당시 주장했던 내용은 충분히 논의를 거쳐 얻어낼 것은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필요할 때는 선수협을 통해 다 모이더니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니 아예 모임조차 나타나지 않는 것은 문제다"라며 대표자 모임에 불참한 구단 선수들을 비판했다.
김성근 감독은 "만약 두렵고 무서워서 나오지 않았던 것이라면 그것은 구단이 너무한 처사"라면서도 "그 회의에 나온 나머지 5개팀은 바보들이라 나온 것인가. 노조를 안하는 대신 모여서 따질 건 따져서 선수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구단 선수들의 입장이 뭔지 서로 이야기하고 논의해야 한다. 공동책임감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으며 앞서 소개한 ‘선후배’ 발언은 이후 나온 것이었다.
선수협이 생겨난 지 몇 년 지나지도 않아 이권다툼에 지리멸렬하고 영향력이 제한적인 이 시기, 야구 팬덤이 추앙하는 리더가 김성근과 같은 가부장적 마인드를 가진 이란 사실에 진보주의자들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권위라 해서 반드시 부정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례에서도 보이듯, 전통적 권위 역시 사회개혁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권력에 위협이 되지 않는 이는 ‘근대인’으로 포장하고 위협이 되는 이는 ‘꼰대’로 매도하는 세태 속에서 우리는 단지 ‘꼰대’란 이유만으로 ‘어른’을 비난할 게 아니라 ‘협력할 수 있는 꼰대’와 ‘그렇지 않은 꼰대’를 가려내야만 한다.
▲ 지난 2013년 8월 1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3 프로야구 넥센과 한화의 경기. 관중석에 한화팬들이 유니폼을 걸어놓고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언젠가는 우리도 김성근과는 다른 유형의 야구계 영웅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가령 메이저리그의 마빈 밀러처럼, 선수의 권익을 신장시킨 노동운동가가 필요할 거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빈 밀러는 철강노조의 상근자 출신이었다. 한국식으로 치면 민주노총 금속노조 상근자가 선수노조의 초빙을 받아 선수노조 위원장이 된 것이다.
만일 한국 사회에서 선수 출신도 아닌 노동조합 활동가가 선수들이 만든 노조위원장이 된다면 언론보도는 어찌 나올까. 이렇게 질문한다면 그다지 진보적인 사회도 아닌 미국 사회와 한국 사회의 간극이 가늠될 것이다. 김성근에 대한 열광을 촌스러워 하는 외부인의 시선도 가능하겠지만, 막상 야구계의 발전에 관심을 쏟는다면 김성근은 너무나도 소중한 ‘어른’이다.
또, 김성근이란 장인에서 포개지는 ‘전근대’와 ‘근대’의 요소들은 한국 사회의 ‘근대’가 형성되는 방식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김성근 감독이 2천년대 후반에 만들어낸 ‘SK 왕조’는 사실상 2천년대 이후 ‘예정된 미래’인 ‘삼성 왕조’를 지연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김성근이 지연하던 ‘삼성 왕조’가 드디어 구축된 지금, 김성근은 ‘꼴지팀 한화’를 맡아 다시 프로야구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삼성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근대적인 재벌기업’이라 봐야 할 것이다. ‘근대’와 ‘재벌’을 함께 말하는 것이 형용모순으로 들리더라도 상대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삼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노조 경영’ 등으로 근대적 과제를 완전히 완수하지 못한 기업이라 봐야 할 것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꾸준한 성적에 대해선 재활 시스템과 트레이닝 센터 등 체계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삼성 왕조’는 류중일 감독 때문에 온 것은 아니었고, 류중일 정도의 리더십으로 올 수 있었던 ‘예정된 미래’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김성근의 감독 커리어를 통틀어 팀의 역량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한 유일한 사례가 삼성 라이온즈라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 한화그룹은 올 한해 전국 32곳 사회복지시설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무료로 지원하는 '해피선샤인(Happy Sunshine) 캠페인'을 펼친다고 6일 전했다. 6일 충남 아산시 음봉면 '좋은 이웃'에서 태양광 발전설비 기부증서 전달식이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화 그룹 제공) (연합뉴스)
반면 한화는 같은 식으로 따지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전근대적인 재벌기업’이라 말할 수도 있을 듯하다.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에 복귀한 경로는 김승연 회장이라는 오너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한화 그룹의 구조를 떠나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한 한화 그룹의 전근대성은 오너의 폭행사건이라는 극단적인 그림자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다른 재벌그룹에선 찾아 보기 힘든 빛의 영역도 만들어냈다. 구단의 편에 서서 선수협 결성을 결사반대한 ‘선수협 5적’은 각 팀에서 코치가 되고 ‘선수협 주축’들은 모두 트레이드된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한화 이글스에서만큼은 ‘선수협 5적’과 ‘선수협 회장’이 ‘프랜차이즈 스타’였단 이유만으로 함께 코치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두 명의 코치가 ‘김성근 사단’이 코치로 선임되면서 팀을 떠났다. 김성근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그룹의 의중의 발현이다. 그렇게, ‘근대적 훈육’을 ‘전근대적 감수성’으로 하는 가부장이자 장인, 김성근은 ‘가장 전근대적인 재벌기업’이 운영하는 한화 이글스 구단으로 복귀했다.
그러니 한국 사회의 다종다양한 아이러니를 응축하는 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김성근에 대한 야구 팬덤의 열광에서 단순히 한국 사회의 전근대성만을 읽어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제 내년부터 펼쳐질, ‘김성근 대 삼성 라이온즈’의 2차전의 결말은 어찌 될 것인가. 김성근의 전근대와 삼성의 근대, 김성근의 근대와 삼성의 전근대는 어찌 맞물릴 것인가. 열혈 야구팬이 아니라도 매우 궁금할 매치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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