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하여튼 잘 만든다. ‘사자방’, 사자가 들어있는 방인가?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체 비리를 묶어서 만든 말이라고 한다. 정치권이 이런 식의 말을 만든다는 것은 당분간 꽤 신경을 쓰겠다는 의미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열거해봐도 그런 의미라는 걸 알 수 있다. 을지로(을을 지키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는),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우고), 손가위(손톱 밑 가시 뽑기 특별위원회)…. 747이나 만사형통 등 전임 정권의 용어까지 가져온다면 그야말로 한도 끝도 없다.

‘사자방 국정조사’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만든 말이다. 즉, 우리의 제1야당은 당분간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체 비리를 물고 늘어지겠다는 거다. 새누리당은 방위산업체 비리에 대해서야 나름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스탠스로 일관하고 있다.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의 경우 자신들이 여당이던 전임 정권의 핵심 사업이니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구상은 여당의 이런 반응을 구실로 현 정권과 전임정권의 정치적 연결고리를 강조해보겠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명박 정부의 주요 사업이었던 4대강과 자원외교에 침묵하는 박근혜 정권! 역시 이명박근혜! 마침 자원외교와 관련해서는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이 문제에 상당한 책임을 갖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야당에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 더군다나 최경환 부총리는 중앙정부 재정도 어렵다며 복지 정책에 들어가는 비용을 죄다 지방정부에 떠넘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2조 투입한 기업을 200억원에 팔아놓고 무슨 재정 위기를 논하는가?

▲ 출소하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연합뉴스)

하지만 정작 긴장해야 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있다는 태도다. 일부 언론들을 보도에 따르면 자신 회고록을 만들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이는 전 정권 참모들과의 모임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걱정할 것 없다”며 낙관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민간인 사찰, 원전비리 등으로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출소했지만 일단 전임 정권의 핵심들은 별로 걱정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자신감은 물론 그들 표현대로 그들이 요직을 맡았던 시기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시기였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 측면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사례를 상기해보면 현 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전 정권 관계자들을 망신주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의 경우 워낙 방대한 규모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 부당한 이득을 챙긴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 넣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상징적인 몇 사람이 책임을 뒤집어 쓰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 ‘몇 사람’에는 최소한 박영준 전 차관과 같은 측근 및 참모들이 포함될 것이고 크게는 전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 정권이 아주 작정을 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 본인 역시도 포함될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가만히 두는 것은 정치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여당의 권력은 김무성 대표가 쥐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본래 친박 좌장 출신이지만 지금은 소위 비박계 인사들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다. ‘개헌’을 고리로 청와대와 당 지도부와 마찰을 빚고 있는 이재오 의원 등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비박’들의 주요 인사들은 이명박 정권에서는 ‘친이계’로서 상당한 기득권을 누린 바 있기 때문이다. 전임 정권을 박살내려고 하면 반드시 이들이 들고 일어나 청와대의 여당 통제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박근혜 정권에게 ‘사자방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여론이 꼭 치명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차피 전임 정권 인사들과 일정한 갈등을 겪는 건 정해진 수순이다. 차기 대권주자와 연관된 문제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야 2010년 이후 사실상 차기 대권주자로 박근혜 대통령이 낙점됐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 정권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친박계와 비박계가 각기 생존을 위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대권주자를 키우고 배출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여기에 줄을 어떻게 서느냐에 따라 2016년 공천 결과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비박계를 중심으로 오픈프라이머리 얘기가 자꾸 나오는 건 그래서다. 누가 당의 공천을 받느냐는 여의도 국회의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안 중 하나다. 서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지경이 되면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리는 것처럼 전임 정권의 아픈 부분을 다시 찔러봐야 할 수 있다.

이때 야당의 ‘요구’는 정권에 있어서는 가장 좋은 핑계가 될 수 있다. 야당이 명분과 당위를 키우면 정권은 협상을 통해 요구를 들어주는 척 하면서 여당 내 질서를 정리하면 된다. 친박계가 선호하는 차기 대권주자가 비박계를 압도하고 2016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비박계 인사들을 와해시킨 후 2017년에 정권재창출에도 성공하면 이 스토리는 완벽해진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가장 큰 성공비결이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그 과정을 다시 한 번 반복할만한 이유는 충분한 셈이다.

물론 여기에도 조건이 있다. 그건 야당과의 협상을 통해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결코 ‘밀리는’ 모양새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당은 ‘사자방 국정조사’의 요구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오히려 이런 저런 술수를 통해 프레임을 전환시키거나 여론을 위축시키는 상황 관리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여당이 ‘방위산업 비리’부터 먼저 다루자고 하는 것 역시 이를 고려한 것으로 생각된다. 즉, 당분간 사자방 문제는 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항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의 안전 보장을 위해 다양한 조치를 이미 취해놓지 않았겠냐는 소문이 떠돈다. 재임 기간 이뤄졌던 민간인 불법 사찰 등의 문제도 이 과정에서 불거진 것 아니겠냐는 게 장삼이사들이 언급하는 ‘정치소설’의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앞서도 언급했듯 전 정권과 현 정권을 옭아매는 정치적 현실에서는 빠져나갈 수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언젠가는 검찰의 신세를 지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재임시에 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 누구든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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