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헌법재판소가 작심하고 칼을 빼들었다. 선거구간 인구 편차를 3 대 1까지 허용하는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 제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이는 2016년 총선이 2012년 총선과 같은 방법으로는 치러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후 정치권을 중심으로 소선거구제, 중대선거구제, 정당명부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 여러 가지 제도에 대한 논의가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유권자들은 이 논의의 정치적·정략적 함의를 알기는 쉽지 않다. 이에 <미디어스>는 각 선거제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3회에 걸쳐 정리해보도록 한다.
한국의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를 기반으로 전국단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다소 혼합되어 있다” 정도로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그렇다 치고,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란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말을 단순히 감으로 알아들을 것이 아니라 명료하게 인지해야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소선거구제가 무엇인지 알기는 쉽다. 한 선거구에서 1명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상황을 소선거구제라고 부른다. 2~4명을 선출하면 중선거구제, 5명 이상을 선출하면 대선거구제가 된다. 우리는 소선거구제를 시행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 논의는 ‘소선거구제(현행) vs 중대선거구제’(개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단순다수대표제란 말은 무슨 뜻일까? 이 말은 직관적으로 잘 와닿지 않는다. 그러니 먼저 ‘다수대표’와 ‘소수대표’를 비교하고 다음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30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선거구 획정과 관련한 공직선거법 25조 등의 위헌확인 헌법소원 사건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입장해 있다. (연합뉴스)
소선거구제는 필연적으로 다수대표를 함의하고, 대선거구제는 소수대표의 취지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게 된다. 말하자면 이렇다. 소선거구제에선 지난 대선처럼(대선은 무조건 단일선거구일 수밖에 없는 선거다) 51대 49의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51만 대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수대표’다. 반면 대선거구제의 경우 가령 35, 25, 20, 15, 5의 여론지형이 형성되었고 이 선거구에서 5명을 뽑을 경우 다섯 명이 모두 당선될 수 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완벽하지는 않지만 소수대표의 취지를 어느 정도 구현한다. 반면 '다수'와 '소수'의 차이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유권자의 의사를 왜곡했다는 단점을 지닌다.
그렇다면 ‘단순다수대표제’란 말은 무엇인가. 줄여서 ‘단순다수제’라고도 부르는 이 말의 반대말은 ‘절대다수제’다. 소선거구제의 경우 후보가 난립하면 ‘다수’의 개념을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앞서 말한 것처럼 35, 25, 20, 15, 5의 여론지형이 있을 경우 그저 최대득표자인 35의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이 ‘단순다수대표제’다. 지금의 우리의 방식이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에 너무나도 익숙하기에, “그렇다면 소선거구제 하에서 다른 방식도 있는가?”란 질문이 떠오를 수 있다. ‘절대다수대표제’는 어쨌든 한 후보가 51엔 도달해야 승자로 인정한다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선 진보진영에서 대통령 선거에 주로 요구하는 결선투표제와 같은 것이 필요하다. 물론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는 것은 한국 실정에서 상상하기 어렵겠으나, 프랑스 등은 총선에서도 절대다수투표제의 취지에 근접하기 위해 ‘소선거구 2회 투표제’를 실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 외에 투표를 거듭 실시하지 않고도 단순다수대표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변칙적인 제도도 있다. 가령 호주에서 실시된다고 알려진 선호투표제가 그것이다. 선호투표제의 원리는 이렇다. 다섯 명의 후보가 출마했다면 후보 다섯 명에 대해 유권자들이 순위를 매긴다. 1위 후보가 과반수를 얻지 못했을 경우, 꼴찌 후보를 탈락시키고 꼴찌 후보의 지지자들이 2위로 기표한 표를 나머지 후보들에게 나눠준다. 또 1위 후보가 과반수를 얻지 못했을 경우, 4위 후보를 탈락시키고 다시 한 번 그 작업을 진행한다. 결국 차선호, 차차선호 투표를 합해서라도 과반수를 얻게 된 후보가 승리한다. 이 제도는 ‘절대다수대표제’와 ‘단순다수대표제’의 사이쯤에 있다고 해서 ‘상대다수대표제’라 불리기도 한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30일 국회에서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획정 헌법불합치' 판결과 관련해 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현실로 돌아와 보자. 한국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있지만 그 비율이 아직은 높지 않다.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를 기본으로 두고 각 정치세력의 이해득실을 따져보자.
현행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가 강력하게 유지되는 선거구제 개편을 가장 원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단연 충청권 유권자들이라 봐야 할 것이다. 선거구간 인구 편차를 1대 2로 줄이는 방향으로 선거구를 개편할 경우, 영남, 호남, 강원 등의 지역에서 지역구가 줄어들고 서울·경기 등 수도권과 충청 지역의 지역구가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왜 수도권 유권자는 아닌 충청도 유권자가 좋아하게 되는가. 충청도 유권자들이 원하는 건 자신들이 몫이 더 늘어나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합심하여 이 지역을 향해 구애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야당 일각의 주장대로 중대선거구제가 실시될 경우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손쉽게 1, 2위로 의석을 분할할 수 있어 충청도 유권자들이 원하는 그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충청권 유권자들은 충청지역 의석이 늘어나는 단순한 조정을 바랄 뿐 중대선거구제 실시 등은 바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31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현행 3대1에서 2대1 이하로 변경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과 관련, 국회에 정치개혁특위를 즉각 가동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수도권 유권자들은 대체로 수도권 전체의 지역적 힘보다는 중도파의 정치성향이나 정치개혁 의제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개별 지역에서야 지역주의 성향도 가지지만(그 지역 후보 선호), 서울·경기가 뭉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분열되어 있기에 전체 의석 중 의석수 비중에 대한 관심은 덜하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떨까. 정치세력의 측면에서 이해관계가 단일하지 않다. 영호남 지역 텃밭에서 의원생활하거나 의원 도전을 누리던 이들은 ‘파이’가 줄어들었고, 수도권 지역은 ‘파이’가 늘어났다. 헌법재판소가 입법권고를 했음에도 이십여년 동안 의원들이 합의를 보지 못한 것도 이해관계가 조정이 안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에 대해선 입장이 어떨까. 새누리당은 ‘판단 유보’ 정도로 보이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나쁠 것 없다’는 입장일 것이다.
한편 흔한 예상과는 달리 정의당·통진당 등 원내진보정당과 노동당·녹색당 등 원외진보정당들은 의원수 증원이 전제되지 않은 중대선거구제에는 딱히 찬성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왜냐하면 충분한 숫자의 비례대표가 동반되지 않은 중대선거구제의 폐해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번엔 이 부분을 추적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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