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은 중요하다. 세상에는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다. 리더십이 없는 사람이 리더의 위치에 있다면 그 조직은 반드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일상 생활에서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리더의 위치에 가더니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해 조직 전체를 위기로 몰고 가버렸다는 식의 경험담을 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리더십의 유무는 어떤 ‘유능함’과도 다른 문제다. 오로지 혼자 하는 일에 익숙하고 탁월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서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해도 남들의 위에 서면 그 가치가 빛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에게 리더의 자리를 맡기기 위해선 이러한 리더십의 유무를 따로 평가하는 과정을 거쳐야 결과가 좋다.

단지 리더십의 유무를 평가해서 알맞은 리더를 고를 수 있다면 우리는 덜 복잡하게 살아도 될 것이다. 문제는 리더십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특정 리더십이 알맞는 자리에서 발휘되지 않으면 또 조직에 해를 입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거의 독재자에 가까운 리더십을 잘 발휘하는 사람이 합의를 이루는 게 중요한 집단지도체제의 일원이 된다면 그 지도부는 자기들끼리 갈등을 주고 받다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혼자서 어떤 결정을 주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강력한 권한을 가진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된다면 조직이 사실상 반쯤 마비될 수 있다. 알맞은 자리에 알맞은 리더십이 구축돼야 한다는 건 아주 당연한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란 자리에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 우리나라 대통령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가와 정부의 수반으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다. 우리의 대통령은 남다른 추진력을 갖춰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추진력이 민주주의적 원칙을 거스르지 못하도록 자제력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줄타기를 잘 해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우리나라 대통령 자리에 맡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을 비호하는데 열심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조선일보>는 3일 <군 최전방 사령관 문제를 어떻게 이렇게 다루나>라는 제목이 사설을 지면에 배치했다. 국방부가 지난 9월 2일 신현돈 육군 1군사령관을 추문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전역조치 했는데 이것이 잘못된 결정이라는 지적을 제기한 것이다.

▲ 신현돈 전 육군 1군사령관. (연합뉴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한 민간인은 지난 6월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그의 추태를 목격하고 수도방위사령부에 신고했다. 전투화를 대충 신고 술에 취해 헌병에게 업히는가 하면 화장실 앞에서 민간인과 충돌을 빚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의 조사에 의하면 신현돈 전 사령관은 단지 바지 밖으로 내어 입는 신형전투복을 입고 있었을 뿐 복장이 흐트러지거나 민간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등의 추태를 벌이지 않았다. 음주를 했고 근무지를 벗어난 것에 대해서도 상부에 미리 보고하고 승인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국방부는 내부적 차원에서 사태를 잘 마무리지으려고 했지만 대통령이 석 달 만에 뒤늦게 화를 내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국방부는 4성 장군이 관련된 일을 진상이 무엇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있다가 나중에 대통령이 한마디 하자 막바로 전역 조치를 내려버렸다”면서 “군의 최전방 방어 책임자가 아무리 상관의 허락을 받았다고 해도 대통령 부재 중에 관할구역을 벗어나고 술까지 마신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최전방 사령관의 문제를 자초지종을 확인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옷부터 벗긴 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주체로 군을 겨냥하고 있지만 위의 맥락에 따르면 오히려 국방부를 믿지 못하고 화부터 낸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 문제다.

이날 언론을 통해 문제가 된 대통령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이것 하나만이 아니다. <중앙일보>는 이날 <애기봉 문제에서 드러난 군 지휘체계 난맥상>이란 제목의 사설을 배치했다. 그간 북한이 대북 심리전 시설물이라며 철거를 주장하며 포격을 가하기도 해 첨예한 대립의 대상이 된 애기봉 등탑이 지난달 중순 안전문제로 철거되는 과정에서 관계부처의 협의를 전혀 거치지 않고 해병대 사령관 수준에서 보고가 완료된 사실이 문제가 된 것이다.

▲ 지난 2012년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점등된 애기봉 등탑. (연합뉴스)

재미있는 것은 이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반응이다. 지난 30일 <한국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애기봉 등탑 철거에 관한 언론보도를 보고받은 뒤 “왜 등탑을 없앴느냐, 도대체 누가 결정했느냐”면서 화를 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의 호통으로 애기봉 등탑 철거 문제는 남북관계의 갈등요소라는 차원에서 갑자기 군 지휘체계의 난맥상에 관한 문제로 변모했다. 심지어 해병대가 국방부에 보고를 했는지, 이에 대한 논의를 어느 선까지 진행했는지 등에 대한 진실게임 양상도 벌어지고 있다. 등탑의 실질적인 주인(?)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등탑을 다시 세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북관계가 어려움에 빠진 마당에 북한이 반발하는 시설물을 굳이 다시 세우는 것은 새로운 논란에 휘말릴 소지가 있다. 얼마든지 조용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이렇게 큰 문제로 만드는 게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동아일보>는 오늘자 지면에 <청와대, 정윤회 같은 대통령 측근 관리 제대로 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 만났다는 역술인 이모씨가 아무래도 의심스러운 발언을 하고 다닌다는 보도를 문제삼은 것이다. 역술인 이모씨는 “박근혜 대통령과 자주 통화한다. 정윤회는 내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한다”며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가 그렇잖아도 ‘비선’ 의혹까지 받는 정윤회씨의 처신에 대해 무슨 조치를 취했다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보도된 바 없다. 4성장군의 음주와 애기봉 등탑 철거에는 화가 나지만 자기 측근을 둘러싼 추문에는 귀를 닫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게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적절한 리더십은 국정 운영에도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여야는 정부조직법 협상에서 해양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의 존치 여부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였다. 여당은 어떻게든 이 두 조직이 ‘외청’의 형태로 유지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야당은 어떤 형식이든 이 조직들의 독자적 권한과 인사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의 주장은 안전문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여당의 주장은 선뜻 이해하기가 어렵다.

▲ 박근혜 대통령이 31일 오후 청와대에서 임근형 주 헝가리 대사(왼쪽) 등 14명의 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당이 굳이 소방 및 해경 공무원들을 불안에 떨게 하면서까지 국민안전처로의 재난 관리 일원화를 시도하는 것은 대통령이 ‘해경 해체’를 주문하고 총리실 산하 재난대책기구에 재난 발생시 장관급 권한을 주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벼락과 같은 주문은 그 정당성이나 합목적성을 재고해볼 시간적 여유도 없이 그대로 현실이 되고 있다. 이것이 대통령의 ‘황소와 같은 추진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나마도 다행이지만 호통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여당과 관료들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왕’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왕인가? 이런 질문에 ‘아니다’라는 분명한 답을 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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