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보수 세력에게 북한은 양극단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쪽에선 마치 북한 정권이 이쪽에서 약간만 더 압박을 가하면 금방 무너질 허약한 모습을 그린다. 또 북한 정권이 그렇게 붕괴될 경우 ‘중국 변수’는 생각도 하지 않고, 감이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져 굳이 사람의 입으로 돌진하듯 북한 전역이 대한민국의 것이 될 거라는 ‘장밋빛 망상’의 나래를 펼친다.

한편으론 여전히 북한 정권이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막강한 군사력의 주체로 상상된다. 무인기나 잠수함이나 뭐가 하나 발견될 때마다 북한의 핵전력이 남한과 일본, 그리고 미국 본토까지 공격하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호들갑이 펼쳐진다. 이 지점에선 한국 보수 세력의 정세판단이 그들이 그렇게 증오하는 ‘이석기 일당’의 그것과 포개지는 측면조차 있다.

물론 이러한 양면적인 평가는 “그들은 군사력은 막강하지만, 정치적 기반은 취약하다”고 설명하면서 어느 정도 양립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그것 역시 힘들다. 어찌됐건 만약 전면전이 시작하기만 하면 북한 정권이 무너질 거라는 것이 이쪽에선 상식이 되어 있다. 군사력으로도 결국 한미연합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그 인민들이 그 가혹한 정권을 위해 결사투쟁할 만한 엄정한 군기를 가지고 있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군사력은 군사과학기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3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그러나 어느쪽이든 보수세력의 판단은 바뀌지 않는다. 그들이 북한을 허약한 집단으로 묘사할 때, 그리하여 이 ‘악의 제국’은 금세 쓰러질 수 있으므로 북과의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이들은 ‘악의 제국’의 부역자가 된다.
그렇다면 북한이 막강한 집단일 때엔 어찌 될까? 그들이 금세 붕괴할 전망이 없다면, 그들과 군사·안보적으로 적절히 타협하면서 경제적·인도적 지원을 하여 ‘악의 제국’의 인민의 삶을 조금이라도 돌보는 게 나은 일이 아닐까? 그러나 보수세력은 그럴 경우라도 이 ‘악의 제국’에 대한 증오심을 키울 뿐 결코 그런 판단을 하지 않는다. 햇볕정책 등 교류협력이 망해야 할 ‘악의 제국’을 장기존속시켰다고 우길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남북대화는 왜 하자고 하는가? 세계적으로 냉전이 종결되기 사반세기가 지났건만 한국 보수의 냉전적 태도엔 변화가 없다. 냉전이 종결되기 이전에도 이미 미국은 상대진영을 절멸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포기하고 중국과 교류하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이런 상황에선 남북대화도 우리가 전쟁이나 현상유지를 원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핑계일 뿐이다.
1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이 “어떤 북남 대화도 없을 것"이라 성명을 발표한 데에 대한 보수언론 반응도 그렇다. 박근혜 정부의 무력한 대응에 대한 얘기보다 북한에 대한 비난이 앞선다. 언제나 북한을 비난하면 될 일이라면, 대북‘정책’이란 것도 필요없을 텐데도 그렇게 한다.
3일 <조선일보>는 사설 제목을 <결국 北의 목표는 대화가 아니라 대북 전단이었다>로 달았다. <조선일보> 사설은 “북 정권이 전단, 확성기, 등탑 등에 대해 갖는 위기의식은 우리의 생각 이상이라고 한다. 한 사람을 신(神)으로 떠받드는 체제에서 그 신을 비판한 전단이 북한 전역으로 퍼지는 것은 북 체제에 우리 짐작을 넘는 부담과 압박을 가하고 있다. 북은 과거 남북대화에서 이를 막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확성기 방송 중단이란 '성과'를 얻었고, 이제는 전단을 막는 데에 총력을 쏟고 있다. 북 실세 3인방의 전격 인천 방문도 전단을 극적으로 이슈화하기 위한 사전 무대 장치였을 뿐이라는 분석이 점점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조선일보> 사설은 “북 실세들의 출현 이후 우리 내부에선 남북 관계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그러다 북측이 전단 시비를 걸고 나오자 전단에 대한 찬반으로 갈라져 물리적 충돌까지 벌였다. 북측의 계산은 상당 부분 맞아떨어졌다. 그렇다고 대화를 포기하고 남북 관계를 이 상태로 계속 끌고 갈 수는 없다는 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전단을 막을 법적 근거도 없지만, 전단 살포 지역 주민의 걱정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사설에 등장하는 북한은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약한 북한’이다.
한편 같은 날 <동아일보>는 3면 상단에 <‘은밀한 타격’ SLBM, 南에 치명적 위협>이란 제목의 기사를 크게 게재했다. <동아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북한이 새 잠수함을 진수했다고 군 당국자가 2일 공식 확인했다. 최근 국내외 전문가들이 제기했던 북한 신형 잠수함의 존재를 정부가 공식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전했다.
▲ 3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
또 <동아일보> 기사는 “북한은 올해 들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을 실시하는 등 잠수함 전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이 핵 소형화와 함께 SLBM 기술을 완료하고 이를 장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잠수함 개발에 성공할 경우 우리 안보에 치명적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북한은 우습게도 우리의 안보를 걱정해야 하는 ‘강한 북한’이다.
같은 날 보수언론 둘이서 ‘약한 북한’과 ‘강한 북한’을 동시에 제시하는 것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북한군 전력향상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다. 그런데 대체 어떤 부분이 위협인지도 구체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가령 지난 6월 30일자 <주간동아> 944호에 실린 <북한 신형무기 잇단 공개 ‘反상륙전’ 능력 과시>란 제목의 기사에선 전혀 다른 얘기가 나온다. 이 기사에선 최근 북한의 무기개발 흐름에 대해 “군사전략 차원에서 따져보면 최근 공개된 무기체계들은 주로 해상전, 그중에서도 특히 상대의 상륙을 저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른바 ‘반(反)상륙전’이다. 강력한 함대함 크루즈미사일과 잠수함 전력으로 유사시 해안에 접근하는 상륙전단을 격파하고, 이들을 호위하는 상대의 잠수함 전력은 새로 배치한 프리깃함의 헬기로 차단하는 작전이 가능하기 때문. 쉽게 말해 한반도 유사시 동해와 서해에 상륙할 한미연합군 전력을 막아내겠다는 의도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해당 기사는 이어서 “앞서의 신형 무기체계는 평양 역시 이러한 고민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보복응징을 가하는 일은 핵무기로 충분히 가능해졌으므로, 재래식 전력은 주로 한미연합군의 상륙이나 진격을 저지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역할 분담이다. 엄청난 희생 없이 북한 영토를 지상군으로 점령하는 일이 불가능해지면, 북한은 전쟁이 벌어진 후에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 걸프전이 끝난 뒤에도 살아남았던 이라크의 후세인 체제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 3일자 동아일보 3면 기사
또 해당 기사는 한 전직 군 정보당국 고위관계자의 말을 빌려 ““문제는 만약 북한의 군사전략이 이렇게 ‘진화’할 경우 한국의 처지가 한층 곤혹스러워진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1990년대 이후 워싱턴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 지상전력 투입을 최소화한다는 기조를 견지해왔다. 미국이 상륙작전의 대규모 피해를 우려해 주저한다면, 한국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북한 정권이 계속 존속하는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즉, 북한군의 전력이 강화되는 상황은 ‘도발’을 넘어 설령 전쟁이 발생할 경우라도 한국군 전력 수십만을 희생할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한미연합군에 의해 정권이 붕괴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 이 신문의 분석이다. 이 분석이 옳다면 오히려 군사전략에 의한 북한 정권 붕괴를 만들어내기는 어렵기에, 남북대화의 필요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고민이 없이 신형무기가 나타나면 그게 세상 어느 곳이나 타격할 수 있는 것처럼 겁을 주어 예산을 따내고 무기나 사오는 것이 한국의 국방이었다. 또 그렇게 많은 무기를 샀음에도 정작 정보능력이 없어 전시잔적권 회수를 연기했던 것이 한국의 국방이었다.
그럼에도, 자력으로 획득한 것 같지도 않은 정보를 남북대화 경색 국면에 흘려 ‘언론 플레이’나 하는 것이 한국 정부겠고, 그 ‘언플’에 놀아나는 것이 보수언론이겠다. 안보, 안보 외치는데 안보에 대한 고민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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