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작심하고 칼을 빼들었다. 선거구간 인구 편차를 3 대 1까지 허용하는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 제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헌재는 지난 20년간 선거구간 인구 편차 기준을 꾸준히 강화해왔다. 1995년에는 4 대 1 기준을 제시했고, 2001년에는 3 대 1로 기준을 강화했다. 2001년 판결문에서도 “2 대 1이 바람직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장래에 입법 등의 형태로 인구 편차 기준은 2 대 1로 바꿔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리고 정치권이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13년 동안 입법을 하지 못하자 스스로 ‘차원의 문’을 열어젖혔다.
헌재는 판결문에서 우리나라가 택하고 있는 단원제 및 소선거구제에서는 사표가 많이 발생하는데, 인구 편차가 높을 경우 인구가 적은 지역구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이 획득한 투표수보다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낙선된 후보자가 획득한 투표수가 많은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는 대의민주주의 관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와 같은 주장은 즉각적으로 정치개혁 논의를 불러들인다. 단지 인구가 줄어든 곳의 지역구를 줄이고 인구가 늘어난 곳의 지역구를 늘리는 것을 넘어 좀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제도를 바꾸자는 이들이 나타나게 된다. “우리나라가 택하고 있는 단원제 및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근절하자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 31일자 동아일보 2면 기사
신문 보도들 역시 정치권의 그러한 움직임을 반영한다. 이 점에 대해 보수언론 중 가장 다채로운 보도를 한 신문사는 <동아일보>였다. 31일 <동아일보>는 2면 기사 <20대 총선 빅뱅… 야권 “이참에 중선거구제 도입” 목소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이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서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도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기사는 중대선거구제에 대해 “소선거구제는 지금의 거대 양당제를 받치고 있는 기둥이다. 만약 소선거구제에 변화가 생긴다면 이는 양당제의 파괴, 제3정치세력의 출현을 의미한다는 지적이 많다”고 전했다.
또 <동아일보>는 “일각에서는 개헌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헌재의 결정이 양당체제와 소선거구제, 그리고 87년 체제로 대표되는 현 대통령제에 대한 ‘이의 제기’로 볼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라고도 전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 역시 5면 기사 <“이참에 소선거구제→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논의를”>에서 “헌재 결정이 어쩌면 87년 이후 30년 가까이 유지돼온 대한민국 선거제도에 변화를 몰고올 수도 있는 분위기”라면서, “지역구 한두 개 줄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수십 개를 조정하는 게 가능하겠나. 이번 기회에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다”라는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의 발언을 소개했다.
▲ 31일자 한겨레 2면 기사
보수언론이 제목에 ‘중대선거구제’만 달았다면 중도 내지 진보성향 언론들은 여기에 더해 ‘정당명부제’나 ‘비례대표제’를 추가적으로 삽입했다. 31일 <한국일보> 3면 기사의 제목은 <중대선거구제·정당명부제까지 거론… 정치권 ‘선거구 블랙홀’>이었고, <한겨레> 2면 기사 제목은 <중대선거구제·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정치개혁 논의 계기로 삼아야”>였으며, <경향신문> 4면 기사 제목은 <중대선거구제·정당명부제 등 개편논의 봇물>이었다.
이는 보수언론들의 관심사가 주로 새누리당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사이에 머무른다면, 중도 및 진보언론들의 시선은 군소 진보정당들까지 향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겨레>와 <경향신문> 기사엔 정의당과 심상정 의원이 등장했다. <한겨레> 기사는 “ 정의당은 이참에 선거구마다 의원을 1명씩 뽑는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라면서,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가 헌재 결정 즉시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구 전면 조정은 정치의 변화를 요구하는 헌법의 명령”이라며 “거대 양당 체제의 기득권을 강화해온 제도적 기반인 소선거구제는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선거구 조정과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에 조속히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하자”고 밝혔다고 전했다.
또 <경향신문> 기사는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의 기자회견 내용 중 “소선거구제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국민 의사가 사표가 된다”면서 “구체적으로 비례대표 확대를 거론했다”고 해설했다. 하지만 <경향신문> 기사에선 중대선거구제에 대해 “하지만 일본·대만 사례를 보면 10% 미만 지지율로 당선되는 후보가 생기는 등 대표성 문제가 소선거구제보다 더 심각하다는 반론도 있다. 거대 양당에서 낸 복수 후보들만 당선될 경우 ‘그들만의 리그’가 될 개연성도 크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 31일자 경향신문 4면에 실린 사진
이어서 <경향신문> 기사는 “정의당·통합진보당 등 소수 정당은 대안으로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지 않고 정당만 선택한 뒤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원을 뽑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구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 포기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행 제도에서 비례대표 비중을 대폭 확대하는 ‘혼합형 비례대표제’가 대안으로 거론된다”고 전했다. 실제로 진보정당들은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하지만, 이를 위해선 비례대표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선거구제 개편안은 얼핏 생각하면 그 언론의 정치성과 상관없이 이슈 중심으로 보도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사안에서도 각 신문사의 정치성향 내지는 관심사가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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