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자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보상 문제에 대한 신속한 합의에 이른 판교 참사 유족들을 칭찬했다. <조선일보>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 사고 유가족이 사고 발생 57시간 만인 20일 오전 3시 성남시와 사망자 보상 문제에 합의한 것에 대해 <판교 유족들, 상식과 順理로 '참사 뒤처리' 풀었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격려했다.

<조선일보>는 위 사설에서 “이제 우리 사회도 대형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이해 당사자들이 억지와 생떼를 버리고 상식과 순리에 따라 뒤처리를 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판교 유족들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또 <조선일보> 사설은 “그동안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유가족들은 보상 문제를 놓고 당국과 대립하곤 했다. 유가족들은 피해자들의 나이·소득에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보상액을 미리 정한 뒤 줄다리기하거나 통상적인 기준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요구하기 일쑤였다.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합동분향소를 차려 놓고 장례를 미루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 했다. 자기 잘못이나 법 규정 같은 것은 아예 못 본 체하고 책임을 정부나 기업에 떠넘기며 무작정 보상금을 더 달라고 떼를 쓰는 일이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외부(外部) 세력이 끼어들어 분란을 부채질했고 결국 사회 전체가 이편저편으로 갈려 싸우는 갈등을 불러오곤 했다”라고 주장했다.
▲ 21일자 조선일보 12면 기사
그러나 <조선일보> 사설은 대형 참사 이후 있었던 사회적 갈등의 책임을 유족들의 행태에 돌렸다는 점에서 큰 문제다. ‘외부 세력’ 운운하며 참사 이후 사회적 갈등이 정치화되는 것 자체를 비판했다는 점에서 반정치적이며, 참사의 진실 규명 문제를 ‘자기 잘못’과 ‘보상금’의 문제로 국한하려 했단 점에서 <조선일보>의 속내를 드러냈다.
<조선일보>의 사설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욕보였다. 실제로 이 사설에 대한 100자평을 보면 세월호 참사 유족과 새정치민주연합을 비판하는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굳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러니까 순수하게 사고 이후 보상금 협상의 문제로만 바라본다 하더라도,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합동분향소를 차려 놓고 장례를 미루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 했다”거나 “자기 잘못이나 법 규정 같은 것은 아예 못 본 체하고 책임을 정부나 기업에 떠넘기며 무작정 보상금을 더 달라고 떼를 쓰는 일이 이어졌다”와 같은 서술들은 그 자체로 문제가 많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해당사자의 견해가 충돌하고 의견이 조정되는 과정 자체를 피곤해 하는 기색이 역력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정부의 세무조사나 비판을 언론탄압이라 치장한 바 있는데, 이를 남들이 ‘세금을 안 내겠다는 생떼’나 ‘비판을 안 받겠다는 생떼’라고 기술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 21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자기 잘못’ 운운한 것은 피해자들의 책임을 강조한 전날의 <조선일보> 사설과도 연관된다. <조선일보>는 <환풍구 붕괴, '生命 존중'이 이토록 빈약한 나라로 머물 건가>란 제목의 20일자 사설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안전 불감증(不感症)의 수렁에서 살아남으려면 각자가 모두 제자리에서 자기 목숨을 챙기는 '안전 우선(Safety First) 행동'을 하는 수밖에 없게 됐다”라고 개탄한 바 있다.
이 개탄 뒤에는 참사 피해자들이 환풍구에 올라간 행위 자체를 나무라는 시선이 있다. 환풍구가 올라가도 되는 곳인지 아닌지를 누구도 알려주지 않고, 사람이 올라가면 무너질 수 있는 환풍구가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높이로 설계된 구조적 문제를 <조선일보> 역시 신문 지면에서 지적하면서도 나무람이 그치지 않는다. 21일자 사설의 100자평에는 “피해자들의 잘못이 명백해서 수월하게 합의했다”는 견해도 있다.
▲ 21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10월 21일은 성수대교 붕괴 참사 20주년이었다. 이날 <조선일보>는 <한겨레>와 함께 1면에서 20년 전의 그 사고를 다시 조명했다. 그 후 20년, 사회가 여전히 이런 것이 대형 참사 피해 유가족들의 책임이라고는 <조선일보>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족들과의 보상금 합의가 지연되는 것이 과연 중아일간지가 눈살을 찌푸리며 지적할 만한 사안인지에 대해 <조선일보>는 답해야 한다.
또 보상금이 아니라 진실규명을 위한 요구를 한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 “피해당사자가 가해자를 단죄하는 일은 불가하다”라고 부르짖었으면서도 ‘외부 세력’의 개입에는 반대하는 모순도 해명해야 한다.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당사자’도 안 되고 ‘외부 세력’도 안 된다면 진실규명이나 책임자처벌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을 일이다. <조선일보>와 같은 언론이 개인 책임만 묻고 외부 세력은 들어오지 말라고 깽판을 치는 한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안전 불감증(不感症)의 수렁에서 살아남으려면 각자가 모두 제자리에서 자기 목숨을 챙기는 '안전 우선(Safety First) 행동'을 하는 수밖에 없게 됐다”라는 개탄을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조선일보>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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