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돌아왔다. 김정은이 돌아왔다고만 하는 것은 사실 호칭부터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이 쓰는 김정은의 호칭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조선노동당 제1비서’이다. 이는 북한의 관영언론인 조선중앙방송이 “조선노동당 제1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라며 ‘조선노동당 제1비서’를 맨 앞에 호칭하는 것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다. 이는 선대인 김정일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으로 호칭된 것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 온갖 의혹을 잠재우며 40일 만에 등장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팡이를 짚고 공개 활동을 하는 사진이 14일 공개됐다. 조선중앙TV는 이날 김 제1위원장이 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 현지 지도하면서 지팡이를 짚고 앉아있거나 걷는 사진 여러장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북한 체제를 말할때 흔히 당(黨)·정(政)·군(軍)의 삼분체계를 말한다.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당직(黨職)이다. 정확히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에 있는 비서국의 수장이다. 비서국 아래에는 각 전문부서와 시도당 위원회가 있는데, 종종 언론에 ‘도당 책임비서’니 하며 인용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시도당 위원회의 비서들이다. 즉,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라는 표현은 이러한 모든 당 책임자들의 우두머리를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놀랍게도 북한은 정부보다 당이 우선하는 나라다. 북한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는 혁명으로 건국을 하였다고 믿고 있으므로 혁명의 주체인 당이 헌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헌법보다 조선노동당 규약이 더 위에 있다. 과거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카운터파트너로 김양건 조선노동당 비서를 요구한 것에 대해 북한이 난색을 표한 것도 이런 이유다. 따라서 굳이 이름 뒤에 호칭을 붙여주자면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로 불러주는 게 옳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면 김정일의 예는 어떨까? 김정일도 ‘조선노동당 총비서’라는 당직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김정일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의 핵심전문부서인 조직지도부장을 겸하였다. 하지만 언론은 ‘김정일 총비서’라고 부르기보다는 앞서 언급한대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으로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김정일 시대에 국방위원회가 가진 특수한 역할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김정일 시대의 국방위원회는 ‘선군정치’를 지도하는 기구다. 애초 국방위원회는 애초 중앙인민위원회 산하에 있었으나 이런 특별한 지위를 반영하여 독립기구화 됐다. 2009년 헌법개정에서 국방위원장이 국가의 사업 전반을 지도하고 외국과의 중요 조약을 비준, 폐기하며 특사권을 행사한다는 규정이 신설되었으므로 국방위원회의 위원장이 사실상의 정부 수반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 공식화됐다.

그런 맥락을 따지면 북한의 조선노동당이 혁명을 했다는 사실은 자기들끼리만 인정하면 되는 것이니 국제적 기준을 따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라고 불러줘야 옳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중국도 북한처럼 당이 국가에 우선하는 체계인데 시진핑을 국가주석으로 호칭해주는 것과 같은 원리다. 시진핑은 당직으로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와 국가중앙군사위원회를 지도하는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주석을 갖고 있다.

▲ 온갖 의혹을 잠재우며 40일 만에 등장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팡이를 사용하는 모습의 사진이 14일 공개됐다. 노동신문은 이날 1∼3면에 김 제1위원장의 위성과학자주택지구 현지시찰 사진을 공개했는데, 신문 1면에는 그가 지팡이를 짚고 앉아있거나 걷는 모습의 사진이 여러 장 실렸다. (연합뉴스)

그런데 김정은 시대는 선군정치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군정치를 전면에 밀어붙이는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김정은 시대는 김정일 시대에 선군정치를 하느라 무시당했던 당 중심의 체계를 복원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정 운영도 국방위원회를 통하기 보다는 박봉주 총리를 중심으로 한 내각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체제를 변화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기가 불러달라는대로 불러주는 게 남을 부를 때의 매너라는 점을 생각하면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지금의 남북관계 상황에서 김정은에게 당신을 무어라고 불러야 하냐고 직접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다. 이래저래 호칭에 대한 언론의 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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