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북한이 대북 전단 삐라를 향해 발포하고 우리 군이 대응사격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대북 전단 문제가 새로이 한국 사회에서 이슈가 되었다. 보수언론은 이에 대해 ‘남남갈등’을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 13일자 동아일보 4면 기사
특히 최근 대북문제에 관한 한 가장 강경했던 <동아일보>는 13일 사설을 <대북 전단 놓고 北 의도대로 南南갈등 벌일 건가>이란 제목으로 가져가 대북 전단 살포를 비판하는 시선을 경계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이번 사태의 본질은 북의 도발이지, 대북 전단 살포가 아니다”라면서, “어쨌든 우리가 북을 자극하는 일은 가능한 한 안 하는 게 좋겠다”라고 말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신중치 못했다”라고 비판했다.
▲ 13일자 동아일보 4면 기사
또 <동아일보> 사설은 “대북 전단은 밀폐된 북에 자유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외부정보 유입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라면서, “북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감춰진 진실이 북 내부에 확산돼 체제에 균열이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그 예시로 “일부 전단에 1989년 밀입북 후 수감됐던 임수경이 ‘감옥귀신’이 되지 않고 국회의원이 됐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도 그렇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임 의원은 전단 살포를 비판했지만 ‘통일의 꽃’으로 북에 널리 알려진 그의 소식을 북 주민들이 접하면 신선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라고 설명하면서, “다만 민간단체들이 북에 빌미를 주지 않도록 심야에 풍선을 날리는 등의 전략적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동아일보> 지면은 4면에 <“삐라 읽고 탈북결심” 파괴력 크지만 평양까지 보낼 南風 만나기 어려워>란 제목의 기사를 싣는 등 대북 전단 살포의 정당성을 강조하는데 주력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동아일보>와 비슷한 논조이면서도 다소 신중한 모습이었다. 이날 <조선일보>는 <對北 전단 살포가 '南南 갈등' 불씨 되지 않도록 해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한때 긴급 대피했던 경기도 연천군 주민들이 11일 탈북자 단체의 출입을 가로막는 일이 벌어졌다”는 상황을 전하면서 “연평도 민가(民家)까지 무차별 포격한 북의 호전성(好戰性)을 감안할 때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을 탓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이어서 <조선일보> 사설은 “그러나 상당수 탈북자들은 우리 측에서 보낸 전단을 통해 처음으로 6·25가 남침(南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김씨 왕조의 허구,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처음 접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이 두려워서 김씨 왕조의 폭압 아래 바깥세상과 단절돼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라며 대북 전단 살포를 옹호했다.
▲ 13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그러나 <조선일보> 사설은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이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일부 문제를 제기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지난 10일엔 다른 탈북자 단체가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 주차장에서 대대적인 전단 풍선 보내기 행사를 열었다. 사전 예고까지 한 상태라 20여개 국내외 언론사가 취재 경쟁을 벌였을 정도다. 이 같은 보여주기식 행사는 불필요한 갈등과 논란만 키울 뿐이다”라면서, “대북 전단이 북한 주민에게 진실을 알리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남남(南南) 갈등의 소재가 되고 일부 단체의 홍보 행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대북 전단 살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는지의 문제는 몇 가지 논점이 중첩되는 복잡다단한 문제다. 얼핏 생각해봐도 한국 시민의 ‘표현의 자유’의 한계, 북한 주민의 ‘알 권리’, 접경 지역의 ‘주민 보호’, 국가 안보정책 등의 상이한 가치들이 충돌하는 문제다.
▲ 13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13일 정부는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전단 살포에 대해 정부가 강제적으로 제한할 법적 근거나 관련 규정이 없기에 민간단체가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추진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한 상태다.
그러나 관련 법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정부의 입장은 상당히 자의적이다. 풍선에 들어가는 전단지의 무게는 3kg 정도라고 한다. 만일 이 3kg을 삐라가 아니라 쌀이나 의료품으로 담는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히 규제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시민들에겐 ‘표현의 자유’만 있고 ‘인도적 지원의 자유’는 없는 것인지, 북한 주민에겐 ‘알 권리’만 있고 ‘먹을 권리’는 없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또 국가 안보정책에 반한다는 이유로 ‘인도적 지원’이 통제된다면 왜 국가 안보정책에 반한다는 이유로 ‘삐라 살포’는 통제될 수 없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북전단 살포를 정부가 법으로 금지하지 않는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상상하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북전단 살포가 주민보호나 국가 안보정책의 연관성을 이유로 일부 금지되는 사회를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북한이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묵인하면 남북관계는 파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가운데 1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주차장에서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대북전단 풍선에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사진을 매달고 있다. (연합뉴스)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빌미로 용인되는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시민의 정치적 의사표현 규제에 비해서도 강도가 약하다. 당장 누군가 남산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선동하는 삐라를 뿌렸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생각해보자. 그 삐라는 대북전단 살포만큼도 한국 사회 시민들에게 위험하지 않지만, ‘표현의 자유’만을 논거로 용인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수언론들이 내세운 논거 역시 자의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삐라를 보고 북한의 실상을 깨달은 이가 있다면, 대한민국의 마크를 단 쌀포대를 보고 북한의 실상을 깨달은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식량지원에 대해서는 악한 체제를 유지하고 핵무기를 만들어낸 원인이라 비판해왔다.
▲ 새정치민주연합 임수경 의원이 13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대북전단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임수경이 국회의원이 된 것이 북한 주민들에게 그리 신선한 충격이라면, 대체 왜 임수경 의원의 방북신청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보수언론이 비판하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임수경 의원이 무슨 생각에서 방북을 신청했던 간에, 북한 주민들의 상식에서 당연히 감옥에 있어야 할 임 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 북한에 들어가는 일은 체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일이었을텐데 말이다. 그들은 삐라 살포의 정당성을 말하지만 평소엔 삐라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들을 ‘종북’ 행위로 몰아가며 탄압해 오지 않았던가.
앞서 말했듯 대북전단 살포가 완전히 허용되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 일부 상황에 대한 법적 금지를 요청하는게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선 여러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을 제시하며 폭넓게 논의해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정부와 보수언론이 내세우는 논거들이 그들의 평소 주장에 충돌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민주주의 원칙이 그 자체로 심도있게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제 당파의 이득에 따라 오락가락하게 된 현실은 그대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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